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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직 15장: 육아휴직 마지막 날과 첫 출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by 찰리한

2016년 3월 31일.

333일간의 육아휴직이 오늘로써 끝난다. 내일 4월 1일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회사에 복귀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이젠 마지막입니다'라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앞날에 대한 희망보단 지난날들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 후회, 아쉬움이 먼저 나오지 않을까? 나 역시 그간 내가 육아했던 모습들이 마치 영화 필름 돌아가듯이 머릿속에 투영되었다.

'아쉽다, 좀 더 잘해볼걸, 정말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화 좀 적당히 낼걸'이라는 후회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장애의 특성을 좀 더 잘 이해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서적을 통해 다운증후군의 특징을 공부하기엔 생각보다 미약했다. 오히려 전문의가 봐야 할 서적들은 가득한데 일반 부모가 해줘야 할, 알아야 할 정보들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미리 경험한 선배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또 다른 시행착오를 통해 정보들을 공유한다. 다행히 전문 다운복지관이 있어 숨통은 틔였지만 이것조차도 참 아쉬웠다. 좀 더 많았으면 이라는 생각과 여전히 소수인 장애인들의 삶, 그리고 이들을 양육하는 부모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

뭐 장 애던 비장 애던 자식 키우는데 후회 안 하는 부모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위로도 받긴 하지만.

후회는 그만하고 이제 부모가 된 내 모습을 한번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항상 말했던 그 말이 떠오른다.

'밥 먹었냐' '밥은 좀 먹고 하지'라는 말을 나 역시 첫째님에게 달고 살았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선생님한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우리 첫째님 밥 잘 먹었나요?"


어린이집 보낼 때는 쾌지나 칭칭 나네를 외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와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느끼며 먼 산을 바라보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첫째님이 밥은 잘 먹고 지내나, 잘 놀고 있나, 무슨 일은 없겠지 하면서 걱정을 하는 걸 보니'아! 어머니의 밥 먹었냐 라는 말이 사랑해라는 표현이었구나!'


다행히 우리 첫째님은 어린이집 적응을 꽤나 잘하고 있었다. 여전히 내가 데리러 가면 아빠를 못 알아보고 지 놀 거에 집중한다. 애착형성이 잘못되기보단 아직 아빠 엄마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인자 남자애가 다정히 팔에 선명한 이 자국을 남겼더랬다. 그 이인자는 신체발달은 빠르지만 언어 표현이 아직 느려서 본인의 감정을 모르면 답답하다가 화가 나서 물어버린다고 어린이집에서 연신 사과를 했다. 물론 첫째님에게 상처를 준 그 녀석을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표현이 안되어 답답함을 표시할 방법이 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이인자 남자아이를 용서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 시기를 맹수 단계라고 한다. 둘째 놈도 이 시기에 그렇게 물었다고. 근데 둘째 놈은 5살이 되고 말도 하는데 왜 자꾸 아빠를 물지?)

첫째님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면 남의 집 아이들이 아빠 왔다며 나를 더 반기는 이 이상한 상황조차도 그리워질 것 같았다.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첫째님을 치료실에 데려다주고 데려 올 활동 지원사도 정말 좋은 분으로 구했다. 자차가 있어서 이동시 편하게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주 세심한 편이다. 그게 첫째님한테는 너무 잘 맞았다.

요청해야 할 거 따박따박 요청하고 치료실에 가서 부모처럼 첫째님을 잘 보살펴주셨다. 치료실이 추우면 히터 켜달라, 정수기에 찬물만 있으면 따뜻한 물 나오게 해 달라 등등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 까지 세심하게 봐주신다.


왠지 오늘 이 밤이 가는 게 참 아쉽다. 좀 더 자유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첫째님 육아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아주 약간은 들었다.


내일도 아침에 첫째님을 데려다주고 우린 출근하지만 분명 어린이집에서 잘 지낼 것이다. 그리고 활동보조 선생님이 오던 부모가 오던 그냥 자기 놀 거 놀면서 이끌리면 이끌리는 데로 끌려가 줄 우리 첫째님이 잘 생활할 수 있기를 빌면서 육아휴직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내일 만우절인데 가서 말해봐야겠다.

오늘 만우절입니다. 오늘 출근한 거 뻥입니다~!



2016년 4월 1일 만우절 금요일

첫째님을 여느 맞벌이 부부처럼 7시 30분에 맡겼다. 우리가 가든지 말든지 첫째님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쉬운 건 우리 부부일 뿐!

하지만 오늘 하루는 내가 첫째님 없이 거의 10시간은 넘게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사실과 동시에 어제의 그 아쉽고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감정들은 세상 온대 간데 찾을 수 없었다. 아주 들떠있었다. 얼마나 들떠어있었냐면 아내와 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나의 주둥이가 고장나버렸다. 드디어 인간, 대화가 통하는 인간들과 아이 없이 버스를 타다 보니 그냥 모든 게 다 신기했다.

아내한테 "여보 너무 좋아! 세상이 왜 이렇게 아름다워? 아니 왜 이렇게 상쾌하지?" 등등 쉼 없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무선 이어폰은 없었기에 이어폰 끼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내가 하도 떠들다 보니 버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약간은 따가웠는지 아내가 처음에는 잘 호응하다 이내 내 귓가에 속삭였다.

“닥쳐!”

"왜? 왜 닥쳐야 해? 왜? 난 이렇게 좋은데?"

(다시 귓가에 속삭인다) "제발 좀 닥치라고"


하지만 난 닥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사람과 말을 한다는 것조차 이렇게 기쁜데. 그냥 이렇게 혼자 떠드는 것조차 얼마나 기쁜지 아내의 말은 안 들렸다.

지하철로 환승했는데 세상에나 벚꽃이 너무 예뻐서 지하철 2호선이 신대방을 지나 지하로 내려갈 때까지 또 그렇게 벚꽃 찬양을 해댔고 아내는 아예 날 모른 채 했다.

회사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활짝 열었다. 근데 아무도 없었다. 8시 반. 내가 너무 이른 시간에 온 건가 해서 책상 앞에 앉았다. 15년 3월까지 스케줄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보니 반가운 서류들과 폴더들! 15년 3월까지 치열하게 야근하면 만든 서류들을 보면서 '헐.. 내가 이 정도로 잘 만들었어?'라는 자화자찬이 쏟아질 때쯤 상무님이 오셨다.

“요 찰리 반갑다. 오늘이 복귀 첫날이구나!”

“어이구 상무님. 저희랑 같은 층 사용하세요? 너무 반갑습니다.”

대게 회사 임원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그래도 난 육아 탈출 첫째 날이니만큼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9시가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당시 우리 회사은 크리스천 기업이라 아침 9:00-9:30까지는 묵상 및 나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난 복귀의 설렘 때문에 상무님과 오붓하게 묵상 및 나눔을 했고 남자 둘이 그 아침에 서로의 두 손을 꽉 잡고 기도를 했다. 9:30분이 되어서야 직원들이 "서프라이즈"하면서 들어왔다.

전날에 미리 계획을 하고 내가 상무님과 둘이 큐티하는 뻘쭘한 상황을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아니 모를 것이다. 육아휴직이 끝난 이 기쁨을 그들이 알 수는 절대 없었다. 난 상무님과의 뻘쭘함보다는 육아 탈출에 대한 기쁨이 너무 큰 나머지 상무님과의 큐티 30분 동안 쉼 없이 떠들었다.

상무님이 1분도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29분 동안 내 이야기하느라 묵상에 나온 성경 및 인물의 고뇌 따위 필요 없었다. '아니 그들이 육아에 대해 알기나 해?'라는 식으로 340일간의 내 육아 이야기를 29분에 압축시켜 말하느라 오히려 진땀이 났을 정도였다.


사람과의 대화가, 교감이 필요했고 그날 하루는 정말 정신 나간 사람처럼 떠들면서 말했다. 점심시간에도 밥 먹다 떠들고, 회의 들어가자마자 20분간 또 내 얘기만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하다 보니 갑자기 정신이 나서 얘기했다.

"미안해요. 진짜 1달만 이렇게 떠들게요. 이해해 주세요. 너무 말하고 싶었어요. 말이 통하는 사람과 교감한다는 게 이렇게 기쁜 건지 이제야 알았어요."

육아휴직 전에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최대한 회의를 이끈 사람에게 맞춰주려는 내 모습과 달리 시작부터 쏟아내는 그 모습에 다른 동료들 역시나 1달 동안 원 없이 떠들어보라고 오해 같은 이해를 해줬다.


그렇게 내 복귀 첫날은 수다로 시작해서 수다로 끝을 냈다.


여전히 아이들과 육아하느라 고생하는 부모님들에게 언제나 힘내시라고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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