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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식문화진흥 Jun 14. 2020

평범한 생선 민어를 아십니까?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민어와 조기는 ‘사촌지간쯤’ 된다. 크기는 다르지만 두 생선은 비슷하다. 

우리가 흔히 조기라고 부르는 ‘참조기’는 민어과의 생선이다. 참조기, 조기는 민어과, 조기 목이고, 민어는 민어과, 민어 목이다. 같은 민어 과다. 


민어는 ‘Brown croaker(브라운 크로커)’다. ‘croaker’는 ‘소리를 내면서 우는 물고기’를 이른다. 민어나 조기 모두, 마치 개구리울음 같은 소리를 낸다. 흔히 “흑산도 부근 바다에서 민어 우는 소리 때문에 뱃사람들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한다. 


민어만 우는 것은 아니다. 조기도 운다. 조선 시대 기록에는 “황해도 앞바다에서 조기가 울면 한양 도성 사람들이 입맛을 다신다”고 했다. 황해도 앞바다의 조기 울음소리가 한양 도성까지 들렸다는 뜻이다. 


조기는 ‘Yellow croaker(옐로우 크로커)’ ‘White croaker(화이트 크로커)’로 나눠 부른다. 배 부분이 노란 색깔인 참조기와 백조기다. 서양인들도 조기를 먹지만 우리처럼 귀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민어는 국민 생선은 아니지만 널리 먹었던 평범한 생선이다. 보양식이니, 양반 것이니, 할 것도 아니었다.


‘민어(民魚)’는, ‘백성[民]의 물고기’라고 부른다. 백성들도 쉽게, 흔하게 먹었던 물고기’라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틀렸다. 근거는 없다. 

민어뿐만 아니라, 조기, 명태, 밴댕이 등도 모두 일반 백성들이 흔하게 먹었던 생선이다. 유독 민어만 ’백성들의 물고기’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조선 시대 가장 흔하게 먹었던 물고기는 민어보다는 조기 혹은 명태다.


“만기요람萬機要覽”은 조선 후기, 국왕들이 통치의 참고도서로 썼던 기록이다. “만기요람”은 1808년(순조 8년) 비변사 당상관 심상규(1766~1838년)와 호조판서 서영보(1759~ 1816년)가 엮었다. 이 기록에 봉조하(奉朝賀)들에게 지급한 물품 목록이 있다. ‘봉조하’는 퇴직한 고위 관료들이다. 주로 종2품 이상 퇴직자들이다. 이른바 원로대신들에게 지급한 물품에 민어, 조기도 있다.    

  

(전략) 봉조하奉朝賀에게는 다달이 돼지고기 10근, 닭 5마리를 지급함. 주급周急으로는 쌀 8석, 콩 3석, 팥 1석, 민어民魚 10마리, 조기 15묶음, 소금 2석, 땔나무 200근斤, 숯 3석을 매년에 3차례에 지급하되, 춘, 추와 세시歲時로 함    


상당히 상세하다. 매달 돼지고기 10근, 닭 5마리다. ‘주급’은 1년에 세 차례, 봄, 가을 그리고 설날에 준다. 이때는 쌀 등 곡식과 더불어 생선으로 민어 10마리, 조기 다섯 묶음이다. 매년 3차례니, 민어 30마리와 조기 15묶음(15‘속’, 300마리, 1년에 900마리)이다. 


민어 30마리에 조기 900마리다. 민어는 개체가 크다. 당연히 큰 것은 숫자가 적고, 작은 것은 숫자가 많다. 굳이 백성의 물고기, 민어로 부르려면 명태와 조기에 어울린다. 민어가 백성들이 흔하게 먹어서 민어라고 불렀다는 말은 엉터리다. 


민어는 면어에서 시작되었다. ‘민어’의 정확한 유래는 조선 시대 기록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의 ‘아언각비’와 오주 이규경(1788~1856년)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서 민어 이름의 유래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어변증설(魚辨證說)’의 기록이다.   

    

면어(鮸魚). 모양은 농어[鱸]와 비슷하고 살이 무르다. 아가미가 넷이면 모면(茅鮸), 악청(樂淸)의 민어(鰵魚)와 같다. 아가미가 하나면 모반(茅班)이다. 면어(鮸魚)는 곧 민어(民魚)다. 면(鮸)은 곧 민(民)이다. 음이 비슷하다. 민(鰵)은 곧 민(民)이다. 음이 아주 가깝다. 속칭 민어(民魚)다. 민어는 부레가 있으니 죽으로 끓인다. 허한 곳을 보양하는 재료다. 다른 물고기의 부레와는 다르다. 방어 류 같이 대가리가 둥글다. 꼬리는 작고 비늘은 가늘다. 맛은 가자미[魬, 반]와 비슷하다. 큰 것은 2~3자에 이른다. 가조기(조기를 갈라 말린 것, 혹은 어포)로 만든다. 즉, 우리나라의 속칭 민어(民魚)와 같다. 작은 것은 석수어(石首魚)다. 황화어(黃花魚)다. 면이 곧 민어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악청’은 중국 저장[浙江, 절강]성의 도시 이름이다. 바다와 가깝다. 여기서는 민어(鰵魚)라고 불렀다. 중국도 민어 이름을 두고 혼란스러웠다. 면어(鮸魚), 민어(鰵魚)로 다르게 불렀다. 일상적으로는 면어, 저장성 악청에서는 민어였다. 


조선의 공식적 문서 기록은 모두 한자다. 민어도 한자로 기록해야 한다. ‘면어’의 ‘鮸(면)’은 참조기라는 뜻이다. 면어는 참조기다. ‘鮸’은 횟수가 많고 복잡하다. 쓰기가 번거롭고 힘들다. 하필이면 ‘鮸(면)’의 중국식 발음이 ‘민’이다. 게다가 중국 저장성에서는 아예 우리의 발음과 비슷한 민어(鰵魚))로 불렀다. 면어, 민어가 우리 땅에서 민어가 된 이유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에서도 분명 중국의 면어, 민어가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민어라고 못 박았다.


조선 시대 기록에는 “큰 면어는 민어고, 작은 면어는 조기”라는 표현도 나타난다. 오늘날의 민어와 조기다. 이래저래 민어는 ‘백성’과는 관련이 없다. 


많이 잡았으니, 공물로 바쳤다. 많이 잡았으니, 그나마 민간에서도 먹을 수 있었다. 대단히 맛이 있거나 귀하고 비싼 것도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임금님의 물고기’ ‘양반들의 보양식’이란 표현도 틀렸다. 보양이나 임금님 운운하는 것은 조선의 음식, 한식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임금이 개인적으로 특정 식품, 음식을 챙기는 일은 드물었다. 민어가 지체 높은 이들이 챙길 정도로 비싸고 고귀한 생선도 아니었다. 명태나 밴댕이, 조기처럼 많이 잡히니 널리 먹었다. 


궁중에서는, 지방 고향에서 은퇴 후 노년을 보내는 전직 관리들에게도 일정량의 식재료, 살림살이를 내려 주었다. 잔치나 집안의 크고 작은 제사 등에도 ‘하사품’을 주었다. 생선도 포함된다. 이 생선들이 대부분 비교적 많은 양이 생산되는 것들이다. 민어, 명태, 조기, 밴댕이 등이다. 대량으로 많이 잡히는 것들이다. 오늘날에도 제사상에 조기, 명태를 올리는 이유다. 


냉장, 냉동이 어려운 시절이다. 생선을 보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말리거나 젓갈로 담가야 한다. 말린 생선으로 유통, 보관되는 것은 주로 흰살생선이다. 흰살생선은 말리기에 좋다. 등 푸른 생선은 쉬 상하지만 흰살생선은 잘 마른다. 명태, 조기, 대구, 민어 등 흰살생선을 건어물로 만든 이유다. 


조기, 민어는 한꺼번에 많이 잡히는 흰살생선이다. 건어물로 만들어 세금으로 걷는다. 궁중에서 먹거나 제사, 행사에 사용하고 상당수는 관리들의 급료로 지급했다. 말렸으니 운반도 쉽다. 생선이 귀한 내륙에 공급한 까닭이다. 


우리 시대에는 마치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 떠돈다. 조깃값이 금값이다. 터무니없이 비싸다. 매년 여름이면 민어회가 인기다. 가격도 상당히 비싸다. 민어, 조기가 귀한, 맛이 뛰어난 물고기라서 그럴까? 민어가 반가의 보신탕이라서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 


민어를 소개한 옥담 이응희(1579~1651년)의 시를 소개한다. “옥담사집_어물류_민어”다.       


민어(民魚)

큰 입은 농어와 닮았는데 비늘은 농어보다 조금 크다네
피부는 풍성한 살로 채워졌고 창자는 속현(續絃)을 가득 안은 듯 기이하네 
솥에 넣고 탕 끓이면 오히려 먹을 만하지만 횟감으로 쟁반에 올리기는 좋지 않아라
보라, 바짝 말린 후에는 밥 먹을 때 손이 먼저 가리라


옥담은 16세기 후반에 태어났다. 활동한 것은 주로 17세기 중반까지다. 임진왜란을 겪었고, 병자호란도 겪었다. 곤궁한 시절이다. 신분도 특이하다. 왕족이다. 스스로 벼슬살이 나갈 기회를 포기하고 전원에서 살았다. 지금의 경기도 안성이다. 


아무리 끈 떨어진 왕족이지만 지방 벼슬아치들이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문집을 낼 정도였으니 글솜씨도 좋았다. 서민의 생활, 농촌, 어촌의 생활을 아는 사대부다. 

민어회와 반건조 민어찜. 민어는 전이나 탕으로도 많이 먹는다.

그가 기록한 내용 중 민어가 나온다. 바짝 말린 후에는 밥 먹을 때 손이 먼저 간다고 했다. 가장 맛있는 민어는 바짝 말린, 건 민어다. 냉장, 냉동이 없던 시절이지만 옥담이 살았던 경기도 안산 수리산 언저리는 바다로부터 멀지 않다. 옥담의 민어 설명은 생생하다. 살이 풍성하고, 창자는 속현을 품은 듯하다. ‘속현(續絃)’은 재미있는 표현이다. 끊어진 거문고, 가야금의 줄을 다시 잇는다는 뜻이다. 부인과 사별하고 새로 혼인할 때도 ‘속현’이라고 표현한다. 흔히 아교 등의 풀로 끊어진 줄을 잇는 것을 이른다. 지금 대단한 별미라고 내세우는 민어 부레는 아교의 재료로도 쓴다. 횟감으로 씹어보면 지방층이 두껍다. 나머지 부레 부분은 상당히 질기다. 기이한 맛이라고 떠들 건 아니다. 아교 등의 재료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5백 년 전에 옥담이 이야기했다. 탕으로 끓이면 먹을 만하지만, 횟감으로는 좋지 않다. 옥담의 말대로 살은 풍성하지만, 무르다. 민어회를 낼 때 두껍게 써는 이유다. 살이 무르니 입에 씹히는 질감을 위하여 두껍게 썬다. 살이 차진 복어에 비하면 네댓 배 이상 두껍게 썬다. 민어? 가장 맛있는 것은 탕 그리고 전(煎)이다. 민어회는 우리 시대의 ‘신화’다. 어느 날 근거도 없이 터져 나온 말이 “양반들의 보양식 민어탕”이다. 왜 여기서는 회를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오히려 궁금하다. 

 

조선 시대 최고의 ‘먹보’이자, 음식평론가였던 교산 허균이 민어에 대해서 평하지 않았을 리 없다. 교산의 “성소부부고” 중 제26부_설부의 내용이다. 흔히 말하는 “도문대작”의 서해안 생선 편이다.       


(전략) 물고기 중에서 흔한 것은 민어(民魚)ㆍ조기[石首魚, 석수어]ㆍ밴댕이[蘇魚, 소어]ㆍ낙지[絡締, 낙제]ㆍ준치[眞魚, 진어] 등으로서 서해 곳곳에서 나는데, 모두 맛이 좋아 다 기재하지 않았고 (후략)


민어, 조기, 밴댕이, 낙지, 준치 등을 별도로 상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모두 맛있다. 특별한 것은 없다. 


민어는 국민 생선은 아니지만, 널리 먹었던 평범한 생선이다. 보양식이니, 양반들의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여름철, 서해안 생선이 귀할 때 푸짐한 살을 가진 민어가 많이 나온다. 좋다. 그뿐이다.



본 글은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가 2020년 3월부터 한국음식문화 누리집에 게재 중인 정기칼럼 내용입니다. 황광해 칼럼니스트의 주요 저서로는 <한식을 위한 변명>(2019),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2017), <한국맛집 579>(2014) 등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익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본 칼럼은 한국음식문화 누리집(www.kculture.or.kr/main/hansikculture)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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