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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Mar 13. 2019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9부 리그 구단 운영기(3)

설레발은 필패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비프로의 사장님이자 함부르크 버그의 감독님의 인스타 피드를 감상하고 가도록 하자.

사장님 인스타입니다. 좋아요 많이 부탁드립니다.

망망대해 같이 넓은 호수를 보며 감독님은 읊조렸다. "어느 하나 쉬운게 없다."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시물이 아닐 수가 없다. 사장님이 쉽지 않다고 느끼는 부분들을 미물인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이유들 중 하나가 함부르크 버그임은 사장님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감독 부임 이후 2연패. 우리의 성적이다. 대학교 때 스포츠 관련 동아리를 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교훈은 '설레발은 필패' 였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해버렸다. 지난 번에 게시한 글 (https://brunch.co.kr/@hansjohn/24) 에서 아주 패기롭고 호기 넘치게 승리를 자신했던 내가 참 밉다. 


이 때까진 날씨도 좋았다.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설레발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첫 경기를 대하는 우리(코치진, 선수들 모두)의 마음가짐이 잘못되었었다. 상대가 경기당 평균 8실점을 할 정도의 약체라고 마음 속 어디선가 무시하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사뭇 달랐다. 겨울 휴식기 동안 많은 선수들을 수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리그 전반기 동안 총 106개의 실점을 기록한 팀같지 않았다. 그 팀이 우리에 비해서 월등하게 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로 발이 맞는 느낌이 들었고 선수들의 피지컬(키, 덩치)도 우리 팀의 그것보다 우월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경기 내적인 부분에서도 할 말이 산더미지만, 첫 경기에서 우리는 그 외의 부분들 때문에 자멸했다. 


규율의 부재가 그 첫 번째 변수였다. 1편 혹은 2편에서 '현실판 FM'을 언급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생각했던 현실의 FM은 생각보다 더 가혹했다. 감독과 코치의 업무는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고 경기, 훈련을 진행하는 것에 제한되지 않았다. 선수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도 우리들의 업무였던 것이다. 먼저, 경기에 참여한다고 한 뒤에 아무 통보 없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놈들이 그 시작이었다. 이 부분은 사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라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더 가관인 건 라인업 발표때였는데 본인이 선발이 아님에 삐져서(말 그대로다. 7세 아동을 보는 듯 했다) 그 날 경기에 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놈도 생겼다. 전반전이 끝나자 본인을 빨리 교체 투입시켜달라고 소리지르는 놈도 있었다. 이미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팀의 분위기는 박살이 났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화룡점정은 퇴장이었다. 하... 영상을 다시 보고 있는 지금도 너무 어이가 없다. 다른 상황에 앞서서 공중볼 경합을 하는 두 선수가 모두 위험하게 떨어졌다. 상대팀 선수는 열이 받았는지 누워 있는 우리 팀의 선수의 어깨 혹은 머리를 발로 찼고 이를 보고 꼭지가 돌아버린 우리 팀의 다른 선수가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똑같이 발로 다리를 찼다. 심판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바아아아아로 퇴장이 나왔다. 우리 쪽에서 항의 이외에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면 상대팀의 퇴장과 함께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선수자식는 굴러들어온 기회를 걷어차버렸다. 분명히 경기 시작 전에 심판의 결정에 항의하지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지만 역시나 큰 의미는 없었다. 이때부터 선수들은 반쯤 이성을 놔버렸다. 숫자가 한 명 줄자 기존에 연습했었던 전술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었고 조금의 오심만 나와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낮은 리그이기 때문에 독일의 정책 차원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장애를 갖고 있는 심판들이 우리의 리그 경기에 배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날 경기에는 약간의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심판이 배정되었는데 그의 판정은 마치 레크레이션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소리를 크게 지른 쪽의 말을 들어주는 신개념 판정으로 경기를 완전히 뒤집어놓으셨다. 오프사이드라고 소리를 크게 지르면 오프사이드가 되었고 파울이라고 고함을 질러대면 파울이 선언됐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루 빨리 이 리그를 벗어나야한다 라는 것...)


0:2 패배 이후 라커룸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얼음장이었다. 지난 3년동안 팀을 지켜왔던 랄프(우리 팀의 단장)은 자신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쳐가면서 오늘 있었던 행동들이 얼마나 미련하고 X같은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조금 의역해보자면 "기본적인 걸 지키지 않고 무언가를 요구하고 나 혹은 감독, 코치에게 X같이 하는 놈들한텐 이렇게 말할 것이다. F*** YOU!" 처참한 기분을 안고 끝난 첫 경기를 뒤로 하고 그 다음주 훈련에 우리는 '다시 해보자'라며 분위기를 추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기존에 있던 채팅방을 버리고 훈련에 나온 선수들만을 초대해서 새로운 채팅방을 만들어서 그곳에서만 의사소통하기 시작했다. 


혹독한 시련 뒤 달콤한 열매를 맛보길 기대했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골키퍼가 돌연 팀을 나가겠다고 한 것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우리보다 한 계단 위의 리그의 어떤 팀에서 본인에게 돈을 주며 영입 제의를 했다는 것이다. 한 달에 300 - 400 유로 정도로 페이를 주겠다고 하며 자신은 시리아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한다고 이야기했다. 우선 8부 리그에서 3, 400유로를 줄 수 있는 팀이 없음을 아는 우리는 그건 100% 뻥카니 우리 팀에 남아있다가 더 좋은 팀으로 연결해주겠다며 간신히 달래서 당시 상황을 무마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두 번째 경기 전 날 그는 돌연 랄프에게 전화를 해서 본인이 내일 경기에 뛸 수 없음을 통보했다. 우리 팀 소속으로 한 경기라도 뛰면 잔여 시즌에 이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뛰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정말 이러면 안되지만 개판을 치는 시리아인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에 대한 편견이 쌓이고 있다. 그렇게 두 번째 경기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필자는 두 번째 경기에 개인적인 사유로 참여하지 못했다. 결과는 0:6. 그 날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번째 경기에 대해서는 길게 쓰지 않으려 한다. 그나마 잘하는 선수가 그 날 경기에 뛰지 않았고, 부상 선수들이 속출했고, 그리고 자책골까지... 두 번째 경기 또한 아주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고 들었다.


사실 우리가 진 2경기는 무조건 이겼어야하는 경기였다. 이제 다음 일정은 2주 뒤 리그 1위 팀과의 경기다. 참담함 그 자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득한 마음이다. 기존에 있는 선수 자원들도 매주 훈련, 경기에 나온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기본기가 전혀 안되는 선수들은 사실상 전술 훈련이나 세트피스 훈련은 큰 의미가 없다. 그들은 그것들을 경기에서 수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훈련은 사실상 의미없는 자원 낭비다. 경기에 누구를 내보낼 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분명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만이 경기에 나설 수 있다라고 강조했지만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는 선수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기량이 좋은 편이 아니다. 깜깜한 망망대해에서 돛단배 위에 의지하고 있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말 그대로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는' 상황이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번 시즌은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제목 그대로 어느 하나 쉬운게 없다.


감독님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이 보이는가? 착한 사람 눈엔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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