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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exxtwo Apr 13. 2022

‘미련’은 정신의 소화불량이다.

#니체

4월 중순도 되지 않은 날씨 치고는 날씨가 꽤나 여름 같았다. 출근하러 열심히 종종 거리는 내 걸음에 어느새 몸은 열이 올라 있었다. 땀이 나는 체질은 아닌데 요새는 출근길에 왜 그렇게 땀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자율 출퇴근인 회사를 다니는 지라 아무리 시간을 자유롭게 바꿔보아도 여전히 출근 시간은 출근시간 이어서 일곱 시부터 아홉 시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열심인 사람들을 보면 참 대한민국 사람들은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는데 앞에 있는 대학생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어디를 그렇게 함께 가는 것인지 둘은 연신 히죽거리며 서로를 바라보기 바빴다. 마스크로 입을 가려 말이 잘 안 들리자 둘은 눈으로 대화하는 듯 보였다. 그런 둘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대학생 때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나도 저렇게 예쁘게 연애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갑자기 미련이 남는 듯했다. 지나갔던 인연들에 대한 미련이 분명했다. 가지가지 다양한 만남이 분명 있었는데 왜 그 끝은 늘 헤어짐이었던 걸까. 모두 다 나의 잘못 인 것만 같아 마음이 회초리를 맞은 것 마냥 따가웠다. 결국 지금 만나는 사람이 없는 것도 무엇인가 내가 부족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아 이상하게 고개가 숙여졌다.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나 싶은 자책감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들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책을 읽던 중 니체의 했던 말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미련’은 ‘정신의 소화 불량’이고 ‘후회’는 ‘정신의 구토’다



오늘 출근길 내내 나는 미련 섞인 감정으로 나 자신을 후회하며 자책했는데 이 글을 읽자마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내 과거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넘실 대는 기억들을 아직까지도 차마 정리하지 못해 넘어오는 신물이 정말 정신의 구토 같았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내가 과거에 어떤 결정을 내렸고 또 어떤 행동을 했건 간에 그것은 과거의 내가 내릴 수 있었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정과 행동의 동기가 내가 내릴 수 있었던 모든 역량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정말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욕망의 순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던 지 간에 나는 과거의 나를 존중해주기로 결심하였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기억을 그만 씹고 이제 삼켜 소화시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렇게 소화된 기억들이 온전히 내 양분이 되어 더 튼튼하고 건강한 나 자신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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