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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Aug 07. 2023

쓰는 사람의 자격

언제부터 내가 스스로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느냐면, 아무래도 언니를 만나고부터다. 학창 시절 인서울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야심 찬 소녀였던 내겐 수능과 상관없는 문학을 즐길만한 순수한 열정 따윈 없었다. 대학생, 광적인 사회과학도로 변신한 후로는 문학이 좀 한가한 책들이라고 생각했다. 글쓰기 역시 사회과학식의 명증한 쓰기는 좋아했어도 어떤 마음을 전달하는 쓰기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언니의 에세이는 그런 내 눈에도 특별하게 보였다. 문장이 유려하고 표현이 남다른 걸 떠나서도 그랬다. 내가 보기에 언니는 뭐랄까, 늘 자기 안의 무언가와 싸우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마음이 내키고 설득이 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타협 없는 싸움꾼. 그런 언니의 조각조각이 써내는 글에도 늘 단단하게 박혀있어, 글의 힘이라는 게 뭔지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무렵 언니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랬듯 나 역시 오직 언니의 글이 보고 싶어서 글쓰기 모임에 나갔고 아주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그녀의 SNS 글을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곤 했다.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한 것도 언니랑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 언니가 최근 글을 한 편 보내줬다.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에세이였다. 언제나처럼 담백하고 단단한 문장이 담긴 그 글은, 굳이 분류하자면 슬픈 축에 속하지 않았다. 근데도 그걸 읽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기까지 했다. 언니가 오랜 기간의 절필 끝에 세상에 내놓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수년 전 더 이상 글을 안 쓰겠다고 선언하고는 무척 언니답게 그걸 실천했다. 언니의 오랜 팬으로서 또 동료로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언니의 글을 더는 못 보는 게 속상했고 한편으로는 언니처럼 잘 쓰는 사람이 재능을 묵혀두는 게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근데 그건 내가 뭐든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거였다. 내가 차마 알 수 없는 언니 안의 무언가로 인해 언니는 쓰는 게 힘들 거였다. 스스로를 속이고 어물쩍 아무거나 쓰기에는 언니는 너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난 생각했다.


그러니까 언니가 내게 보여준 글은 그런 글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잘 모르는, 하지만 언니 안에서 분명히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싸움을 하고, 그 끝에 어떤 용기를 내서 쓴 글.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세상 밖에 꺼내진 글. 언니는 기어코 한 걸음 성장한 거구나. 이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들이 필요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무게에 대해서 생각했다. 많은 말들이 너무나 쉽게 또 아무렇게나 뱉어지는 이 세상에서 언니가 써낸 글이 갖는 무거움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을 한 걸음 한 걸음 과감하게 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언니는 전자가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댔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영글지 않은 생각일지언정 일단 쓰고 마는 사람. 그러다가 길을 발견하는 사람. (난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 쓰는 사람이란 언제나 후자, 즉 언니 같은 사람이었다. 그들의 집요함과 진중함을 사랑했다. 내가 하는 말들은 죄다, 그들과 조금이라도 닮고 싶은 마음이 지나치게 부푼 나머지 툭, 툭, 서툴게 튀어나오고야 마는 무언가였다.


물론 쓰는 사람의 자격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언니도 쓰고 그 곁에서 나도 쓰는 거겠지. 아무래도 좋다. 한동안 나는 언니가 돌아온 기쁨에만 도취돼 있을 것이다. 오랜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낸, 기어이 세상에 나오고 만 언니의 글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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