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OO는 엄마는 내가 아는 의사들이랑 이미지가 다르네요?"
"다른 의사들이 어떤데요?"
"뭐랄까.. 좋게 말하면 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고, 나쁘게 말하면 좀 싸가지없는?"
일단 살면서 저런 의사를 보셨다면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하고 싶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그렇다고 의사들은 싸가지가 많아요,라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의사라는 직업군이 일반적인 대한민국 평균과 다른 특성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이를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찾고자 한다. 사실 냉정하게 살펴보면, 고학벌과 맞물려 있는 전문직들이나 특수 직업군은 상당히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 많다. 사실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청문회 등을 보다 보면 가지고 있는 사회도덕적 기준 등이 (소위 말하는 싸가지가)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다 같은 선상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장 전입만 하여도 비단 전문 정치인이 아닌, 공공기관 사장이나, 장관 임명에서도 놀랍지도 않게 발견된다. 나는 근 40여 년을 살면서 내 주변에서 위장전입을 한 사람을 아직 못 보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여러 배경을 가진 다른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 만족하는 분이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비난하면서 미국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기본적으로 미국도 줄 세우기는 다 있다. 나는 미국 공립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 애들이라고 시험 성적 신경 안 쓰는 거 아니고, 미국 애들이라고 줄 세우기가 없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극명한 차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교육 제도는 남을 밟고 올라가야 된다. 그리고 이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의 기본은 1등과 2등이라는, 실제 학업적인 능력에서는 아무 차이도 없을 것 같은 깃털 같은 차이에 너무나 큰 의미를 둠으로서 시작된다. 지금은 고등학교 내신을 등급으로 산출 하지만, 현재 사회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 학생 때는 전 과목 성적을 더해서 1점이라도 차이가 나면 다르게 줄을 새웠다. 하나 못해 지금의 등급제도 상위 4% 까지만 1등급인데 반하여, 20여 년 전에는 1점의 차이도 차이라고 줄을 세웠다. 미국에서 a+는 학교 마다야 차이가 있겠지만 4% 보다는 더 줬다. 옛날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대학교랑 거의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래도 7-8% 정도는 a+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고, 이 a+도 정해진 명수를 주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점수 분포를 보고 결정하였다. 학생이 5명이 있는데, 이 5명이 모두 전 과목에서 A+을 맞았다고 치자. 그럼 그냥 이 다섯 명이 똑같이 honor roll을 받는 학생이다. 나의 학창 시절 기준, 우리나라는 이 5명을 총점으로 비교하여 누군가에게는 1등을, 누군가에게는 5등이라는 전교 석차를 주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극명하다. 옆에 친구나 나나 똑같이 A+를 받을 수 있는 상위 5% 정도의 학생들이라고 하자. 미국 같은 시스템에서는 친구가 모르는 걸 알려주거나 친구에게 내 필기를 빌려줘서 친구가 나보다 1-2점 정도 점수가 더 잘 나온다고 해도 어차피 나도 A+, 친구도 A+인 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친구가 1-2점 점수가 더 잘 나오면 나는 2등이고 되고 친구가 1등이 되는 구조다. 남과 협동을 하면 안 되고, 내가 가지고 있는 패를 보이면 안 된다. 이런 시스템에서 살아남아서 소위 말하는 의대를 가고 명문대 법대를 가서 사법고시를 통과한 분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기는 어렵다.
학생 때 속칭 "청갈자"라 불리던, 청년기의 갈등과 자기 이해라는 수업이 있었다. 이 수업은 정말 1초 만에 수강 신청이 완료되는 수업이었던지라, 예과 2년 동안 단 한 번도 수강 신청을 성공한 적은 없지만 몇 번 청강을 간 적은 있었다.
이제는 20년 전 일이라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서 청소년기 발달이 딱 3년 느려요. 외국에서 15세 정도에 이루어지는 청소년기 발달 과업이 우리나라는 18세에 이루어지는 거죠. 이유는 고등학교 3년간 정서적으로 성숙과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또래 그룹 사이의 과도한 경쟁과는 별개로 우리나라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는 집에서 상전이다. 의과대학을 붙고 친구들끼리 엠티를 갔을 때, 달걀을 혼자 깰 수 있는 동기가 채 절반도 안돼서 놀랐던 적이 있다. 집에서는 계란 프라이를 하거나 라면 먹을 때 달걀 한번 깰 일 없이 크면서, 학교에서는 과도한 경쟁에 몰렸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랄까. 특히 나 때는 수업시간에 교수님들 조차 의과 대학 역사상 애들 수능 성적이 제일 좋은 때라며, 내가 너희 때였으면 의사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시던 시절이었다.
나도 극히 싹수없는 애의 전형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안하무인으로 지내왔다. 학창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인간말종과 인간의 경계에 존재하던 게 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랑 놀아 줬던 친구들이 다 보살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나마 사람의 범주에 들어왔는데, 내 뜻대로 되는 바가 하나도 없는 육아를 하면서, 내가 잘나서 이만큼 큰 게 아니라 부모님의 피, 땀, 눈물로 컸구나를 깨달았다. 삶에서 크게 실패라고 할 것도 없이 살다가 정말 하루 24시간 한 달 내내, 두 시간에 한 번씩 깨고, 밥은 더럽게 안 먹으면서, 체중 미달인 큰 아이를 키우면서, 인생은 노력한다고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며,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음을 배웠다. 어느 날인가 동생이 나에게 언니는 옛날에는 사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어라고 하였는데, 너무나 나의 과거에 대한 적절한 묘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당연한 진리를 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다시 의대 입시는 달리는 입시가 되어 버렸다. 좀 더 노력하는 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당연하지만, 삶에서 배워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놓고 가야만 하는 입시 제도를 만들고 그 안에 우리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