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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외과 신한솔 Feb 22. 2022

정형외과 의사 엄마의 출산기 (2)

분만, 모유수유, 산후조리원

https://brunch.co.kr/@hansoltop/27


윗글에서 이어집니다.


     막달이 다되어 나의 친정은 모 광역시이고, 나의 근무지는 서울이었는데, 서울에서 차마 혼자애를 낳고 돌볼 자신이 없었다. (우리 남편은 여전히 공노비 상태였다.) 나는 이때 매우 용감하게도 산후 조리원을 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터라 출산휴가 3개월 기간 동안 친정에 내려가 있기로 하였다. 

    

    아이를 낳고 신생아를 데리고 친정에 내려갈 것인가, 아이와 내가 통째로 친정에 내려가서 애를 낳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만삭 때 내려가기로 하였다. 결국 나는 네 번째 산부인과 선생님과 함께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다. 


    임신 중독증 증상이 생기면서 졸지에 고위험 산모가 되어 버린 나는 대학병원에 방문하였다. 임신 막달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가야 하는데 38주에 시행한 초음파 검사에서 양수 감소 소견이 관찰되었다. 아이를 무조건 낳아야 할 만큼 적은 건 아닌데 지켜보기에는 찜찜한 정도라 하셨다. 


    양수과소는 소아정형외과적인 여러 질병들의 위험 인자다. 가장 흔하게는 첫 번째 영유아 검진에서 항상 확인하는, 고관절 탈구의 위험인자 이기도 하다. 첫째, 여아, 양수과소 모두 고관절 탈구의 위험인자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교수님께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상태에서 유도 분만하면 엄청 산모가 힘들 거예요"


    "괜찮아요, 여자가 정형외과를 했는데 살면서 모가 더 힘들겠어요"


    산부인과 선생님은 박장대소하셨다. 이제와 생각하니 가련한 중생의 객기에 대한 웃음이셨으리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주둥이를 한 대 탁 쳤을 발언이지만, 어쩌겠는가, 츨산은 겪기 전에는 옆에서 누가 백날 이야기해도 모르는 일이다. 임신 중에 무슨 일이 있든 애가 뱃속에 있을 때 제일 편하다는 말은 낳고 이해한다. 


    결국 나는 그다음 날 출산 휴가를 내고 유도 분만을 하기로 했다. 전날 저녁은 매일이면 먹고 싶은걸 못 먹는다고 곱창에 치킨에 한 세끼 분량을 먹었다. 아침 7시에 병원 분만실에 도착하여 유도 분만을 위한 약이 투입되었다. 출산에 있어서 남편이 의사이면 가장 나쁜 점은, 무슨 일이 언제쯤 일어날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네 몸상태면 오전 중에 절대 애 안 나올 테니까, 먼저 분만실 가서 약 받고 할 거하고 있어 나는 점심때 갈게"


    그렇다, 나는 무려 첫 아이의 출산을 위한 분만실 입실을 혼자 하였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 출산도 혼자 분만실에 갔다.) 약을 투여하기 위하여 혈관을 찾고 주사 바늘을 꼽아야 하는데 인턴 선생님이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실패한다고 안 잡아먹어요. 편하게 해요."


    정형외과 사람들이 다 보기보다 속정이 많지만, 병원에서 인턴이 보기에는 가장 무서운 과중의 하나이다. 인턴 기준 어느 병원을 가도 일이 힘든 과 탑 3에 정형외과가 뽑힐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 것을, 내 딴에는 긴장을 풀어 준다고 농담을 한 건데, 나의 말에 더 긴장을 하였는지 인턴 선생님은 3번인가 4번 만에 혈관을 잡았다. 2번째 넘어가면서부터는 내가 내 팔에 혼자 혈관을 잡을 것인가를 고민했던 거 같지만,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점심이 지나서 눈곱을 주렁주렁 달고 온 남편을 맞이하며 분만실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였다. 나는 진통은 저녁이 지나서야 시작되었고, 우리 아이는 하루를 넘겨 다음날 새벽에 나왔다. 셋째 엄마라고 하신 분은 진통을 하며 분만실에 들어오셔서 30분도 안되어서 순산하시는 걸 보면서 너무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진통 이 있고 나서의 과정조차 뭐 하나 스펙터클 하게 진행되었다. 관장이 제대로 안되어서, 출산을 위해서 힘을 줄 때 못 볼 것이 함께 나왔으며, (큰애야 미안해.) 무통 주사도 너무 늦게 들어가서 오분만 무통 천국을 누린 뒤 무통 주사를 잠겄으며, 무통 주사를 멈추는 타이밍은 또 애매하게 늦어서 결국 산부인과 전공의 선생님이 내 위에 올라타고 배를 눌러서 애가 나왔다. (엄마가 의사여도 병원에서 이런 일들이 다 생긴다. )


    출산 과정은 남편이 함께 들어와서 진행되었다. 아이가 나왔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처음 한 질문이


"APGAR score는 몇 점이에요?"


였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이 계신다면 이 엄마 진짜 진상이구나 할 거다.) APGAR score는 갓 태어난 신생아의 상태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A(appearance, color)는 외모와 피부 색깔, P(pulse)는 맥박 수, G(grimace)는 반사 흥분도, A(activity)는 활동성, R(respiration)는 호흡을 의미한다.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긴다.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진행되어야 하는 평가이며, 소아과 왕족(왕 족보, 항상 시험에 나오는 정말 중요한 내용)이다. 


    산부인과 교수님이 웃으시며, 살다 살다 APGAR score를 물어보는 산모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여기서 대화가 끝났어야 하는데, 우리 아이는 APGAR score가 9점이었고, 일점은 대체 어디서 왜 모자라냐 등등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대화중 나는 재빠르게 남편에게 지령을 내렸다. 


"손가락 발가락 10개 맞는지 붙은 거 없는지 얼른 세봐."


    나의 이 직업병이란. 아이가 안정화되고 아이를 나에게 보여 주셨는데 정말 남편과 똑같아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내가 이틀에 걸려서 남편을 낳았다니. 


    꼬박 하루가 걸린 출산 후 병동으로 돌아왔다. 병동에 돌아오자마자 최대한 빠른 회복을 위하여 계속 걸어 다녔다. 어차피 무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서 걷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새벽 2시에 조용히 휴게실에서 걷는 날 보고 간호사들이 말했다.


    "이야, 정형외과 선생님은 애 낳자마자 바로 걸어 다니시는 게 가능하시군요."


    설마요. 정형외과라서 가능한 거겠나요. 제가 그냥 의지의 한국인이죠. 


     새벽 출산 이후, 건강한 사지 멀쩡한 산모라는 이유로 다음 날 바로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갔다. (아이를 낳고 30시간에 만에 퇴원 수속을 밟았다.) 큰 아이는 매우 예민하였던 관계로 한 번에 3시간 이상을 안 자고 2시간에서 2시간 반마다 한 번씩 계속 깼다. 정형외과 의사들끼리는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순간을 뽑으라고 하면 정형외과 1년 차 시기를 뽑는데, (혹은 정형외과를 합격한 인턴 시기) 나는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이때 둘째를 낳으면 내가 사람도 아니라고 했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둘째까지 낳아서 잘 키우고 있다. 


    가끔 셋째를 낳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거기까지는 내 능력 밖인 것 같다. 다둥이 어머님들은 항상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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