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형외과 신한솔 Feb 16. 2022

불신사회

정형외과 이야기

불신


    사전적 의미는 남을 믿지 못함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경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나의 전공의 생활을 관통하였던 키워드이자, 지금도 내가 환자를 보는 중요한 마음가짐 중의 하나가 불신이다.


    아직은 인턴이던 꼬꼬마 시절의 이야기이다. 정형외과를 합격은 하였으나, 아직 인턴 생활이 끝나지 않은 예비 전공의를 위하여 당시 치프 선생님들께서 오리엔테이션을 해주셨다. 한 분 한 분 한 꼭지씩 맡아 정형외과의 중요한 지식과, 응급실에 환자 보는 법, splint(반깁스)와 cast(통깁스)하는 법 등을 알려 주셨다. 마지막 꼭지는 정형외과 의사의 마음가짐? 태도?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정형외과 의사가 갖춰야 할 제일 중요한 덕목은 불신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믿고, 남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지 말며, 부득이하게 남에게 일을 맡겼을 때도, 맡기고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은 내가 다시 한번 다 검토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근무를 했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하게는 나 자신도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를 지녀라."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 확인을 하고 승인이 나야 일이 진행이 된다. 보통은 가장 밑에서 일을 하는 사람과 검토하고 확인하는 사람이 다르다. 그런데 병원일은 좀 애매하다. 가장 말단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전공의)이 최종 승인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 우리 과의 경우 상대되는 내과가 없다. 소화기 내과에서 암을 진단하고, 외과에서 수술하게 되는 경우, 여러 전문의를 거치게 되지만 정형외과의 경우 한 의사가 진단하고 한 의사가 수술한다. 진료의 연속성 면에서는 큰 장점이지만, 의사가 의심하는 습관이 없으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기 쉽다.



    나는 이 불신하는 습관이 나의 의사 생활에 여러 번 도움이 되었는데, 응급실에서 온 노티(이런 이런 환자가 있다고 알려주는 것)를 믿지 않고 처음부터 환자를 다 다시 진료 봐서 놓쳤던 진단명을 잡아 냈다거나, 영상 판독이 의심스러운 부분은, 꼭 전화하여 상의하고 더블 체크하였다. (이 자리를 빌러 나의 잦은 전화를 받아주셨던 영상의학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아이를 둘 키우는 엄마로서, 세상이 좀더 믿음 직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지만, 나 자신은 나도 남도 믿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진료를 본다.

    


작가의 이전글 교수님이 직접 수술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