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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Oct 04. 2016

[16.05.13] 바르셀로나행 야간열차

프랑스 앙제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나는 프랑스에 교환학생을 오면서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짜지 않았다. 목돈이 생겨서, 여행은 많이 다녀야겠다 생각했지만 거의 무계획으로 건너왔다. 꼭 가보고 싶은 나라는 가자- 정도만 정해뒀다. 
 사실 스페인은 나에게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는 아니었다. 물론 어느 나라든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있겠냐만, 좁은 선택지에서 걸러지는 최고의 척도는 '충격'이다. 매체에서든, 사람과의 이야기에서든, 그 나라에 대한 '긍정적 충격'이 있어야 그 나라에 꼭 가보고 싶어진다. 스페인은 한 번도 그런 것을 느끼지 못 했다. 그래서 딱히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 친구 예진이가 나랑 같은 학기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교환학생을 오게 됐다. 고등학교 친구와 같은 시기에 같은 유럽, 그것도 바로 접해 있는 나라에 와 있다는 건 정말이지 큰 기쁨이자 위안이다. 우리는 서로의 거처에 방문하기로 했고, 같이 스페인 남부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나는 예진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페인에 10일을 투자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방법은 많다. 비행기, 기차, 버스, 자동차.
가난한 한낱 유학생인 나는 최대한 싼 방법으로 예진이가 사는 바르셀로나에 가야 했다. Skyscanner와 SNCF 등 모든 사이트를 뒤져 찾은 최저가는 야간열차였다. 몸이 고될 것도 예상됐고 조금 무서웠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야간열차를 타보겠냐'하는 마음에 덜컥 예매를 했다. 그렇게 싸지도 않았던 것 같다. 89유로 남짓, 12만 원 정도이다. 돌아올 때는 비행기가 싸서 비행기를 두 번 타고 넘어온다.



Angers - Paris - Toulouse - Barcelona 총 세 대의 기차를 탔다

  



  첫 번째 기차를 탔다. 전날 Angers에서 12일 19:44 기차를 타고 내내 자다가 22시 가까이에 파리에 내렸다. 메트로를 타고 Quai de bercy 역에 내려서 Gare d'Austerlitz역까지 한참 걸었다. 비가 살짝 왔는데 우산 꺼내기는 귀찮고 우산을 굳이 쓸 정도도 아니어서 바람막이 모자를 쓰고 걸었다. 걷는 길은 내내 을씨년스러웠다.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옆 큰 건물 하나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참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Gare d'Austerlitz역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꽤 많이 남아서 휴게실에 가서 폰을 만지고 노래 들었다. 나오니까 줄이 엄-청 길었다. 역시 바캉스 기간! 겨우겨우 들어갔는데 내 칸이 너무 안쪽이라 뛰어야 했다. 걸었으면 기차를 놓칠 뻔했다. 내 생에 첫 야간열차였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으면서도 난감했다. 자리가 너무 협소하고.. 화장실 줄도 길고..  일부러 사람이 무서워서 여자 전용칸의 3층, 제일 높은 침대를 선택했는데 좋았다. 짐 놓을 데도 많고 다른 사람이 날 안보니까. 자리마다 귀마개 손수건 세트도 비치돼있고, 생수도 한 병 있었다. 짐 정리 대충 하니 밤 11시 반?쯤이어서 옆 사람이 불을 끄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잠들 준비를 했다. 근데 화장실 줄 길어서 볼 일도 못 보고 손 씻고 렌즈만 뺀 상황이라, 얼굴도 화장 때문에 찝찝하고 옷도 불편했다. 그래서 거의 2시간은 잠을 설치고 잠들었다가 새벽 6시에 깼다. 일어나서 화장실 갔다 오고 짐 정리하고 45분에 내렸다.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하다.



3층 침대에서 내려다 본 열차


좁지만 아늑한 내 공간. 생각보다 위생적이다.


Angers에서 Paris로, Paris에서 Toulouse로 가는 기차표.

 여긴 Toulouse! 환승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서 역내 모노 데일리로 갔다. 샌드위치를 사 먹고 폰이랑 팟 충전하면서 여행 일정을 정리하고 여행지들을 검색했다. 다시 렌페에 올라타고 또다시 폭풍 헤드뱅잉..! 




Toulouse에서 Barcelona로 가는 기차표.


Toulouse와 Barcelona 의 사이, Perpignan! 내가 여기에 있다!

 


 곧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오전 11시 20분쯤 내렸다.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는데, 난 스포츠 문외한이다. 그런데 지난 솔드 기간에 아디다스에서 예쁜 바람막이를 반값에 샀는데, 가슴팍에 레알 마드리드 팀 로고가 박혀있다. 딱히 그 팀의 팬이라기보단, 비가 조금씩 자주 오는 Angers에 살며 바람막이가 갑자기 필요했고, 그냥 예뻐서 샀다. 하필 FC 바르셀로나가 우승해서 축제하는 시즌에 바르셀로나에 와서 레알 마드리드 옷을 입고 있는 내가 얼마나 웃겼을까..! 바르셀로나에 기차가 다다라서 내릴 준비를 하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다 들리도록 내 이야기를 했다. 완벽히 알아듣진 못했지만
"Real Madrid!!!! Real Madrid!!!!"
하고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민망했다.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3일 동안 시선을 느껴야 했다. 거리엔 FC 바르셀로나의 우승을 축하하는 행렬이 가득했지만...!

  예진이를 기차역 맥날 앞에서 만났다. 짐이 무거워서 3.6€나 주고 맡기고  맨눈으로 밖에 좀 돌아다니다가 아레나홀 화장실에서 렌즈 끼고 본격적으로 관광을 시작했다. 아레나홀의 마트 들어가서 오렌지 주스 사서 들고 다니면서 마셨다. 너무 힘들어서 잠깐 벤치에 앉아 쉬면서 마시다가 일어나서 메뉴 델리아를 먹으러 밥집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화사한 바르셀로나의 거리.




11.45€에 코스요리를 엄청 좋은 분위기에서 먹다니 감동적인 스페인 물가!








맛있게 치즈 버거와 감자칩을 먹고 나와서 포트벨로 향했다. 몬주익 성도 보고.. 포트벨에서 수평선에 취해 한참을 앉아있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없어 그림 같은 풍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모호한 경계. 정말 경계가 없었다. 
몬주익 성 - 내부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외관 감상으로도 벅찼다.


내려와서 호안 미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천천히 감상을 했는데, 몸이 너무 힘들어서 중간중간 앉아서 쉬고, 졸기도 했다. 대충 마무리하고 나와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책에서나 보던 호안 미로-




 그런데 어렵사리 찾아가 웨이팅까지 한 스시 맛집이 전석 예약이라 거절당했다... 이미 스시 먹을 생각에 들떠있던 우리는 다른 메뉴를 도저히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결국 길을 걷다 마주한 또 다른 스시집에 들어갔는데 굉장히 만족했다. 스시의 질도 좋고 맛있고 엄청 많이 먹어서 창피할 정도였다 ^^ 일정 금액을 내고 무제한으로 접시를 추가하는 방식이었는데, (컨베이어 벨트는 아님) 첫 주문부터 엄청 시켰는데 계속 직원분들께 추가 주문을 해서 결국 어떤 여자 직원분이랑 눈 마주치고 빵 터졌다..^^



이것은 우리가 먹은 것의 극히 일부이다. 첫 시작일 뿐...





저녁을 다 먹은 후, 아레나 몰 지하 마트에 가서 빵과 맥주를 사서 몬주익 분수쇼를 보러 갔다. 나는 레몬 맥주! 하지만 홉 맛이 느껴지는 모든 맥주를 못 마시는 나는.. 역시 몇 모금 마시지 못하고 버렸다.




 사람도 많고 멋있었다. 멀리서 보고 직지문화공원이라 해서 미안할 정도로.. 괜히 세계 3대 분수쇼가 아니다!! 색감도 색감이지만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은가루처럼 떨어지는 게 너무 감명 깊었다. 한참 보다가 막차 때문에 산츠역에 급하게 가서 내 짐을 찾고, 메트로 타고 예진이 기숙사로 갔다. 씻고 바로 누워서 수다를 떨다 잠이 들었다. 이렇게 스페인에서의 첫 하루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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