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독자 시점
얼마 전부터 둘째가 학교에서 책을 빌려오면 함께 읽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는, 그 연령대에 맞춘 독서를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독서량을 보이던 아이들이 올해부터는 쇼츠같은 짧은 영상물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과 또래의 정서를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청소년기로 들어서는 일종의 관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함께 독서를 많이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얼마 전, 둘째가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웹툰을 보다가 이미 완결된 원작 웹 소설을 보고 싶어 했다. 장르불문하고 텍스트를 읽고자 하는 것이 기특해서 시리즈로 모두 구매하여 각각의 디지털기기로 함께 읽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못지않은 아름다운 색감의 그림책과 판타지한 세계를 꿈꿀 수 있는 각종 동화를 함께 읽은 적은 있어도 현판 웹 소설을 아들과 읽는 경험은 신세계였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현대 판타지 물로 웹 소설계의 메가 히트작이라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TV 예능 중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고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을 따라한 것이다. ‘독자’라는 중의적인 이름의 주인공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소설의 결말을 보았던 유일한 독자로, 소설이 현실로 바뀌면서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한 길을 걷는다.
웹 소설 특유의 짧은 문장들로 촘촘히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행간의 설원 위에 작가와 독자, 그리고 등장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은유와 사유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게다가 전 세계를 아우른 엄청난 양의 설화와 신화, 위인들의 이야기는 그 자료만으로도 방 하나를 가득 메우고 남을 내용인데, 이 작품의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한번 꽂히면 무한반복을 즐기는 둘째는 552화에 달하는 본편을 벌써 십여 차례 넘게 읽었다. 외전은 아직 연재 중이라 한 편씩 계속 구매하며 보고 있다. 예전에 아이가 게임을 할 때, 쉬운 게임은 함께 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이번 전독시를 읽으면서 등장인물과 복선에 대한 의견을 실시간으로 함께 나누니, 아이도 나도 다시 공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가 학교에서 책을 빌려오면 한 달에 한 권씩 함께 읽고 독후활동을 하기로 했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 배를 대고 드러누운 자세로 책을 읽는 둘째 곁에서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우리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사이좋게 읽은 모자(母子)이고, 앞으로 우리의 독서는 전지적 모자(母子) 독서가 될 것이다.
덧) 수정 전의 글 : 요 며칠 둘째와 함께 한마음 한 뜻이 되어 같은 책을 읽었다. 바로 “전지적 독자 시점”이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제목일 것이다. 어느 예능방송의 제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웹소설이 유명한 것이 먼저다.
얼마 전부터 연재 중인 웹툰을 보던 둘째가 원작인 웹소설로 보고 싶어 하길래,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시리즈에서 직접 1 화씩 구매하며 같이 보았다. 종이책으로 사서 보자니 본편만 20권이 넘어서, 안 그래도 터질 것 같은 책장이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본편 551화와 현재진행형인 외전 181회까지 함께 읽었는데, 오늘도 아이는 누워서 다시 본편을 읽고 나도 곁에서 같이 보았다. 시리즈는 서로 다른 기기로 다른 회차의 동시 접속이 가능해서 좋다.
책을 읽는 내내 감탄했다. 작가와 독자, 그리고 등장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끝없는 은유와 사유들이 현판으로 진행되는 스토리와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 세계를 아우른 듯한 엄청난 양의 신화와 설화, 위인들의 이야기는 그 자료만으로도 방 하나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 내용이었다.
웹소설 특유의 문체를 고수하기 위해 짧은 문장들로 촘촘히 쌓아 올린 행간 사이로 부부 작가인 싱숑작가의 어마어마한 내공이 보였다. 순수문학으로 글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사실 감탄과 동시에 반성도 많이 했다. 싱숑작가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과거 동화 습작을 하면서 내가 만든 등장인물들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었는지 돌이켜보니, 스스로에게 정말 부끄러워지는 대목이었다.
조만간 다시 습작을 시작하면 보다 주의를 기울여 나의 등장인물들을 더 사랑해야겠다. 보이지 않는 행간의 하얀 설원에서 나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근원을 찾아 정처 없는 길을 떠난다고 상상하니 서글펐다는.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오늘의 오후를 잊지 못할 것이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 배를 대고 드러누운 똑같은 자세로 책을 읽는 둘째와 곁에서 함께 글을 읽는 내내 포근했다.
우리는 전지적 독자 시점을 함께 읽은 모자(母子)다. 그러니까 우리의 독서는 전지적 모자(母子) 독서인 것이다.
* 20240506 글 연습때문에 본문 내용 중복됨
얼마 전부터 둘째가 학교에서 책을 빌려오면 함께 읽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는, 그 연령대에 맞춘 독서를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독서량을 보이던 아이들이 올해부터는 쇼츠같은 짧은 영상물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과 또래의 정서를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청소년기로 들어서는 일종의 관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함께 독서를 많이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얼마 전, 둘째가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는 웹툰을 보다가 이미 완결된 원작 웹 소설을 보고 싶어 했다. 장르불문하고 텍스트를 읽고자 하는 것이 기특해서 시리즈로 모두 구매하여 각각의 디지털기기로 함께 읽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못지않은 아름다운 색감의 그림책과 판타지한 세계를 꿈꿀 수 있는 각종 동화를 함께 읽은 적은 있어도 현판 웹 소설을 아들과 읽는 경험은 신세계였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현대 판타지 물로 웹 소설계의 메가 히트작이라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TV 예능 중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고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을 따라한 것이다. ‘독자’라는 중의적인 이름의 주인공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라는 소설의 결말을 보았던 유일한 독자로, 소설이 현실로 바뀌면서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한 길을 걷는다.
웹 소설 특유의 짧은 문장들로 촘촘히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행간의 설원위에 작가와 독자, 그리고 등장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은유와 사유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게다가 전 세계를 아우른 엄청난 양의 설화와 신화, 위인들의 이야기는 그 자료만으로도 방 하나를 가득 메우고 남을 내용인데, 이 작품의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한번 꽂히면 무한반복을 즐기는 둘째는 552화에 달하는 본편을 벌써 십여 차례 넘게 읽었다. 외전은 아직 연재중이라 한 편씩 계속 구매하며 보고 있다. 예전에 아이가 게임을 할 때, 쉬운 게임은 함께 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이번 전독시를 읽으면서 등장인물과 복선에 대한 의견을 실시간으로 함께 나누니, 아이도 나도 다시 공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가 학교에서 책을 빌려오면 한 달에 한 권씩 함께 읽고 독후활동을 하기로 했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 배를 대고 드러누운 자세로 책을 읽는 둘째 곁에서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우리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사이좋게 읽은 모자(母子)이고, 앞으로 우리의 독서는 전지적 모자(母子) 독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