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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Jan 11. 2020

Zynga는 어떻게 부활했나_1편

전지적 개발자 시점 _7편

미국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위치한 Zynga HQ.

    어쩌면 아직 Zynga의 부활을 이야기하기엔 이를지도 모른다.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생각해보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일개 모바일 게임 개발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Zynga라는 이름은 사실 2011년 그들이 상장했을 때 창업 4년 만에 1조 원 가치로 평가받는 유니콘의 이름이었다. 그 영광이 계속될 거라고 여겼지만, 2015년 이후 추락한 주가는 2달러 중반에 불과한 수준으로 상장가(11달러)의 5분의 1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이대로 무너지거나 EA 등 다른 회사에 인수될 것이라는 루머도 떠돌았다. 그런데 5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 Zynga의 주식은 다시 6달러대 중반으로 상승해 최저점 기준으로 3배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이런 상승은 최근 1년 사이에 있었던 변화인데 지난 4년여간 어려움 속에서 허덕이던 회사가 어떻게 다시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그 변화는 중심에는 어떠한 요소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Zynga의 황금기 - 페이스북 게임 시대

Zynga가 개발한 페이스북 기반의 소셜 게임 'Castleville'

    페이스북 게임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의 게임 시장은 사실 소셜 게임, 현재의 모바일 게임의 초기 모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페이스북이 소셜 게임 외 다른 부분에 많은 투자와 집중을 하고 있지만, 이 당시 페이스북의 수입에서 페이스북 게임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플랫폼을 이끌었던 기업이 Zynga라는 스타트업이었다. 

그들을 왕좌의 자리에 올려놓은 게임은 'Farmville'과 'Cityville'이라는 농장 육성 소셜 게임과 도시 육성 소셜 게임이었다. Farmville은 2009년 ZyngaPoker로 자본을 확보한 후 야심 차게 내놓은 소셜 게임이었다. 2010년 고작 출시 1년 만에 83.76 밀리언 월 활동 유저(MAU), 34.5 밀리언 일일 활동 유저(DAU)를 기록하며 Zynga에게 엄청난 부를 가저다 주었다. 이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Zynga는 2010년 12월 후속작 'Cityville'을 출시해 출시 50일 만에 61 밀리언 MAU를 기록하며 'Lord of the Rings'의 Two tower를 연상케 하는 캐시카우(지속적으로 수익을 만들어주는 수입원)를 얻게 된다. 내부에서 이 당시에 이 두 개의 게임을 통해 매일 20 밀리언, 원화가치로 200억 원 이상의 수입이 들어왔다고 하니,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시장임에는 틀림없었던 것 같다. 5년여의 황금기는 Zynga를 EA보다 현금 보유가 더욱 많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Zynga는 왜 갑자기 쇠퇴의 길을 걸었나.

Zynga의 급격한 Cash value하락을 보여주는 그래프

    무엇이 현재의 Zynga로 이끌었는지 그 변화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Zynga를 무너트렸던 요인인지 먼저 볼 필요가 있다. 2007년 1월  9일,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들고 나온 'Iphone'이라는 스마트폰은 몇 년에 걸쳐 모든 시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2010년 기준 세계 80여 개국으로 퍼져나간 Iphone은 2011년 1억대 돌파, 2012년 2억대, 2014년 4억대로 계속해서 판매의 속도가 가속화되어 그 어떤 플랫폼보다 강력한 플랫폼으로 정착했다. Zynga의 몰락은 모바일폰 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Zynga의 자체 게임 플랫폼의 모습

    페이스북 게임을 통해 엄청난 자본과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한 이후, Zynga가 시도한 1번째 방법은 스팀과 같은 페이스북으로부터 독립된 '자체 게임 플랫폼'의 개발이었다. 그를 위해 다양한 장르의 소셜게임 라인업들을 확보해서 자사 플랫폼의 라인업을 강화했다. 자사 개발 게임뿐만 아니라 3rd 파티들과의 협력을 통한 확장성도 잊지 않았다. 소셜 게임을 즐기려면 Zynga의 플랫폼을 떠올리게 하려는 구상이었다. 페이스북 게임 유저들은 Zynga 게임 플랫폼 내에서 충분히 원하는 게임들을 즐길 수 있으니, 굳이 다른 회사들의 게임을 찾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또 하나 초기 노출이 굉장히 중요한 소셜 게임 시장에서 이미 성공한 다른 게임들을 통해 확보된 유저들에게 자사 개발의 새 게임 들을 홍보하는 '크로스 프로모션'은 플랫폼 위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도는 새로운 격변기를 맞기 전까지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이 시기 Zynga는 새로운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방향을 회사 내 발표를 통해 공개했다. 

'실제 카지노와 연결하는 도박 게임 개발'과 '멀티 플랫폼'

    ZyngaPoker는 소셜게임 Poker 장르의 선두주자였다. 새로운 게임 디자인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공급해야 하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Poker라는 게임은 저비용 고효율을 자랑했기에 Zynga에게 놓칠 수 없는 수입원이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Zynga는 실제 카지노에 들어가는 게임을 개발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실제로 이것이 가능해졌다면, 분명 Zynga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박에 관한 한 엄격한 주법이 적용되고, 여러 가지 라이선스 획득에 어려움을 겪던 회사는 결국 이 목표를 접게 된다. 

    또 한 가지 목표는 '멀티 플랫폼'이었다. 현재도 수많은 회사의 미래 목표로 거론되고 있는 멀티 플랫폼은 2010년대 초반 Zynga안에서도 비전으로 구상되고 있었다. 페이스북 게임 시장에서의 장악력을 모바일로 그대로 옮겨가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된 목표였다. PC 기반의 페이스북 게임을 동시에 모바일 기반 플랫폼에서도 사용 가능하게 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구상은 사실 게임 회사의 의지만으로 현실화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여러 다른 하드웨어 개발사들과 부품 개발사 등의 합작과 새로운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노력들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미션이었다. Zynga는 결국 이 목표도 포기하게 된다. 

 

2013년 기준 IOS Game Top Chart. 킹과 슈퍼셀이 제작한 게임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계속된 목표 설정 실패로 많은 시간을 허비한 Zynga는 뒤늦게 모바일 게임 시장에 합류한다. Iphone의 폭발적인 보급과 안드로이드 OS와의 경쟁을 통해 더욱 강화된 애플리케이션 시장은 이미 수많은 강자들의 전장이었다. 슈퍼셀, 킹 등의 유럽 모바일 게임 강호들은 이미 차트의 꼭대기를 선점하고 있었다. 페이스북 게임 시장에서 다른 도전자들에게 안겼던 참담함을 몸소 겪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Zynga는 이미 성공한 게임을 개발한 소형 개발사를 인수하는 것 외에 특별히 시장을 흔들 결정적 한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게임계의 거대 공룡인 EA 마저도 모바일 시장에 도전하다가 철수한 것을 보면 자본력만으로 시장을 장악하기에 모바일 게임 시장은 너무나 막대한 자본이 흐르는 시장이었다. Zynga는 그간 불어난 3000명 규모의 대형 회사를 경영할 수 있을만한 결과물을 찾지 못하고 고전을 이어갔다.


    2편을 통해서는 이후 펼쳐지는 Zynga의 노력을 통해 스타트업들, 그에 속한 개발자들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2편 예고 - 당신이 거기서 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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