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직 조건: C사 약속, 성과급 포기

C사 약속, 성과급 포기

by 다빈사랑

마흔다섯, 나는 다시 한번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지난 장에서 이야기했듯, 안정이라는 허울 속에서 끔찍하게 말라가던 나는 직무 순환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발버둥쳤다.

하지만 번번이 돌아오는 답변은 "안정적인 자리를 왜 떠나려고 해?", "대체 인력을 찾기 어렵다", “J부장처럼 책임감있게 잘하는 사람이 없으니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식의 변명뿐이었다. 특히 '애착인형'처럼 모든 일을 떠맡아야만 존재 가치가 증명되는 현실은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그렇게 열정은 사그라들고, 더 이상 새로운 뉴스를 검색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출근길, 어제와 똑같은 건물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서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그림자처럼 나를 쫓아다녔다.


그러던 중, 마치 가뭄 속 단비처럼 찾아온 이직 제안은 내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물론 4월에 처음 받았던 제안은 내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기에 단호히 거절했다. 단순히 회사를 옮기는 것을 넘어, '의미 있는 변화'를 갈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7월, 다시금 손 내민 제안은 달랐다. '조건부 포지션 변경'이 가능한 IRP(개인형 퇴직연금) 컨설팅 직무. 오랫동안 꿈꿔왔던 새로운 방향이었다. 막상 현실이 되니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였지만, 나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새로운 도전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나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는 명확한 조건들이 필요했다. 그저 나를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것이 아니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경험과 실력,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나'를 찾아가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세 가지 핵심적인 이직 조건을 제시했고, 이는 새로운 회사, 즉 C사와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첫째, 합당한 처우와 보상, 그리고 '성장'에 대한 투자

그해 여름, 내가 몸담고 있던 B증권사는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시장의 유동성 증가와 개인 투자자들의 유입이 맞물려 증권업계 전체가 들썩였다. B사의 상반기 실적은 이미 작년 수치를 가뿐히 뛰어넘었고, 연말에 받을 성과급에 대한 기대감은 사무실 곳곳에서 감돌았다. 동료들은 “올해 보너스는 역대급일 거야”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실제로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1년 증권업계 전체의 성과급은 약 728억 5천만 원으로 이미 최고 수준이었고, 이듬해인 2022년에는 2021년 귀속 성과급이 819억 9,100만 원에 달해 역대 최고치를 다시 한번 경신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는 2018년(469억 원)부터 2022년(819억 원)까지 일관된 증가세를 보인, 거스를 수 없는 업계의 흐름이었다. 나는 B사에 남는다면 이런 막대한 성과급을 손에 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B사에 머무르는 게 이득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돈이나 직급이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다. 20년 가까이 본사 스태프라는 안정적인 테두리 안에서 살아왔고, 더 이상 높은 직급을 갈망하지도 않았다. 이미 주어진 직급도 충분히 높았고, 그에 따르는 연봉 또한 안정적이었다. 문제는 '성장'의 부재였다. 매뉴얼처럼 반복되는 업무,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 문화, 그리고 나를 '교체 불가능한 부품'으로만 여기는 시선 속에서 나의 내면은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금전적 보상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연말 성과급을 포기할 각오를 했다. 이 결정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익숙함이라는 달콤한 안정제를 내려놓고,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겠다는 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직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한 것은 눈앞의 현금 보상이 아니라, 멈춰버린 시계 바늘을 다시 움직이게 할 새로운 지식과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줄 성장 동력이었다. 새로운 회사에서 제시한 연봉 조건이 현 직장과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제안에 진지하게 임했다. 왜냐하면 연봉 테이블이 맞지 않아 1대 주주의 별도 승인을 받아 맞춰진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고, 이는 그 어떤 성과급보다 값진 보상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물론 가족들의 염려도 있었다. "호황인데 굳이 지금 옮겨야 하냐", "나이도 있는데 안정적인 곳이 최고다"라는 말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이라는 직감이 더욱 강했다. 안정적인 삶이 오히려 나를 갉아먹는 독이 되고 있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안의 '잉여인간'이 되어가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추고 싶었다. C사는 비록 전 직장인 B사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든든한 1대 주주가 버티고 있었고, 새로운 ETF 중개시스템을 구축하고 미래 금융의 핵심인 IRP(개인형 퇴직연금) 컨설팅을 강화하려는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 비전이 나의 갈증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나는 그곳에서 내가 찾던 '성장'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C사 인사 담당자는 솔직했다. “B사만큼의 성과급은 장담할 수 없지만, 연봉은 동등 수준으로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직무 전환의 기회를 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20년간 쌓은 경험을 새로운 무대에서 펼칠 수 있다면, 성과급이라는 금전적 보상은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다.


둘째, 함께할 수 있는 동료가 절실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한다는 것은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2008년 리먼 사태 때 사수의 부재로 홀로 야근하며 뒤처리를 감당해야 했던 경험, 그리고 B사에서 '애착인형'처럼 모든 일을 떠맡아야만 했던 기억들은 내게 '함께할 수 있는 동료'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특히, 증권업은 법규와 시스템, 그리고 복잡한 금융 상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인 분야였다. 새로운 ETF 중개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셋업하고, 이후 IRP 컨설팅이라는 전문 영역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머릿수 채우기식 인력이 아니라, '낙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나는 C사 측에 이 부분에 대한 강력한 요구를 했다. 업무 프로세스 구축과 실무자 양성을 위한 전문 인력을 최소 1~2명 충원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인력 충원을 넘어, 내가 새로운 조직에 안착하여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장기적으로 부서의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그들은 나의 요구에 긍정적인 구두 합의를 해 주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나는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이상적인 동료'를 직접 찾아 나섰다. 다년간의 경력을 통해 쌓아온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뛰어난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타사의 선배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다. 그분은 증권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함께 일할 때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그 선배에게 나의 이직 계획과 C사에서의 비전을 설명하고,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해 보자고 제의했다.

“선배, C사에서 새 프로젝트를 시작해요. 같이 해 보고 싶어요.” 선배는 잠시 침묵하더니 웃으며 답했다. “J, 네가 부른다면야 가지. 마지막으로 너랑 같이 하면 무슨 일이라도 재밌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해보자.” 솔직히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나의 진심과 열정이 통했는지 선배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이 순간의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외로운 싸움'을 해왔던 나에게,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다는 것은 그 어떤 물질적인 보상보다 큰 기쁨과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는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서로 의지하며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동안 TFT에서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공식적인 인정이나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시작부터 든든한 아군과 함께 하고 싶었다. 나 혼자 모든 책임을 짊어지는 '애착인형'이 아닌, 서로의 강점을 활용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팀의 일원'으로서 일하고 싶다는 강력한 열망이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함께할 동료를 직접 선택하고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이직을 통해 추구하던 '자율성'과 '주도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C사와의 두 번째 면담에서 동료 충원에 대한 구체적 약속을 받았다. “J부장님이 원하는 인재를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프로젝트 구성원은 J부장님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반영할게요.” 이 약속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내가 20년간 쌓아온 신뢰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였다. B사에서는 내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직무순환을 막았지만, C사는 나를 주도적 플레이어로 대우했다. 그 차이가 나를 설레게 했다. 동료들과 함께라면, ETF 중개시스템을 빠른 시일 내에 런칭하고, 사후관리를 선배에게 인계한 뒤, 나는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IRP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셋째, 프로젝트에 대한 확실한 권한과 미래 비전

C사로의 이직은 단순히 부서를 옮기는 것을 넘어, 'ETF 중개시스템 셋업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임무를 안고 있었다. 프로젝트 오픈까지 남은 시간은 단 6개월. 짧은 기간 안에 모든 의견을 모으고, 난관을 돌파하여 성공적으로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권한'이 필수적이었다. 과거 B사에서 식스시그마 혁신대회 프로젝트의 중간 책임자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리더십 부재와 의사결정의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리거나, 불분명한 책임 범위 속에서 헤매고 싶지 않았다.

나는 C사 측에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는 '전적인 권한'을 요청했다. 다만, 당장 '팀장'이라는 직책은 맡지 않겠다고 했다. 좀 더 일에 집중해서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 없이 프로젝트를 오픈 날짜에 신속하게 런칭하고 싶어서였다. 이는 나의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프로젝트 셋업이라는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하고 싶었고, 팀장이라는 직책이 가져올 수 있는 행정적 업무나 조직 관리 부담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핵심은 '결정권'과 '실행력'이었다. "6개월 후에 IRP 컨설팅 직무로 넘어갈 예정이니, 그때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팀원이나 팀장을 맡겠습니다"라고 명확히 나의 의사와 미래 계획을 밝혔다. 이는 C사에게도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나 자신에게도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C사는 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프로젝트에 대한 주도적인 권한을 인정해 주었고, 6개월 후 IRP 컨설팅 직무로의 전환 및 보직에 대해서도 구두 약속을 해 주었다. 이 합의는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20년 가까이 특정 업무에 갇혀 지냈던 내가, 이제는 스스로 나의 커리어 방향을 설정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더 이상 조직의 필요에 따라 특정 역할에 '묶여 있는' 애착인형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진 회계 및 시스템 지식, 그리고 20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ETF 중개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그 이후에는 진정으로 관심 있던 연금 상품의 구조를 깊이 이해하며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IRP 컨설팅 전문가로 거듭나고 싶었다.


구두 약속은 때로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지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직무 순환 약속이 번번이 좌절되었던 기억, 직급을 낮춰서라도 영업을 해보라는 불합리한 제안 등은 나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달랐다. '나'라는 개인의 역량을 믿고, '나'의 비전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를 느꼈다. 어쩌면 이러한 강력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그들이 나를 단순한 부품이 아닌, 핵심 인재로 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빠른 시일 내에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그 이후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직을 결정했다.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세상의 흐름에서 도태될 것만 같았던 불안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자각에서 벗어나 다시금 배움의 즐거움을 찾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경험을 통해 '살아있는' 감각을 되찾고 싶었다.

C사로의 이직은 단순히 직장을 바꾸는 행위를 넘어, 나의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고, 나의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발걸음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손에 쥐어 흔들리는 '애착인형'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스스로 그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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