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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Jul 30. 2023

진짜 하기 싫어 죽겠다..

지난 일요일 나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라면을 끓여 먹거나 화장실에 갈 때를 빼고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도 않았다. 그렇게 앉아서 가끔씩 양팔을 기역자로 해 견갑골을 붙인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한숨 한 번 쉬고 손목이 욱신거릴 때까지 다시 키보드를 두들겼다. 하기 싫다, 하기 싫어 죽겠다, 존나 싫다 진짜, 혼자서 투덜거리면서.


그날 나는 공모전에 낼 글을 마감하느라 난생처음 밤을 새웠다. 한숨도 안 자고 24시간 동안 글을 썼고 출근시간이 됐길래 나가서 일했고 그러느라 약 36시간을 쭉 깨어 있었다. 지금보다 건강했고 머리가 잘 돌아갔으며(아닌가) 이렇게까지 대책 없지 않았던(이 역시 아닌가) 대학생 때도 안 해본 짓이었다. 10년은 더 늙은 주제에, 목도 허리도 툭하면 쑤시고 오래 앉아 있으면 소화 불량이 오는 주제에, 제 처지를 망각하고 만용을 부린 거였다. 아니, 그냥 그때보다 더 대책 없는 사람으로 퇴보해 버린 거였다.


공모전 마감일을 뒤늦게 안 것도 아니었다. 두 달쯤 전에 마감일을 달력에 적어놨었다. '에잇, 뭐야! 한참 남았잖아!' 무한한 시간과 가능성이 주어진 것만 같은 기분… 패착이었다. 그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생각은 흐르는 시간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켰고 나는 구체적인 날짜를 잊은 채 내내 아직 시간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미리 좀 써볼까, 조금 기특해지는 날조차 결코 활자화되지 않을 두루뭉술한 구성을 머릿속에서 짜보고 만족하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그것도 대체로 누워서 말이다.


그렇게 마감을 빙자한 사고 놀이나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불안한 마음을 애써 모른척하며 마감일을 확인하고는 그때서야 깨닫는다. D-7. 아무래도 좆됐다. 정말 큰일 났다.


나에 대한 혐오감을 느낄 새도 없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했다. 퇴근 후 시간을 쪼개 글을 쓰자! 당연히 잘 안 됐다. 퇴근은 자주 늦었고 지친 채 컴퓨터 앞에 앉아봤자 두 달 동안 안 쓴 글이 저절로 쓰일 리 없었으니. 모든 약속을 취소한 토요일에는 일찍 일어나 구성을 명확하게 다듬고 글을 조금 썼다. 하지만 이모 집에 놀러 오고 싶다는 조카 대추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반나절은 또 아이를 부둥켜안고 보냈다. (이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곯아떨어진 대추는 깨어나 내가 보고 싶어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것은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보다도 값진 일이므로 이날 대추에게 놀러 오라고 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마감 기한은 월요일이었다. 출근해서는 작업을 할 수 없으므로 일요일 아침의 내겐 다음날 출근 전까지 24시간 정도가 남은 셈이었다. 몇 장 안 채워진 모니터 속의 백지는 나를 집어삼킬 듯 광활하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24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난 왜 아직도 이렇게 한심하고 어리석을까, 진짜 싫다, 진짜 이렇게 하기는 싫다, 기계처럼 글을 써 내려갔다. 떠오르는 대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문장을 두 번 고민하지 않으면서.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었다.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이었다. 하기 싫은 게 당연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이 일을 좋아해서, 서툴도록 좋아해서, 그래서 다정하게 굴고 싶은 마음을 괴롭히는 걸로 표현하는 수줍은 남자애처럼 이 일을 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데, 그래서 잘하고 싶은데, 나는 부족하고 대책 없이 마음만 앞서고 진실의 주변부를 겉돌기만 하니까. 그걸 받아들이는 게 싫어서 마지막까지 일을 미루고 그러고도 짐짓 센 척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24시간 남은 그 마감은 어떻게 됐냐. 정말이지 기적처럼 시간 내에 투고를 해냈다. 쓰면서도 과연 이걸 제출할 수 있을지 믿지 않았다. 근데도 그냥 썼다. 하기 싫다고 투덜거리는 때조차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마음의 소리가 시끄럽게 왕왕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거 안 내면 진짜 좆되는 거야, 오래오래 후회할 거야, 네 자존감에 씻지 못할 상처로 남을 거야.' 어쨌든 마감을 해냈으니 그걸로 된 걸까. 정성을 다하지 못했고 허둥지둥했고 그만큼 영글지도 않은 방식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냈으니까. 우선은 그렇다고 믿어본다. 역시 마감이 닥치면 밤을 새우는 것도 되는구나... 이렇게까지는 믿지 않기로 했다. 나 이제 진짜 달라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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