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직을 위한 마무리: 와인 소금, 인수인계

와인 소금, 인수인계

by 다빈사랑

결심을 하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2021년 7월의 여의도는 뜨거운 태양 아래 빌딩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지만, C사로의 이직을 결심한 순간, 내 안의 열기는 그보다 더 뜨거웠다.마흔다섯, 13년 만에 새로운 도전을 위한 실질적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내면의 모든 감각을 일깨웠다.

한편으로는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온 익숙함을 벗어던지는 데 대한 미지의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애착인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강렬한 기대감이 그 두려움을 압도했다. 더 이상 조직의 필요에 따라 '뺄 수 없는 부품'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능동적인 선택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희망은 그 어떤 불안감도 이겨낼 동력이 되었다.


전 회사인 B사에서는 내가 빠지게 될 자리에 대한 우려로 최대한의 인수인계를 요구했다. 단순히 업무 파일을 넘기는 것을 넘어, 나의 머릿속에 축적된 10년간의 노하우와 시스템 이해도를 통째로 이식받으려는 듯했다. 그들은 내가 담당했던 업무와 조직 내 지원부서 및 영업부서와의 관계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소한의 공백으로 인수인계를 마무리하길 바랐다.

반면, 이직할 C사에서는 ETF 중개시스템 셋업 프로젝트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하루라도 빨리 합류해 달라고 재촉했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시스템을 런칭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기에, 나의 합류는 곧 프로젝트의 속도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마치 양쪽에서 팽팽하게 나를 잡아당기는 줄다리기 같았다.


사실 근로자로서 연차수당을 현금으로 받는 것보다 연차휴가를 소진하여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법적으로도 보장된 권리였다. 주변 동료들도 “J부장님, 마지막인데 연차 시원하게 다 쓰고 가세요!"라며 부추겼다. 그들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의 퇴사를 두고 본부장님은 더욱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인사팀에서는 퇴사 시 연차 소진이 기본 방침이었으나, 본부장님은 직접 인사팀과 '연차수당 지급'으로 협의하신 뒤,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J부장, 연차수당으로 받고 연차휴가 반납하고 인수인계에 전념해 줘." 이 요청은 나를 '애착인형'처럼 붙들어두려는 회사의 마지막 시도이자, 나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였다.


나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지난 10년간 B사에서 보낸 시간들은 비록 내면의 갈증을 해소해주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고 웃었던 소중한 기억들로 가득했다. 내가 갑작스레 자리를 비워 혼란을 주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나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떠나는 뒷모습마저 '전문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결정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새로운 시작은 과거와의 깔끔한 단절 위에서만 진정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연차를 쓰지 않고 마지막까지 주어진 업무를 완벽히 마무리하고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수인계의 여정: 책임감과 새로운 인연

내가 빠지게 되면서 B사는 채용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B사에서 나의 주요 업무는 '결제파트'에 소속되어 국내외 결제 총괄 및 신규 비즈니스 셋업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특히, 자금파트장 부재 시에는 자금파트 업무까지 함께 맡으며 부서 내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해왔다. 회계는 A사(첫 직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결제를 진행할 때 자금 흐름과 회계 처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며 부서 내의 모든 일들을 유기적으로 조율할 수 있었다. 결제업무는 모든 영업 딜의 대외적인 최종 단계로, 자금과 회계와 더불어 회사의 혈액과 신경망 같은 존재였다. 한 사람의 공백으로 인하여 결제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원래는 '채용 불가' 방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퇴사하기로 결정하면서 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입 2명 채용이 가능해졌고, 회사는 신속하게 채용 과정을 진행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신입'이었다. 금융권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금융 관련 전문용어, 상품 및 회계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인수인계 기간은 단 한 달. 이 짧은 시간 안에 이 두 명의 신입을 내가 떠난 자리를 메울 수는 없더라도 기존 팀원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기초 금융 지식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처음 신입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맑은 눈빛 속에서 나와 같은 열정의 씨앗을 보았다. 동시에 다양하고 복잡한 이 업무를 이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나는 걱정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이 마지막 한 달이, 나의 지난 10여 년의 업무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나는 인수인계 한 달 동안 이 두 명의 신입에 대한 업무 교육을 전담했다. 인수인계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기존 직원들에게는 내가 담당했던 결제 총괄, 신규 비즈니스 셋업 등 세부적인 현업 업무와 각 팀원에게 업무를 재배분하며 심도 깊게 전달했다. 반면, 신입들에게는 금융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상품들을 취급하고 관련 제도 및 규정은 무엇인지 등 기초적인 지식부터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단순히 업무 매뉴얼과 시스템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섰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회계의 기본 원리부터 증권사 시스템의 구조, 유관기관(한국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증권금융)들과의 협업, 그리고 각 업무가 회사 전체 프로세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까지,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차근차근 지식을 주입했다. 특히, 나는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 그리고 '비즈니스 예절'을 강조했다. "일이라는 것은 혼자서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거예요. 일방적인 관계는 없어요! 한 번 도움을 받으면, 지식을 습득한 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교육 중에 내가 자주 했던 말이다. 기술적인 스킬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늘지만,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는 처음부터 바르게 잡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전에는 기본적인 증권업 관련 법규와 상품별 시장 제도에 관하여 책을 읽도록 했다. 그 시간 나는 업무를 하거나 기존 팀원들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였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회계 지식의 필요성, 금융 상품의 이해, 그리고 자본시장법의 주요 내용 및 금융 전문용어 등을 쉬운 언어로 풀어 설명했다. 단순히 이론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를 들어 그들이 "아, 이래서 이런 업무를 하는구나!"라고 무릎을 칠 수 있도록 유도했다. 금융사고 등 예상치 못한 오류 발생 시 대처 방안을 알려주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금융 시장의 변동성과 시스템 오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므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능력을 훈련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사수들의 지시를 잘 따르고 눈동냥·귀동냥으로 배워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퇴근 전에는 '오늘 배운 것 중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이들이 갖는 지적 호기심에 대한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때로는 질문이 너무 사사롭거나 업무와 관련 없는 질문들로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도 했지만, 그들의 호기심과 배우려는 의지가 나를 더욱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그들은 겪지 않도록, 그리고 내가 발견했던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그들은 처음부터 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다. 내가 떠나더라도 이들이 흔들림 없이 금융인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초석을 놓아주고 싶었다.


신입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각각의 성향을 파악한 뒤, 어느 파트에 배정할지 결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두 명의 신입은 각기 다른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 명은 꼼꼼하고 분석적인 사고력이 뛰어났지만, 다소 내성적이고 속도가 느렸다. 다른 한 명은 활발하고 학습 속도가 빨랐지만, 실수가 잦고 깊이 있는 이해보다는 넓은 범위에 흥미를 보였다. 나는 그들의 성향과 역량을 면밀히 관찰하며 어떤 업무가 이들에게 더 적합할지 고민했다.

한 달간의 인수인계를 통해 나는 결정을 내렸다. 내향적인 친구는 숫자에 대한 꼼꼼함과 집중력이 필요한 '결제파트'로 배정했다. 그는 세밀한 숫자를 다루고 루틴 업무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외향적인 친구는 빠른 판단력과 외부 소통이 중요한 '자금파트'로 배정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문제 발생 시 빠르게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처럼 신입들의 '맞춤형' 배치를 통해 내가 떠난 후에도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각자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졌다. 나는 이처럼 배정한 이유를 본부장님께 자세히 설명하며 나의 판단이 합리적임을 설득했다. 본부장님은 나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의 마지막 역할은 단순한 업무 전달자가 아닌, 후배들의 미래를 설계해 주는 멘토이자, 조직의 안정화를 돕는 조력자였다.


또한, 연초부터 본부 내 승진 대상자들에게 자격 요건(교육이수, 자격증) 부족으로 승진이 힘들다고 말해왔던 상황에서, 내가 이직함으로써 그들에게 승진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내게 또 다른 의미의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B사의 인사 시스템은 다소 경직되어 있었고, 특정 직무에 대한 인력 교체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나처럼 10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킨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내가 자리를 비움으로써, 오랫동안 승진을 기다려왔던 후배들에게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되었다. 영업부서 입장에서 지원부서의 직급이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내가 빠지면 승진 대상자들에게도 기회가 올 거야."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1명 이상은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어렴풋이 새로운 기회에 대한 설렘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직이 나 개인의 성장을 넘어, 동료들의 정체된 커리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나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던 '애착인형'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큰 보상이었다.


인수인계의 한 달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새벽같이 출근하여 신입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며, 동시에 밀린 내 업무를 처리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퇴사 하루 전 목요일, 나는 오후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혹시라도 빠뜨린 업무는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키보드 위에 놓인 손을 잠시 멈추고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등 뒤로 한강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농담 삼아 본부장님은 "회사 나가면 이런 뷰 맛집은 더 이상 없다."라고 하셨다. 나 또한 좋은 환경에서 근무했던 것에 감사하며 10년이라는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내 책상, 그리고 함께 웃고 울었던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인 소금에 담긴 마음: 작별과 새로운 관계

퇴사를 결정한 순간부터 작별 선물이면서 고마움을 듬뿍 담은 선물을 하고 싶어서 장기간 고민하며 준비한 선물이 있었다. 마지막 날,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철학을 담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기를 바랐다. 고민 끝에 '와인 소금'을 만들어 친한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다.

소금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존재이기에, 나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늘 필요한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았다. 음식의 맛을 살리는 소금처럼, 나 또한 어떤 조직에서든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나의 포부였다. 소금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며 귀한 가치를 지녀왔다. 변치 않는 가치, 꼭 필요한 존재. 지난 20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나는 때로는 나 자신을 '애착인형'처럼 소모되는 존재로 느꼈지만, 동시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 나만이 채울 수 있는 공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금처럼 묵묵히,

그러나 필수적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나 자신의 바람이 와인 소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선물에 유머러스한 의미도 덧붙였다. "고기를 구울 때 가끔은 내 생각을 해달라"는 의미. 잘 울고 잦은 회의 앞에서 머리를 싸매던 나의 모습 대신, 즐거운 식사 자리에서 나를 추억해달라는 따뜻한 메시지였다. 이 작은 농담 속에는 함께했던 시간들에 대한 고마움과, 앞으로도 이어질 우정에 대한 기원이 담겨 있었다.

와인 소금은 단순한 소금이 아니었다. 와인을 정성껏 졸여 소금과 함께 구워내는 작업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와인의 풍미가 소금 결정 하나하나에 스며들도록 여러 번 반복하며 로즈마리와 함께 볶으면서 건조시켰다. 와인을 졸이는 동안 퍼지는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깊은 향기는 지난 B사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직접 손으로 소금을 굽고 병에 담으며, 동료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어떤 말을 전할까 고민하며, 나의 마지막 마음을 담았다. 와인 소금은 그렇게 나의 정성과 진심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이 되었다.


마지막 날, 금요일도 늘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출근 전인 동료, 선후배 책상 위에 와인 소금을 올려놓았다.

선물을 받은 친한 동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와인 소금이라니, J부장님 다우세요! 섬세하고 센스 있어요."라며 감탄하는 이들도 있었고, "이거 만들 시간에 잠이나 더 자요! 고생하셨네요, 정말."이라며 걱정 어린 말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아쉬움과 격려, 그리고 변함없는 우정이 담겨 있었다. 몇몇은 내 손을 꼭 잡고 "어디 가서든 잘하실 거예요, 꼭 성공하세요!"라며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지난 10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함께 신규 비즈니스를 진행했던 날들, 어려운 난관을 함께 극복하며 환호했던 순간들, 그리고 사소한 농담에도 까르르 웃던 평범한 일상들이었다. 와인 소금은 그 모든 추억을 농축한 결정체 같았다.

평소에 내가 존경하고 잘 따르던 임원분들에게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늘 신경 써주시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 덕분에 힘든 과정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회사 생활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J부장은 어디서든 잘 할 거야, 좋은 모습으로 조만간 다시 보자고!" 나를 믿어주시는 분들 곁을 떠나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정든 회사를 떠나며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짐처럼 남아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대표님께 나의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는 송구스러운 감정이었다.

대표님은 내가 B사에 와서 만난 세 번째 대표님이었다.

팀장 직함도 아니었기에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셨겠지만, 멀리서 대표님의 경영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대표님께서는 "비용 신경 쓰지 말고, 영업을 잘해서 커버하면 됩니다. 공격적으로 나가세요." 이 한마디가 나는 너무 좋았다. 소극적으로 마냥 허리띠만 졸라매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매출 증대로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모두가 파이팅하는 분위기로 만들어가시는 모습이 좋았다.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인자하게 회사를 이끌어주셨다. 우연한 기회에 대표님과 동석할 수 있는 점심 식사 자리가 주어졌고 대표님의 발자취와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하셨고 성과를 함께 나누고자 하셨다. 그분 덕분에 내가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먼저 이직을 결정하고 떠나는 입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것이 너무나도 송구스럽고 민망하게 느껴졌다. 마치 잘 키워주신 부모님을 떠나는 자식의 마음 같았다. 나는 나를 '애착인형'처럼 붙들어두려 했던 회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의 업무 능력과 기여도를 인정했기에 내가 현 위치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며 놓아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력 교체에서 오는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성장 욕구를 묵살당하며 정체되는 삶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직은 나 자신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과의 마지막 인사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다.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어쩔 수 없었던 나의 선택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결국, 나는 대표님께 따로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그렇게 정든 회사를 떠났다.

나의 마지막 퇴근길은 홀가분함과 함께 미처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감정을 뒤로 한 채 부서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공식적인 환송회는 없었지만, 몇몇 친한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와 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며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J부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로운 곳에서도 잘 해내실 거예요."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지난 세월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새로운 여정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듯했다.

금요일의 마지막 불빛이 꺼지고, 나는 익숙한 사무실을 뒤로하고 홀가분하면서도 묘한 아쉬움을 안고 퇴근했다. 다음주 월요일에는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에정이었다.


미지의 문턱에서: 설렘과 확신

새로운 C회사가 어떤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나의 마음은 새로운 희망과 비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월요일, 새로운 출근길에 올랐을 때, 나는 마치 새롭게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20년간의 익숙한 루틴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그 순간의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C사에서 내가 꿈꿔왔던 것은 단순한 직무 전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다시 정의하는 시작'이었다. 데이터 분석 중심의 IRP 컨설팅 직무는 내가 오랫동안 갈증을 느꼈던 '새로운 도전,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터였다. ADsP(데이터분석 준전문가) 자격증을 공부하며 느꼈던 '내가 할 수 있구나'라는 작은 성취감이 이제는 현실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무엇보다 '애착인형'처럼 조직의 기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함께할 동료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은 그 어떤 불안감도 잠재울 만큼 강력했다.


C사는 나의 경험과 능력을 믿고 '필수 인재'로 대우해 주었다.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주도적인 플레이어로서 나를 인정해 주었다. 이것은 A사, B사에서 번번이 좌절되었던 직무 순환 약속, 나이와 성별을 이유로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혔던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과 같았다. 이제는 나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빠른 시일 내에 C사에서 원하는 새로운 ETF 중개시스템을 구축하고, 차질 없이 진행하여 고객 중심의 연금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로 넘어가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이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갈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라고 굳게 믿었다.


2001년 IMF 위기 극복, 2008년 금융위기, 2013년 식스시그마 발표 등 지난 20년간 수많은 위기와 도전을 헤쳐오며 쌓아온 나의 경험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이제 새로운 무대에서 빛을 발할 준비를 마쳤다.

성과급은 포기했지만, 내가 잃은 것은 돈이 아니었다. 내가 잃은 것은 '애착인형'이라는 굴레, 조직에 의존하며 내 자존감을 깎아먹던 정체된 구조였다.

나는 이제 나의 미래를 스스로 그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C사에서의 새 출발은 나의 커리어에 새로운 장을 열 뿐만 아니라, 나의 삶 자체를 재정의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었다.

나는 설렘과 확신을 안고, 미지의 문턱을 넘어섰다. 이제 진정으로 '살아있는' 감각을 되찾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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