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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식문화진흥 Mar 16. 2020

단군신화와 한식의 길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신화(myth)는 사실(fact)이 아니다. 거짓이나, 거짓이 아니다. 신화는 상징(symbol)이다. 상징은 많은 ‘의미’를 압축, 정제한다. 


한민족은 단군신화다. 한민족의 뿌리다. 누가, 어디서, 어떤 나라를 세웠는지를 보여준다. 하늘에서 온 환인과 환웅, 곰과 호랑이, 쑥과 마늘, 동굴에서의 기다림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늘에서 문명이 건너온다. 환인이다. 환웅은 환인의 아들이다. 하늘이자, 사람이자 문명이다. 거친 야성의 땅에 문명, 사람이 왔다. 곰과 호랑이는 야성의 동물이다. 사람이 부럽다.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문명은, 마치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야만은 문명을 쫓는다. 조건이 있다. 쑥과 마늘, 동굴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다. 곰은 쑥과 마늘을 먹고 마침내 백일을 기다린다. 인간이 된다. 

호랑이는 백수의 영웅이다. 호랑이는 육식성이다. 농경의 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곰은 잡식성이다. 동물도 취하지만 주로 식물을 먹이 삼는다.

프랑스의 미식가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_Savarin, 1755~1826년)은 “당신이 먹은 음식을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다. 수천 년 전 단군신화는 간결하다. 쑥과 마늘을 먹어라. 그러면 인간이 된다. 단군신화는 음식이 사람임을 말한다. 


웅녀는 곰에서 변화한 인간이다. 곰이 인간이 되는 변화는 혁명이다. 우리는 음식으로 혁명을 부르기도 한다. 웅녀는 짝을 찾는다. 환웅이다. 단군은 하늘에서 온 환웅과 땅의 여인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다. 단군은 군왕이다.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다.


    

호랑이가 아니라 곰이다

호랑이는 백수의 영웅이다. 호랑이는 육식성이다. 농경의 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싸워서 우뚝 선다. 곰은 잡식성이다. 동물도 취하지만, 주로 식물을 먹이로 삼는다. 물가에서 생선을 사냥하여 먹기도 하고, 개미나 벌레 등도 먹는다. 곰은 나무의 껍질을 먹고, 풀, 나무의 잎사귀를 먹는다. 잡식성이나 채식을 즐긴다. 마늘과 쑥은 곰에게 어울린다. 


쑥은 ‘애(艾)’다. 마늘은 ‘산(蒜)’이다. ‘산(蒜)’은 달래 혹은 ‘작은 마늘’이다. 조선 시대 기록에는, 마늘에는 대산과 소산이 있다고 했다. 단군신화 시절에는 대산, 마늘이 없었다. 혹자는 단군신화의 마늘이 산마늘이라고 주장한다. 마늘, 달래도 아닌 무릇이라는 주장도 있다. 산마늘은 명이나물이다. 


산마늘이나 달래, 무릇 모두 한반도에 자생한다. 마늘, 달래, 무릇은 맵다. 매운맛은 약성(藥性)이다. 동물이나 사람을 변화, 진화, 치유, 혁명한다. 마늘이나 쑥 모두 약성을 지니고 있다. 어느 정도의 약성인가? 곰을 사람으로 변화시킬 정도의 약성이다. 


‘구체적인 먹을거리’가 등장하는 건국 신화는 드물다. 사랑과 전쟁, 천지개벽, 증오와 다툼이 신화의 콘텐츠다. 일본 건국 신화에는 ‘저승 음식’이 등장한다. “이자나미는 이미 황천(黃泉)의 음식을 먹어, (부부였던)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이승으로 데려오지 못한다”라는 표현이다. 음식 내용이 구체적이진 않다. 그저 저승 음식이다.   


로마 건국 신화에는 ‘늑대의 젖’이 나온다. 로마 건국 신화의 주인공은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다. 로마 건국 신화를 소재로 만든 조각품 중에는 늑대에게 매달려 젖을 먹는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를 새긴 것이 많다. ‘늑대 젖’은 동물의 젖이다. 유럽, 유럽인이다. 늑대의 젖이나 우유를 가공, 발효, 숙성하면 요구르트, 버터, 치즈가 된다. 서양, 유럽은 유장(乳醬)문화권이다.


단군신화의 음식은 쑥과 마늘이다. 식물성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나물을 먹어온 민족이다. 나물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한 가지 나물도 아니다. 마늘, 쑥 두 가지를 섞어서 먹었다. 섞임은 한식의 특질 중 하나다. 우리는, 오곡밥을 섞어 먹고, 묵나물 다섯 가지를 섞어서 정월 대보름을 보낸다. 중국, 일본 역시 오래전에는 여러 가지 나물을 먹었지만, 사라졌다. 정월 대보름 오곡밥과 섞은 묵나물 문화는 한반도에만 남았다.

 

장계향(1598~1680년)의 “음식디미방”에는 잡채(雜菜)가 있다. 잡채는, 당면이 없는, 여러 가지 나물 모둠이다. 당면(唐麪) 잡채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다. 당면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1920년대 이후다. “음식디미방”의 잡채는 ‘10여 종류의 나물 모둠’이다. 곰과 호랑이는 ‘잡채’를 먹었다. 쑥과 마늘, 나물 모둠이다. 두 가지뿐이지 않으냐고 볼멘소리를 할 필요는 없다. “음식디미방”에도 10여 가지의 나물을 소개한 다음, 끝부분에 단서를 달았다. “이런 나물들을 모아서 잡채를 만들되, 형편대로 하라”는 문구다. 굳이 나물의 종류나 양에 얽맬 필요는 없다. 곰과 호랑이에게 주어진 나물이 단 두 종류라고 해서 “이게 무슨 잡채야?”라고 깎아내릴 일은 아니다. 


공자는 향당편에서, “사불염정, 회불염세[食不厭精, 膾不厭細]"라고 했다. ”밥은 정한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셨고, 회는 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셨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표현이지만, 조선 시대 내내 이 표현은 사대부를 통하여 널리 회자되었다. 


고종황제가 10대 초반의 나이에 왕좌에 오르자 나이 든 대신들이 경연(經筵)에서 이 문구를 내놓는다. ”왜 정히 지은 밥을 좋아하셨다”라고 하지 않고 “싫어하지 아니하셨다”라고 하셨을까, 라고 묻는다. ”굳이 구복(口腹)을 위하여 맛난 음식, 정히 지은 밥을 챙기지 않았다“가 정답이다. 구복은, ‘입맛과 배를 채우기 위하여’를 의미한다. 


잡채는 여러 가지 나물 모둠이다. 10여 가지 나물을 챙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두 종류라도 굳이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식의 길이다.    


단군신화는 음식이 사람임을 말한다. 단군신화의 음식은 쑥과 마늘이다. 식물성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나물을 먹어온 민족이다. 나물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마늘, 쑥을 섞어 먹었다.

      

곰은 기다린다

한식은 삭힘을 바탕으로 삼는다. 흔히, “세상의 모든 나라, 민족은 모두 발효음식을 먹는다. 굳이 한식만 발효음식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삭힘은 한식의 바탕이다. 단군신화에는, 일정한 시간 쑥과 마늘을 묵히고, 말리고, 삭힌다.      


“(전략) 한 곰[熊]과 한 호랑이[虎]가 있어 같은 굴에서 사는데(중략) 환웅이 영애(靈艾) 1주(炷)와 마늘 20(枚)매를 주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하였다.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얻어먹고 삼칠일(三七日)을 기하였더니,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호랑이는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후략)”      


삭힘은 응달진 곳, 온도가 일정한 곳에서 일어난다. 식초, 술 등을 만드는 공간은 공기가 잘 통하는 동굴, 지하실이다. 곰은 동굴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말리고 삭힌 쑥과 마늘을 먹는다. 삭힌 음식을 먹으며 곰은 인간이 된다. 삭힘, 발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백일과 삼칠일이다. 백일은 완성된 숫자, 온전한 숫자다.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삼칠일은 ‘세이레’다. 이레(7)가 세 번이다. 세이레는, 새 생명체가 또 다른 세상에 태어나고, 적응하는 기간이다. 산모가 아기를 낳으면 세이레 동안 금줄을 쳤다. 새로 태어난 아이를 부정으로부터 막고, 그 기간에 산모는 몸을 추스른다. 웅녀의 세이레를 기다리며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듯이. 


‘삭힘’, 발효는 세 종류다, 두장(豆醬), 어장(魚醬), 유장(乳醬)이다. 인류는, 세 종류의 발효음식 중 하나를 취한다. 유럽, 미국, 몽골 등은 유장문화권이다. 우유를 마시고, 버터, 치즈, 요구르트 등 유제품을 일상적으로 먹는다. 


동남아는 어장문화권이다. 멸치, 새우 등 생선 젓갈을 널리 먹는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동남아 국가다. 태국의 남쁠라[fish sauce]가 대표적이다. 우리의 젓갈 문화는 안남(安南), 베트남에서 전래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은 두장문화권이다. 콩으로 만든 장(醬)을 먹는다. 중국의 첨면장, 두반장, 일본의 미소, 낫토우, 쯔유도 모두 콩으로 만든 발효식품이다. 


발효식품을 먹지 않는 민족은 드물다. “한국인들만 발효식품을 먹는다”는 표현은 틀렸다. “한반도 발효문화가 깊고 넓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한국인들만 두 종류의 발효음식을 먹는다. 콩으로 만든 두장과 생선으로 만든 어장이다.  


유장문화권인 유럽에도 어장이 있다. 이탈리아인들의 멸치젓갈, 안초비(anchovy)나 스웨덴인들의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 등이다. 수르스트뢰밍은 발트해의 청어를 발효시킨 것으로 냄새가 고약하다. 안초비나 수르스트뢰밍 모두 일상적이지 않다. 수르스트뢰밍은 스웨덴에서도 지역 음식이다. 


한식의 삭힘은 깊고 넓다. 하나의 밥상 위에 된장찌개와 김치, 김치찌개, 멸치, 새우젓갈, 여러 종류의 발효음식이 동시에 오른다. 발효음식 천국이다. 명태 한 마리로 명란젓, 창난젓, 아가미 젓갈을 만들고 명태살을 김치에 넣어서 삭힌다. 채소 삭힘은 범위가 더 넓다. 배추김치, 무김치뿐만 아니라, 고들빼기, 산초, 무말랭이, 산과 들에서 나는 각종 이파리, 줄기, 뿌리를 모두 삭힘의 재료로 쓴다. 


장아찌는 ‘지(漬)’다. 일본인들은 츠케모노[漬物, 지물]를 먹는다. 범위가 그리 넓지 않다. 우리의 장아찌는 넓고 깊다. 열매, 뿌리, 줄기, 잎을 모두 아우른다.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을 모두 장아찌의 재료로 사용한다.


김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집집마다 김치는 다르다. 밀가루 풀, 찹쌀풀, 새우와 멸치, 갈치, 명태 등의 생선, 마늘, 고춧가루 등 여러 가지 재료의 배합 정도가 모두 다르다. 정해진 레시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김장김치, 여름철 열무김치, 동치미와 나박김치 등을 식당, 가정에서 직접 담근다. 유럽의 치즈가 다양하지만, 치즈를 직접 만드는 가정, 식당은 드물다. 우리는 여전히 상당수 가정과 식당에서 된장, 간장, 고추장을 직접 담근다. 발효식품을 만드는 ‘표준 레시피’는 있지만 제각각 자기 방식으로 만든다.  


단군신화의 마늘과 쑥도 레시피가 없다. 어떤 비율로 얼마만큼 먹었는지 알 수 없다. 마늘 스무 개와 쑥 한 줄기다. 쑥과 마늘의 크기와 무게는 정확지 않다. 한식 레시피는 ‘간장 한 숟가락’ ‘고춧가루 적당량’이다. ‘적당량’이 얼마인지, 숟가락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아무도 되묻지 않는다. ‘비과학적’이라고 탓할 이유는 없다. 단군신화의 곰이 하루 쑥 몇 그램, 마늘 몇 톨을 먹고 인간이 되었는지 따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본 글은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가 2020년 3월부터 한국음식문화 누리집에 게재 중인 정기 칼럼 내용입니다. 황광해 칼럼니스트의 주요 저서로는 <한식을 위한 변명>(2019),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2017), <한국맛집 579>(2014) 등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익한 칼럼을 게재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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