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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Jul 23. 2023

내가 사랑한 당신의 습관들

픽션을 쓸 때 아이템을 기획하고 플롯을 구성하고 후킹한 로그라인을 고안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야기의 승패란 캐릭터의 매력에서 갈리는 게 아닐까 한다.


매력적인 캐릭터란 무엇인가. '어떻게 저런 캐릭터를 만들어냈지' 경이로울 만큼 통통 튀되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엔 분명 살아 숨 쉬고 있을 것만 같은 인물일 것이다. 전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영역이고 후자는 핍진성, 그러니까 인물의 대사 행동 어느 하나 '캐붕'되지 않고 정합성을 갖추도록 짜는 집요함의 영역이다. 이야기를 공부하는 초급 학생으로서 내가 잠정적으로 낸 결론이다.


난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다. 때문에 캐릭터를 만들어낼 땐 아이디어는 포기하고 대신 집요함에 승부를 걸길 택한다. 아이디어가 없는데 무슨 재료를 갖고 집요하냐면 주로 주변 사람들이다. 그들이 한 말과 취한 행동들을 여러 방식으로 조합해 보는 것이다. 내가 쓰는 이야기에는 악인이 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엄마가 별 뜻 없이 습관처럼 하는 말들, 친구들이 기쁠 때 하는 행동과 슬프고 화가 날 때 하는 행동들, 애인들의 사랑의 방식 같은 것들에 대해서.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엄마를 친구를 애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말하는 방식을, 행동하는 방식을, 사랑하는 방식을 안다는 건 그가 존재하는 방식을 이해한다는 거니까. 물론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캐릭터와 달리 현실의 인물들은 훨씬 복잡하고 비정합적이다. 언뜻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면들을 동시에 갖고 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당신이 어느 날엔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고 내가 사랑한 당신의 습관들이 끝내 사랑할 수 없는 못난 뒷면을 보이고야 마는 순간들은 또한, 사랑의 역사에서 숱하게 겪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도 삶은 계속되니까.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당신들과 함께 써가기로 내가 마음먹었으니까.


서로 험한 말을 하고, 치고받고 싸우고, 죽일 듯 미워해도 끝내 함께이고 마는 내 이야기 속 인물들처럼,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주인공들도 그래주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사랑한 당신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글을 쓸 것이고, 가끔은 손이 미끄러지더라도 또한 내가 사랑한 당신의 습관들을 떠올리며 잡은 두 손을 꼭 쥐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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