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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lish Nov 13. 2020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2

쌉쌀한맛



어느 동네를 가든 몇 걸음 간격으로 빼곡히 있는 게 카페라지만 내 입맛에 맞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낯선 곳이라면 ‘000 선정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카페 Top 100’ 정도 되는 강렬한 문구가 붙어있지 않는 한, 한참 리뷰를 뒤적여도 마음에 쏙 드는 곳을 찾기 어렵다. 


초콜릿 음료가 간절한 날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여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여행지에서는 간직하고 싶은, 혹은 자랑하고 싶은 사진을 남길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는지가 잠깐 혀를 스쳐 지나갈 맛보다 중요할 테니. 중요한 건 일상에서의 낯섦이다. 경험한 맛이 어땠는지가 다시 찾고 싶은 곳인지 아닌지 결정짓는 판단 근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홍대에 있는 독립서점 가가77페이지(gaga77page)에서 인스타 라이브 북마켓에 참여하기 위해 오랜만에 홍대를 방문한 날이다. 지방에서 자란 나는 상경하기 전 홍대카페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무명이었던 가수 10센치가 2010년, 2011년에 연이어 선보인 <아메리카노>와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는 부산 고등학생 소녀의 마음에 ‘in 서울 성공하면 할 일’에 대한 답변 중 하나를 채우게 해 주었다. 20살의 나는 길치의 장점을 백배 살려 홍대, 합정, 상수의 골목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다양한 콘셉트의 공간과 카페 별 특색 있는 메뉴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전부이던 내 취향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했다.


약 30분간의 라이브를 끝내고 잠시 식사를 하러 나왔다. 

마감시간이 임박한 불고기집에서 허겁지겁 쫓겨 흡입을 하고 나니 배는 부른데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이는 분명 초콜릿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다. 배가 찼기 때문에 케익이나 초콜릿 피스 같은 고체보다는 빠르게 당을 흡수시켜 뇌에 어쩌면 넘칠지도 모를 칼로리가 제공됐음을 알려줄 액체가 적당하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인 나를 위한 맛있는 아이스초코가 있는 카페를 찾으면 된다. 카페 천국 홍대에서 그 정도 일이란 식은 죽 먹기보다 간단한 일이겠지! 


지도 앱으로 주변 카페들을 찾아보고 혹시 아직 앱에 등록되지 않은 새로운 가게가 있을까 봐 전동 킥보드를 타고 골목 별로 스캐닝을 해본다. 코로나의 여파 때문일까. 종종 들리던 곳은 간판만 남은 채 폐업했고 불이 꺼진 가게가 수두룩하다. 이내 마음을 접고 가까이 있던, 건물이 통째로 카페인 곳을 들어갔다. 손님도 제법 있는 것을 보면 맛이 없지는 않으리라. 세계 어딜 가나 한국인이 몰려있는 맛집은 최상의 맛은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수준의 맛은 제공하는 곳이니까.



메뉴판을 살피니 아이스초코 옆에 설명이 적혀 있다. 초콜릿을 직접 녹여 만든 아이스초코. 애매한 ‘초코 맛 우유’를 싫어하는 진성 초코덕후에게 초콜릿을 직접 녹여 만들었다는 말은 진하기는 보장할 수 없어도 풍미나 식감은 보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녹지 않은 가루가 씹히거나 단 맛과 인공향이 강한 시럽 맛을 만날 일은 없을 테니.


음료를 받아 들고 다시 서점으로 향했다. 하얀 우유 거품 위에는 얇게 간 초콜릿이 몇 조각 얹어져 있다. 이미 행복해진 마음으로 빨대를 힘껏 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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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퀵 맛과 가까웠다. 


사실 코코아 음료 중에서 네스퀵은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 녹지 않은 가루가 씹혔고 조화를 깨트리는 묘한 맛이 혀 끝에 부딪힌다. 차라리 온전한 네스퀵 맛이었다면 실망은 했을지언정 바닥이 보일 때까지 함께했을 것이다.


결국 직접 녹인 초콜릿이 들어갔다는 아이스초코는 내 식도가 아닌 지하철 역사 속 음료 통을 통과하게 됐다. 만족스럽지 못한 초콜릿 음료를 맛본 게 처음도 아니지만 어쩐지 씁쓸하다. 10년 전 로망이었던 장소, 그 장소를 매력적으로 바꿔주던 공간들이 변화한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아니면 세월에 비례해 건조해져 가는 감상에 대한 안쓰러움일까. 분명 달콤했는데, 쌉쌀한 맛이 유난히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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