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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외과 신한솔 Feb 16. 2022

교수님이 직접 수술하세요?

수술장 CCTV

    전날 친한 엄마가 전화가 왔다. 본인의 아버지가 암이셔서 두 분의 교수님을 알아봤는데, 혹시 두 분 다 직접 수술하시는지 알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수술장 CCTV 논란과 더불어, 내가 진료 본 그 의사가 직접 수술을 하느냐는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이다. 내 개인의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CCTV 자체에 대해서 신경을 쓰진 않는다. 내가 어차피 피부 봉합까지 다 하고 나오는 데다, 오히려 수술장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 경우에는 녹화된 CCTV가 있으면 틀어서 보여 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CTV에 대해서 '저는 찬성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는 환자에게 있어서 최적의 의료 제도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의료제도의 모든 포인트가 환자가 '저렴히' 치료를 받는다에만 집중하다 보니 구멍이 몇 군데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수련이다. 


    말로서 의학을, 특히 수술하는 과의 수술을 전수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직도 첫 환자의 피부를 절개하던 느낌이 생생하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 살이 절개하는 느낌과 실제 사람이 살이 절개되던 느낌의 차이는 컸다. 그전까지 내가 절개를 해보았던 건 돼지 껍질이나, 해부 실습실의 카데바였는데, 살아 있는 사람의 피부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었다. 사람의 피부를 절개하는 단순한 작업에도, 주어야 하는 힘의 정도, 메스(칼)의 각도, 출혈 시 대응법 등이 다양한데 이건 본인이 해봐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행히도 나는 좋은 기회를 받아 학생 때와 전임의 때에 미국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외국에 한번 나갔다 오면 진짜 국외에서 수련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드는데,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이는 수련과정에 큰 차이에서 비롯한다. 미국의 경우, 외래 진료 보기 전에 학생이나 전공의, 전임의가 미리 환자를 진료를 보고 치료계획을 수립해 보는 과정이 있다. 이 과정은 모두 환자 앞에서 이루어지며, 수련과정에 있는 의사가 잘 못된 진단을 내리거나 필요 없는 검진 과정을 거쳤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이 착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 수련병원/대학병원에 오면 당연히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싫은 사람들은 대학병원에 오지 않는다. 수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수님과 전임의가 같이 수술장에 들어가는데 전임의가 칼을 잡고 집도 하고 교수님이 옆에서 일일이 훈수를 두면서 수술이 진행되었다. 팔만 부분 마취하고 진행하는 수술이어서 환자도 이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았다.


    대학병원의, 교수의 제일 중요시되는 사명이자 첫 번째 업무는 다음 세대의 의사를 키워내는 것이다. 교수라는 말 자체가 가르칠 교(敎), 줄 수(授)라는 말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의학이라는 학문적 특성상 강의가 아니라 경험으로서 지식이 전수되어야 하고, 이는 수술장에서 전공의/전임의 선생님에게도 집도를 해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서는 전수될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는 의료 집중화가 심하다. 모두가 서울로 서울로 올라온다. 상급종합병원이 전체 의료비 지출의 4분의 1을 넘게 차지한다. 모두가 지방에서 몇 시간씩 걸려서 서울에 와서, 몇 달을 기다려서 스케줄을 잡고 수술을 한다. 그리고 CCTV를 봤는데 교수가 직접 수술하지 않고 전공의가 수술을 하고 교수는 옆에서 도와만 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게 납득이 될 리가 없다. 수술을 잘하는 교수님들은 다 서울에 있잖아요라고 말씀하신다면, 솔직히 드리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꼭 그 교수님만 수술을 잘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대학병원에 있는 분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 말일 텐데 밖에서 유명한 교수님과 직원들이 찾아가는 교수님이 다르다. 소위 말하는 빅 5에 취직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논문 실적이다. 논문은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논문을 잘 쓰는 의시가 꼭 수술을 잘하지는 않는다. 수술은 말 그대로 술기이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수학 문제를 잘 풀 순 있지만, 피아노를 잘 치는 건 아예 다른 문제다. 정말 타고나게 수술을 잘하는 재야의 고수들이 많이 계신데도, 무조건 서울로 올라와서 몇 달씩 기다리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수년 전 대학병원 산부인과 실습에 남학생이 참여하고, 또 이에 동반한 잦은 내진으로 인하여 환자가 느꼈던 불쾌감이 기사화된 적이 있다. 환자의 마음은 백번 이해한다. (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내 가슴을 노출하기 싫어서 혼자 심전도를 찍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학생들은 산부인과를 어디서 배워야 하나 싶다. 


    좋은 의사가 길러지지 않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환자들이다. 지금도 몇몇 과의 의사 부족 현상으로 인하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의료 낙후 지역이라고 일컬을 만한 지역들이 존재한다. CCTV를 설치하건, 설치하지 않건 우리가 CCTV를 설치하고자 하는 목적에 대하여 다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더 나은 의료를 받기 위해서 무엇이 최선일지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여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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