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긴 하루를 접고 조각난 마음을 주워 담다.

괜찮아, 지구별엔 누구나 처음인걸

알람이 울리면,

목이 늘어난 면티와 무릎이 불쑥 튀어나온 트레이닝복을 벗고, 출근을 위한 차비를 한다

잠에서 깬 30분 전의 부스스한 몰골을 순식간에 걷어내고 말쑥한 차림으로 대문을 나선다.


늘 만원사례인 지하철, 주차장 같은 도로를 헤치고 직장으로 향하는 한두 시간의 텀은, 한나절 친숙하게 불리던 딸, 아들, 아내, 엄마, 남편, 아빠라는 익숙함을 접어두고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전환하는 시간이다. 


도착한 일터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오는 매너 없는 차처럼, 일이 쏟아진다.


머릿속으로 순조롭게 예상한 업무는 예기치 않는 곳에서 태클이 걸리고, 발 한쪽도 담그지 않았던 업무로 인해 억울한 핀잔을 듣기도 하고, 시간에 총총거리며 간신히 넘긴 서류는 반려되고, 담당이 아닌 업무지원 때문에 막상 해야 할 일에 구멍이 생긴다. 



하루의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침에 대문을 나설 때 호기롭게 외친 ' 오늘도 힘 내보자! '라는 응원의 힘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여기저기 치여 숭덩숭덩 구멍이 생긴다. 


긴 하루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정신없이 흘러간 오늘을 되짚어보며 바느질로 구멍을 기우듯 조각난 마음을 주워 모아 본다.

피식 웃다가, 마음을 달래다가, 우쭐대다가, 씩씩거리다가, 혼자로도 부족하면 장문의 카톡으로 친구를 소환한다.  


그렇게 이래저래 감정을 정리하다 보면 가슴에 품었던 뾰족했던 사표라는 무기는 슬그머니 무뎌지고 둥글어진다. 

그리고 다시 내일을 기대할 힘이 생긴다. 



당신의 치열했던 하루 중 잠시 스치고 지나간 일이었지만 , 내게 밝은 미소와 목소리를 전해줘서 고마워요.


차가웠던 마음에 온기가 스며들었어요. 

그 온기로 무표정한 다른 이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답니다. 


오늘 하루도 충분히 잘했어요. 

덕분에 고마워요




캘리그래피 by 정혜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