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까만 고양이.
여자아이라 공주라고 부른다.
그 아이에게 밥을 주다 보니
자주 그 아이의 수다스러운 말들을 듣곤 했다.
이제 날 보면 반가운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벽 모서리를 부비적 거린다.
고양이만의 애정표현이다.
얼마 전 아래 사는 주인집에서
고양이를 무서워하는데 자꾸 집 근처를 배회하니
밥을 주지 말라고 했다.
그 후부터 그 애를 보면 밥을 줄 수가 없어서
미안하단 말만 해댔다.
무능감을 절감했다.
날이 추울 때면 내 몸이 추운 것보다
바깥의 아이들에게
오늘 밤이 고비는 아닐지 괴롭다.
그래서 겨울이 더 싫다.
그러다 꿈에 공주가 나온 거다.
그 아이를 데리고 올 수도 없고 모른척하지도 못하던 나는
그 애가 내내 앙앙 우는 걸 보고만 있다가
주인집이 나오는 걸 보고 저 멀리 보내려고 했다.
들키는 것보다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러다 갑자기 내가 공주가 되었다.
여러 감정이 몰아쳤다.
그리고 그건 그 아이를 보는 내 감정이었다
무능감 괴로움 공포 두려움
그리고 죄책감.
언젠가 이사를 갈 때
저 아이를 두고 갈 수밖에 없을 텐데
내내 마음에 걸리고 떠올리며 후회할 걸 안다.
그렇다고 길아이의 숙명을
내 마음대로 휘저을 자격도 없다.
우리 집에 데리고 오는 게 능사가 아닌 걸 아니까.
지금까지도 거리를 두고 완전히 곁을 주지 않는
저 친구의 삶을 존중해야 하고
또 우리 집 아이들도 생각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건 무거운 마음으로
마주칠 때마다 눈빛을 보내는 게 전부다.
오늘은 이웃집에 아이들에게 주던
사료 포대와 사료통을 전달하고 왔다.
꿈을 꾸고 나니 무거운 마음이 더해져서
내내 생각만 하던 일을 하게 됐다.
나 말고 누가 주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애들 오가는 곳에 밥이 있으면 그만이다.
직접 뵙고 드리고 싶었지만 댁에 안 계신 것 같아서 그 집 대문 앞에 사료랑 같이
언 손으로 간단하게 상황을 적은 편지를 써두고 왔다.
그저 우리 집 근처 아이들이 하루라도 덜 배고프고 덜 춥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어딘가의 작은 존재들이
아프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인간으로서 늘 갖고 있는 이 부채감이
조금은 덜해지는 세상이면 좋겠다.
그냥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