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과 현실의 간극
2021년 여름, 빌딩 숲 사이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건물로 들어서며, 설렘과 불안이 뒤엉킨 양가감정이 가슴을 뛰게 했다. 20년 금융 경력—2001년 IMF의 혼란 속 탈출과 함께 첫발을 뗀 후, 2008년 금융위기의 쓰나미를 홀로 헤쳐 나가고, 2010년 핀테크의 열풍 속에서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대학원에 진학했던 시간들, 2013년 식스시그마 혁신 프로젝트의 중간 책임자로 앞장섰던 경험, 그리고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진 코로나19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시간들—나는 이 모든 역사의 소용돌이를 딛고 새로운 도약을 꿈꿨다.
특히 B사에서 10년간 '애착인형'처럼 특정 업무에 묶여 있던 나는, ETF 중개시스템 셋업 이후 IRP 컨설팅 직무로 전환해 주겠다는 약속을 단단히 손에 쥐고 이곳에 왔다. 6개월이면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런칭하고, 마침내 새로운 직무로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기대를 가차 없이 배신했다. 뜨겁게 불타올랐던 8월의 열정은 12월의 차가운 겨울 바람 속에서 식어버렸고, 나는 약속과 현실 사이의 깊고도 쓰라린 간극을 마주했다.
균열의 시작: 첫 발부터 삐걱거린 시스템
입사 첫날,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려 했으나 나의 업무시스템 세팅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 현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기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구두로 진행 사항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새로운 환경이니 이해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음 날, 마침내 전산 세팅이 되어 업무 전산망에 접속했는데, 계속해서 업무 시스템에서 튕기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나는 IT 담당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꾸 업무 시스템에서 튕기는데 왜 이럴까요? 한 번 봐주시겠어요?"
담당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자주 그래요. 껐다 켜시면 될 거예요."
'재부팅(Rebooting)'이라는 전문 용어조차 생략된 '껐다 켜라'는 말에 나는 일차적으로 당황했다.
하지만 곧이어 더 큰 황당함에 직면했다. 나는 이미 재부팅을 해 봤지만 같은 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고 말했고, 돌아온 답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럼 전선이 의자에 눌린 것 같으니, 앉으실 때 전선이 눌리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라는 말에 나는 외마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네!?" IT 담당자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인지 내 귀를 의심했다. 회사의 기본적인 인프라가 이렇게 허술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타사 IT 본부장을 찾아가 왜 이런 증상이 나오는지 여쭤봤다. 돌아온 답은 명확했다. "보통은 전산 시스템 케이블이나 전선을 정리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바닥을 조금 높이든지, 그게 어렵다면 캡을 씌워 깔끔하게 정리해야 해. 그런데 C사는 그냥 전선을 카펫으로 지저분하지 않게만 덮어 둔 상태인 것 같군." 원인을 알고 나니, 이건 본질적으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나는 전선이 눌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내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 사소한 IT 문제는, 어쩌면 앞으로 내가 겪게 될 모든 혼란과 불합리의 전조였을까?
며칠 지나지 않아 회사가 시끌시끌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봤다. 갑자기 1대 주주 회사에서 파견 나와 상주해 있던 수석님이 나에게 오더니 업무 R&R(Role & Responsibility)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 업무를 지속적으로 해 오던 회사인데 이제 와서 R&R을 새롭게 정립한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상대는 나를 보며 이해한다는 듯이 "해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되물었다. 내가 담당하던 업무는 아니었지만 업무 흐름은 알고 있었고 타사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기에,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타사 선후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각 부서가 해야 할 업무 역할과 처리 절차를 정리해 나갔다. 타사 후배가 "근데 이걸 왜 선배가 해? 수익증권 담당자도 아닌데 그걸 왜 하고 있어?"라며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도 나에게 되묻고 싶었다.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지?' 하지만 우선 이 문제가 더 시급해 보였고, 일단 정리를 해 주고 내 본업에 충실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게 내가 정리한 프로세스 기준으로 업무가 재정비되었다.
회사가 참 '양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껍질을 까면 깔수록 눈물이 나는 회사였던 것이다.
한 번은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 전산 장애가 났는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보통은 전산 장애가 나면 온 부서가 일사불란하게 수습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마련인데, 여기는 평온을 넘어 무감각한 것 같았다. 몇몇은 웃으며 커피를 마시러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기본적인 위기 대응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내가 과연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ETF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런칭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설렘의 시작, 그리고 가속화된 균열
첫 출근날, 사무실 창밖으로 펼쳐진 여의도의 풍경은 마치 새로운 세계의 문 같았다. "여기서 나를 다시 쓰겠다." ETF 시스템은 내 손으로 완성할 퍼즐이었고, IRP 컨설팅은 20년 경력을 빛낼 무대였다.
상반기 기준으로, 작년 실적을 이미 상회한 B사의 2022년도 성과급을 포기하며 선택한 이직은 단순한 직장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애착인형'의 굴레를 벗고, 나를 주체로 세우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앞서 겪었던 전조들처럼,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ETF 시스템 셋업은 단순한 기술 작업이 아니었다. 한국거래소와 한예탁결제원의 규제, 자본시장법의 복잡한 요구, 그리고 시스템 오류를 최소화해야 하는 압박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매일 아침 9시, 회의실의 형광등 아래서 시작된 논의는 쉬이 끝나지 않아 점심 이후에도 이어졌고, 다른 회의들이 저녁까지 줄지어 있었다. 결론을 내기 위해 하루 6시간 릴레이 회의도 진행되었다. "이 로그,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이 제안은, 한국거래소에서 반려됐어요." 동료들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나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특히 협력기관과의 관점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했고, 우리는 새로운 시스템에 맞춰 절차를 조율하려 애썼다.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 시간만 흘러갔다.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기존 멤버들과 점심 자리가 마련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빨리 런칭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을 전했을 때였다. 그들은 웃으며 "2~3개월 지연은 큰 문제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여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야 그 의미를 알았다. 정말로 프로젝트는 계속 지연되고 있었고,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객과의 약속을 져버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무감각함은 나의 조급한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산재했던 문제들은 다행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갔다. 협력기관들과 통화를 하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되어 있어야 할 절차들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ETF 중개시스템을 붙이기 위해 정회원 가입부터 시작했어야 했고, 유관기관마다 다 다르게 설정된 고유 코드값을 일원화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심지어 유관기관 IT 쪽 사람들과도 계속 접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계좌단 설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단순히 ETF 중개시스템에 붙이는 작업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난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 내내 머리를 싸매며 계좌 체계를 설계하기 위해 업무 플로우를 쉼 없이 그려 가며 고심고심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고, 혹시 모를 오류를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다음 날 출근해서 그 개념을 설명하고, 서로 오류를 잡아 가며 문제점이 없는지 의견을 나누고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외주 팀이라는 든든한 동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라면 이 퍼즐을 기필코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동료의 빈자리, '애착인형'의 그림자
가장 뼈아픈 건 인력 충원 문제였다. 전 직장 B사에서 10년간 합을 맞추며 일했던 동료들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와인 소금을 나누며 "고기 구울 때 J부장님 생각할게요"라던 동료들, 그들의 시너지가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하였고,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C사에서도 서로를 존중해 주며 격려하는 그런 동료를 원했다. 나는 일에 관해서 나와 결을 같이할 수 있는 선배—증권업을 꿰뚫고, 문제 해결에 진심이면서 후배 양성에 에너지를 쏟는 50대 초반의 인재—를 면접에 올렸다. 그녀는 내가 꿈꿨던 프로젝트의 핵심 열쇠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대표님과 팀장급 이상이 모인 정기 업무 보고 자리. 대표님은 내가 추천한 인재의 충원이 힘들 것 같다고 선언하셨다. "대표인 나보다 증권업 경력이 6개월이나 먼저 시작됐더군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대표님의 말은 단호했고, 그 안에는 어떤 타협의 여지도 없었다.
"J부장,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대리, 과장급 젊은 인력을 채용해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시장에서 그런 사람을 데리고 오세요."
나는 맥이 탁 풀리는 듯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전 직장에서 나이와 성별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했던 직무 순환의 기억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새로운 곳에서는 다를 것이라 믿었는데, 결국 똑같은 장벽에 부딪히는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경험과 치열한 논의가 프로젝트를 완성합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담당자들을 교육시키며, 후배 양성이 가능한 낙수효과를 일으키는 사람이 절실합니다." 나의 설득은 공허했다. 대표님의 눈은 이미 다른 서류로 향해 있었고, 나의 목소리는 회의실의 텅 빈 공간에 메아리 없이 사라졌다.
B사에서 느꼈던 '애착인형'의 무력감이 이곳에서 더 강렬하게 되살아났다. 조직의 틀에 갇혀, 나의 목소리와 나의 비전은 묵살당하는 듯했다. '만약 그때 그 선배가 합류했다면?' 이 질문은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젊은 인력은 열정적이었지만,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경험은 아직 부족했다. 나는 종합증권사 출신 몇몇 분들에게 의견을 하나로 모아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지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서는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정작 의사결정하는 자리에서는 기존 직원들과 뜻을 함께하며 나와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지 못한 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이 표류 중이었다. 결국 모든 문제의 무게는 나에게 쏠렸다. 나는 혼자서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시너지를 내는 대신, 홀로 모든 책임과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이직을 통해 벗어나려 했던 '애착인형'의 역할이, 더욱 고립된 형태로 다시 주어진 것이다.
야근의 공허함, 번아웃의 전조
인력 충원의 좌절은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야근은 이제 일상이 아니라 숙명이 되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저녁, 사무실의 컴퓨터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면 말없이 일하던 무겁고 조용한 밤공기는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시스템 화면 요건을 정의하고, 밤늦도록 오류를 찾고, 협력기관에 보낼 보고서를 몇 번이고 수정했다. 한참을 일하다 허리를 펴기 위해 일어섰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랑 외주 IT 용역분들만 남아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저녁 7시를 훌쩍 넘긴 상태였다. '시한이 정해진 프로젝트를 하는데 어떻게 나와 외주분들만 남아 있고 모든 사람들이 퇴근을 할 수 있을까?' 의문과 함께 깊은 허탈감이 밀려왔다.
외주 부장님께 "부장님, 오늘은 여기까지 정리하시고 내일 다시 하시죠?"라고 먼저 말을 건넸다. 외주 부장님은 "그렇게 하시죠, 내일 오전 회의도 있으니 들어가시죠!"라며 서로를 바라보며 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로의 마음은 무거웠다.
프로젝트는 더디게 진행되었으며 진척률이 잘 올라오지 않았다. 그 불안감은 물리적인 피로와 함께 나를 잠식했다. 번아웃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B사에서는 10년간 합을 맞춘 동료들과 빠르게 비즈니스를 올렸던 익숙한 루틴 속에서 느껴보지 못한, 차갑고 불편한 기분이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걸까?' 자문했다. 막대한 성과급을 포기하고, 쌓아둔 연차를 반납하며 잠깐의 휴식조차 포기한 채 이직을 선택한 이유는 자유와 주도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금 조직의 거대한 톱니바퀴 중 하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이전보다 훨씬 더 큰 하중을 홀로 짊어진 채로 말이다. 육체는 지쳤고, 정신은 혼미해졌으며, 열정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이런 '변화'가 아니었다.
외주 팀, 희망의 불씨
그러나 이 모든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비록 내가 원했던 합을 맞추며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동료와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프로젝트에 합류한 외주 용역팀은 예상 밖의 선물이었다. 무엇보다도 도메인 지식을 갖고 대화를 함에 있어 티키타카가 되었다. 나는 외부 용역분들과 함께 자리 배치되었고, 우리는 업무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이사님 한 분은 일하시는 스타일이 나와 비슷했다. 문제가 있으면 즉시 체크해서 처리하는 분이었기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업무 합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늘 내 옆자리에 앉아 든든한 버팀목처럼 함께해 주신 여자 부장님은 언제나 나의 고민을 경청하며 함께 이슈 사항들을 논의하고 아이디어를 내며 정리해 나갔다. 그분들과 함께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들은 단순히 계약에 묶인 파트너가 아니었다. 마치 내 일처럼 프로젝트에 뛰어들었고,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그 힘든 시간들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끝이 없어 보이는 회의에서 우리는 뜻을 같이했고, MTS 화면을 함께 분석하며 "여기서 변수 하나 놓쳤네요, 매핑이 잘못됐어요."라며 웃던 순간들, 시스템 테스트 성공 후 서로 하이파이브하던 순간은 그 어떤 고통도 잊게 할 만큼 소중했다. "J부장, 우리 주어진 시간 안에 해낼 수 있어요." 그들의 격려와 믿음은 지쳐 쓰러질 듯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비록 사내직원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내가 전 직장을 떠나며 꿈꿨던 '진정한 동료'들이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서로 눈빛만 봐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과의 끈끈한 인연은 이직의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다시 '애착인형'의 굴레에 갇히는 듯했지만, 적어도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주체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균열 속에서 피어난 결심
2021년 12월, 프로젝트는 여전히 미완이었다. 약속됐던 6개월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IRP 컨설팅 직무 전환은 요원해 보였다.
나는 사무실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이미 그들은 나와의 구두 약속을 잊은 채 이번 세팅이 끝나면 IRP(개인퇴직연금) ETF 시스템 구축도 해 주기를 요청했으며, 1~2년 동안 세팅을 맡아주기를 바랐다.
C사는 나를 자유롭게 할 무대라 믿었는데, 현실은 또 다른 '애착인형'의 굴레, 혹은 그보다 더 혹독한 시험대였다.
그러나 외주 팀과의 작은 성취들, 그리고 그들의 굳건한 믿음은 나를 버티게 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 있었다.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했지만, 나는 이들과 함께 끝까지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나를 믿어 주는 이가 있고, 내가 믿을 수 있는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내 안의 균열은 더욱 깊어졌지만, 그 틈 사이로 새로운 형태의 희망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나는 이 알 수 없는 길의 끝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설령 고통스러울지라도, 더 이상 도태되지 않고 변화의 흐름에 몸을 싣는 것만이 진정한 '삶'을 위한 길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