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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Aug 21. 2023

타로의 신께서 가로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 속에서 1999년 서울은 "사회 전반적으로도 역술이나 점, 단학 따위가 판을 치는" 도시로 묘사된다. 그때 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새로운 세기를 앞둔 그때의 서울을 한 번쯤 겪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구든 불안할수록 초자연적인 힘으로부터 어떤 지혜를 구하고 싶어 하니까, 그 정도는 넉넉하게 이해할 만큼 불안이 많은 30대로 컸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소설이 그리는 거리의 풍경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고 그 속에서 신과 예언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주인공들을 마음 깊이 응원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 처지에 놓인 건 2년 만에 한 집 한 상에 둘러앉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스무 살, 스물한 살에 만난 우리는 한땐 매일같이 같은 수업을 듣고 마주 앉아 학식이나 맥도널드, 타코벨, 브라운돈가스 같은 걸 나눠먹었다. 그랬던 우리가 서울에, 창원 의왕 세종에 흩어져 살며 각자의 밥상을 부지런히 꾸리다 장장 2년 만에 마주 보게 된 거였다. 그런데도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 건 나이에 비례해 빨라진다는 시간의 속도 때문일까. 어색함이 끼어들 틈 없이 자연스러운 우리 사이의 분위기는 분명 반가운 것이었지만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곁들인 음식을 나눠먹는 일,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게 달리 없을 것 같은 이런 일들이 연례행사처럼 됐다는 게, 그게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게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전하는 근황 역시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되고 있었다. 한 친구는 꽤 큰 병으로 수술을 했고 또 다른 친구도 몸이 안 좋아 밀가루를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뭐 하면서 살까?' 고민하던 때가 무색하게 퇴사하고 학교에 가거나 이직해 새로운 길을 걷는 친구도 생겨났다. 자꾸만 아프고 자꾸만 병들고 자꾸만 번민하는 것은 젊은 날의 삶 그 자체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리를 둘러싼 세상 역시 점점 이해할 수 없는 게 되고 있었다. 지구는 날로 더워지고 비뚤어진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 아깝고 귀한 생들을 앗아가고 우리는 조심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고. 도대체 뭘 조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부디 다치지 말기를 바라고.


우리 자신과 우리 환경을 둘러싼 혼란 때문인지 2년 만에 마주한 우리가 수다와 루미큐브 다음으로 열렬하게 몰두한 놀이는 바로 타로카드였다. 규칙은 간단했다. 답을 구하는 자가 질문을 한다. 카드를 섞는다. 그중에 바닥에 떨어지는 카드가 바로 점괘가 된다. 마침 친구 중 한 명이 유튜브를 보고 타로카드를 배워 점괘를 풀이할 줄 알았다.


모여 앉은 우리는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될지, 지금 알아가고 있는 남자와 어떻게 될지부터 시작해 이직을 할 수 있을지, 퇴사를 안 하는 게 좋을지, 앞으로 우리가 과연 건강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물었다. 질문을 생각하면서 카드를 서툴게 섞다 보면 카드 한 두장쯤 꼭 대열을 벗어나 떨어졌다. 그걸 뒤집음과 동시에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의 입만 쳐다봤다. 전문가(?)가 봐주는 점도 아닌 데다 우리만의 놀이 성격이 강했기에 점괘를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난 친구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예언과 조언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친구의 몸에 빙의된 타로의 신은 지난 연애에 괴로워하던 내가 곧 안정과 풍요를 되찾을 거라고 했다. 지금 하는 일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했다. 새롭게 도전하는 일 역시 빠른 시일 안에 빛을 본다고 했다(먼 미래의 점괘는 나쁜 편이었지만 그건 잊기로 했다). 기분 좋은 예언이었고 조언이었다.


사실 타로의 신이 내 편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나를 알고 아끼는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최대한 객관적이고자 노력했대도 그녀의 점괘는 분명 운명보단 내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맛에 맞는 이 점괘를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이야기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이야기란 써가는 사람들의 몫이니까. 훗날 내가 지난 연애로 인해 또다시 멍청하게 굴고 지금 하는 일에서 자꾸만 헛발을 디디고 새로운 도전이 결코 빛을 발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이 고비만 넘기면 안정과 풍요를 되찾을 거야. 원래 더 나쁠 수 있었는데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빛을 보게 될 거야. 그 밤의 점괘를 되새기며 이렇게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한 번 더 낙관하는 힘을 갖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점괘와 이야기에 속아 하루를 더 살아내고 나면 모든 게 다 괜찮은 것만 같은 내일이 선물처럼 오게 될지 또한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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