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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외과 신한솔 Feb 12. 2022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아동 학대

    몇 년 전 있었던 일이다.


    "교수님, 기저 질환 없는 3개월 된 남자 환아, septic hip (고관절에 고름이 차는 질환)으로 응급 수술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전공의와 야밤에 전화를 하면서 환자의 병력과 사진을 받아 보는데 이건 뭔가 이상했다. 염증 수치도 높지 않고, 체온도 너무 정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엑스레이만 가지고는 염증보다는 골절 같은데, 3개월짜리 아이가 뼈가 부러지기는 쉽지 않다. (3개월짜리 아이는 스스로 이동이 불가능하다. 좀 더 큰 개월 수의 아이들을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다고나 하지.) 일단 수술 준비하고 mri를 찍어 놓고 있으라 오더를 내리고 새벽같이 병원에 가서 애를 보는데 이건 뒤통수가 싸하다. 


    의학은 넓은 범주의 과학이지만, 인문 사회학적인 측면이 두드러지는 학문이고 사람을 대하는 학문이다.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은 과학적이지만, 그 병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인간에게, 사람에게 나타난다. 그래서 병이 아니라 사람을 파악하는 것도 치료의 중요한 요소이다. 예전에 스승님께서 의사는 관상을 잘 보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이 말을 들을 당시에는 이해를 못 했는데, 나름 13년째 짬밥을 먹은 의사로서 요즘에는 역시 스승님의 말씀은 틀린 게 없다고 되뇐다. 관상이라고 하면 이게 웬 돌팔이 약장수 같은 소리인가란 생각이 드는데, 나름 환자분들을 계속 뵙다 보면 촉이라는 게 생긴다. (이 촉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나름 이 촉이 잘 맞는 편인데, 이 날 환자와 보호자를 진찰하고 나서 정말 말 그대로 뒤통수가 싸했던 것이다. 


    보통 이 정도 개월 수의 아이가 아프면 열에 열, 예상되는 보호자의 반응이 있다.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되는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누워 있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데 부모가 제정신을 잡기는 쉽지 않다. 보통 아이들은 아프면 보채고,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보채지도 못하고 쳐진다. 검진 당시 아이는 축 쳐 저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엄마가 너무 태연하다. 아이가 언제부터 다리를 만지면 울었는지, 이렇게 쳐져서 움직이지도 않는지 물어보는데 보호자 중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일주일 정도 전부터 아이가 이상했던 거 같다고만 했다. 


     의사의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을 지닌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는 하늘에서 오는 금 동아줄이고, 누군가에게 가슴에 꽂는 비수이다. 내 머릿속의 생각을 입 밖을 뱉는 순간,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내가 져야 한다. 확신을 얻고자 영상의학과 교수님에서 찾아갔다. 


    의사 사회는 철저한 위계 사회라 윗사람한테 무언갈 물어보는 건 참으로 부담스럽다. (영상 교수님은 나보다 10년은 선배님이셨다.) 하지만 지금은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다. 영상의학과 교수님께 찾아가서 모든 영상을 하나하나 같이 보고 의견을 나누면서,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는 대퇴 경부 골절, 경골 골절, 대퇴 원위부 골절, 갈비뼈 골절 등을 포함한 다발성 골절이 동반된 아동 학대였으며, 염증이라고 생각했던 고관절은 대퇴 경부 골절이었다. 


뼈가 두 겹으로, 울퉁불퉁해 보이는 부분이 다 골절이다.무릎 하나에서만 저만큼 골절이 관찰된다.


    경찰에 신고 후 형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보호자는 아동학대를 극구 부인하며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을 요청하였다. 이 당시 놀랐던 사실은, 의사가 아동학대를 100프로 확신하여도 현시점에서는 아이와 보호자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 아이는 다행히 시기적절하게 잘 치료받았고, 아동학대로 보호자가 처벌받은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 


    학생 때 미국 의사 고시를 우리나라 의사고시와 함께 준비한 적이 있다. 사실 배우는 내용이 그게 그거고, 의대 수업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어서 공부에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배우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가르치고, 시험에 항상 나와서 따로 공부하여야 하는 부분이 있다. 보건과 아동학대에 관한 것이 그것인데, 미국 의사 시험에는 아동 학대 문제는 거의 매년 나오는 단골 문제이며,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 아이의 경우, 아이의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한 일주일 전부터 현재까지 8명의 의사를 만났는데 아무도 아동학대를 의심하지 못하였다. 전생의 업을 한번 덜라고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다행히 놓치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전원 가고 나서 다음날, 아이 할아버지의 네가 뭔데 우리 가족을 파탄 내느냐는 전화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이 부모의 판결은 거진 1년이 다되어서야 났고, 그 사이에 나는 길가다 칼 맞는 거 아닌가라는 고민과, 판결 전까지도 학대한 부모와 함께 지낼 아이가 걱정이 되었었다. 


    아가, 이제는 행복하게 건강히 자라고 있으면 좋겠어! 이모가 기도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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