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로서는 (진) 좋은 의사 정도라고 생각한다. (좋은 의사로 진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말 쓰면 다들 더 남자인 줄 알던데...) 그런데 엄마로서는 솔직히 나는 꽤 진상이라고 생각한다. 진상 엄마가 의사면 좋은 점은, 병원에서 소아 환자 보호자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는 거다. 가끔 주변에서 내 외래를 슬쩍 보고, "어휴 저 엄마 진짜 질문 많네요."라고 하면, 나는 "제가 병원 가면 아마 더 물어볼걸요? 저 정도는 애 엄마의 기본이죠"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다.
이런 내 딸이 아빠가 애를 보다가 이마에 상처가 났다.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이 계신다면 전 문장의 핵심은 아빠가 애를 보다가 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필이면 이런 일은 꼭 아빠가 애를 볼 때 일어나서 더 엄마의 복장을 터지게 한다.
지금 까지 꿰맨 상처가 수천 개가 되고 지금 까지 본 피를 다 합치면 유조차 하나는 채우고 남을 텐데도, 우리 애 머리의 피와 상처를 보는 순간 정말 숨이 막혔다. 이 상황에서 내가 내린 처음 결론은 현실 부정이다. 이 상처는 안 꼬매도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상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일단 소독을 해주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 주었다. (그 당시에 나는 상처를 제대로 벌려서 보면 내 숨이 멈출 것 같았다. 역시 중은 제 머리 못 깎는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차마 열어볼 자신이 없어서 남편한테 상처 열어보고 어떤지 말해 달라고 했는데 아뿔싸, 이건 꼬매야 할 상처였던 거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병원에 늦게 오는 어머님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됐다. 막상 내일이 되니 문제를 해결해야겠단 생각보다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병원은 빨리 가세요.)
일반적인 의사 엄마면 이 시점에 바로 병원에 가겠지만, 나는 만렙 진상 엄마였었기에, 어디를 가야 우리 아이 이마에 상처를 안 남기고 잘 꿰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주변의 성형외과 친구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상처는 2cm 정도로 크지 않았는데, 대학병원에 가면 전공의가 꼬매고, 개인병원은 잘 안 꼬매 주고 시간이 늦었으니 네가 꿰매는 게 최선일 꺼란 결론이 나왔다.
네? 모라고요? 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모 상처가 얕고, 길지 않아서 전공의가 꼬매도 나쁘진 않을 텐데, 여자애라서 신경 쓰이면 네가 꿰매는 거밖에 방법이 더 있나."
결국, 나는 우리 딸을 우리 병원 수술장으로 데리고 와서, 손가락 신경 꿰맬 때 쓰는 현미경을 가지고 한 땀 한 땀 장인 정신으로 아이의 이마 상처를 꿰매었다.
다행히도 흉은 남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는 아이들 손발의 수술 상처도 얼굴 꿰맬 때 쓰는 가느다란 실을 쓰는 습관이 생겼다. 같은 아이를 키우는 육아 동지로서 드리는 작은 선물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