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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Aug 28. 2023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서울 남부터미널로 향하는 고속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한 건 오후 4시 10분께였다. 경유지인 이곳까지 오는 동안 차가 막혔는지 시간표보다 5분이나 늦은 참이었다. 서울이나 여기나 왜 금요일엔 퇴근 전부터 차가 막히는 거야. 다들 일 안 하고 놀러 가?!! 약간의 짜증을 느끼며 창가 자리에 몸을 파묻고 노트북을 켰다. 옆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손끝을 둥글게 하고 타이핑을 하느라 업무엔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고, 그건 금요일의 교통체증을 비집고 가는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수업에 지각할 게 뻔해. 빨리, 조금만 더 빨리...


고속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을 넘은 시각. 왕복 다섯 시간 길에 오르게 한 단 하나의 목적지인 강의실엔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했다. 수업은 세 시간짜리, 그러니 앞의 절반은 날려먹은 셈이었다. 멀미로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나머지 절반도 집중이 잘 안 됐다. 그냥 쨀걸... 하지만 지난주에도 일이 늦게 끝난 겸 친구의 번개에 응할 겸 땡땡이를 쳤다. 다음 주에도 휴가를 가야 해서 땡땡이를 쳐야 한다. 3주 연속 빼먹는 건 안 되지, 내가 이 수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말이야. 도로 위에서 날려버린 다섯 시간은 그렇게 잊기로 했지만 멀미의 기운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지금 난 지망생이니까… 이 정도는 견뎌내야…


회사에 다니면서 드라마 작가지망생으로 산 지도 1년이 넘었다. 작법서를 들춰보고 수업도 듣고 드라마도 챙겨보면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 건 네 달 정도밖에 안 됐지만, 실천의 양과 질에 무관하게 '지망생'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기 시작한 건 1년이 넘었으니 그러려니 한다. 꿈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꿈을 품어온 시간과 비례해 불안함이 커지는 건 내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 필요한 건 성과인데… 얼른 작가가 되고 싶은데… 아니야. 고작 1년 됐잖아. 길게 보자, 조급해지지 말자.'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불길한 의심이 기어이 피어오르곤 했다. '꽃을 피우는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유예되다가 결국 영원히 오지 않는다면. 그때 나는 무엇으로 버텨야만 하지?'


내가 들은 업계의 분위기란 건 그랬다. 젊은 나이에 입봉한 명석한 작가들도 끝없는 자기 증명의 과정에서 탈락하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곳. 큰돈이 오가고 사람들의 꿈을 먹고사는 산업인 만큼 실력은 기본값, 그 외의 많은 것들이 작가의 입지를 결정하는 곳. 나만이 불안이 아닌 꿈 꾸는 모든 이들의 불안일 것이다. 하지만 입지랄 걸 크게 걱정해 본 일이 없는 나 같은 직장인에게는, 게다가 사회에 자리 하나 마련하는 과정이 유난히 더 불행하다고 느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특히 더 겁나는 것이었다. 최근에 본 타로점이 말해줬듯이 천운이 따라 빨리 작가의 문을 열어 호기롭게 직장을 때려치웠는데 거기서 운이 다한다면? 아니 그전에 영원히 공모전 당선 한 번 안 된다면? 그때의 내게 결코 타지 않은 심지랄 게 남아있을까?


"세상을 바꾼다는 각오랑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단 말이야. 그 각오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해도 말이야."

매주 5시간 왕복을 요하는 열정적(?) 공부에도 떨쳐지지 않는 불안함을 안고 지내던 중, 이런 말을 봤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관련된 글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였다. 물론 그는 애니메이션의 거장이고 '그 각오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일은 없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거장조차도 이런 마음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을 바꾼다는 각오를 할 정도로 꿈꾸는 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 각오로 무엇도 이뤄내지 못한들 기어이 다시 각오를 무릅쓰는 마음. 한때는 가슴에 품고 살았던,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라는 영화 속 대사가 함의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꿈을 진지하게 사랑하기보다 성과를 보챘던 지난날을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에게 세상에게 인정받는 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니 나는 단지 나의 일을 하는 거라고. 그러니 다시 한번 펜을 고쳐 잡을 뿐이다. 맨 처음 드라마를 쓰기로 결심했던 순간이나 서툴게 적어 내려간 이야기 속 주인공과 울고 웃었던 시간들, 그들로서 전하고 싶었던 말들을 기억하기로 하면서. 끝내 모든 이야기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되더라도 다시 펜을 고쳐 잡을 수 있는 심지가 내게 있기를 바라면서. 이런 말들을 품고 살아가는 한 내게 타지 않을 심지는 없을지언정, 미약한 불꽃을 결코 꺼트리지 않는 심지 정도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언급된 미야자키 하야오 관련 글은 '마감을 앞둔 거장' 짤을 찾다가 읽게 됐다. 글 안 쓰고 짤줍하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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