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보내고 멍 때리며 자유시간을 만끽하다
2016년 3월 1일 대한독립 만세 바로 다음날 나도 만세를 불렀다.
첫째님이 드디어 내 품을 떠나 사회성 발달의 첫 단추인 어린이집으로 진출하는 날이 왔기 때문이다. 아내를 일찍 출근시키고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물론 보내기 전 까지는 걱정 걱정 세상에 이런 걱정도 없었을 것이다.
식탐이 없어서 '밥 먹자' 하면 과연 갈까, 숟가락질은 여전히 할 생각도 없는 건지 인지를 못하는 건지, 언제 뗄지 모르는 기저귀를 차고 있으며, 근육이 약해서 친구들이 밀면 추풍낙엽처럼 넘어질 텐데, 원하는 거 표현 못하니까 선생님이 모른다면 어쩌지, 원장님은 너무 좋으신데 다른 선생님이 해코지하면 어떻게 하지 등등 정말 5만 1가지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막상 보낼 곳을 찾아서 기뻤지만 그 기쁨이 머지않아 걱정으로 바뀌었고 당시에도 어린이집 학대 사고가 이슈였었다.
아내와 계속 "우리 정말 보내는 게 잘하는 걸까?"라고 무한 반복 질문을 했었다.
불안한 마음에 쓸데없이 원장님에게 전화해서 정말 괜찮은 건지, 우리 첫째님이 이런 거 저런 거 진짜 아무것도 못한다고 제차 얘기했더니 "걱정하지 말고 보내세요"라는 강한 확신의 답변을 해주셨다.
'첫째님의 이름을 외우신 분인데'라는 믿음으로 첫째님을 보내기로 정말 결정했다.
그리고 막상 어린이집 보내는 첫날에는 이런 모든 5만 1가지 것들이 싹 다 사라졌다. 바로 아빠인 나만의 자유시간이 생기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5만 1가지 걱정 = 자유시간'이라는 등가교환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선 나도 참 간사한 아빠였구나 라며 짧은 회개를 했지만 기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나 간과했던 건 어린이집 적응을 위한 기간이 존재했다. 첫 주에는 1시간 정도만 부모와 같이 지내면서 적응하고 두 번째 주부터 2시간, 세 번째 주에서야 온전히 15시까지 맡길 수 있었다.
아니 그걸 무시해도 됐지만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이런 수순을 밟는 것이 좋다고 했다.
갑자기 등가교환이 깨져버리자 매우 실망했다. 그래도 '한주만 버텨서 얼른 적응시키자'라는 마음으로 첫째님과 함께 등원을 했다.
가정어린이집이라 규모는 작지만 여기 역시 공동육아만큼 산책을 나간다. 눈이 오면 눈 온다고 나가고, 비 오면 비 온다고 나가고, 해가 쨍쨍하면 모자 쓰고 나가고 낙엽 떨어지면 낙엽 구경하러 나간다.
바로 우리가 여기를 보내야겠다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이 외출 역시도 2주간은 어린이집 적응을 위해 하지 않는다.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많은 환영인사와 함께 첫째님과 같이 생활할 아이들을 봤다. 맞벌이 부부들이 많기에 이미 7시 반부터 와있는 아이들이 2명, 나처럼 9시에 데리고 온 부모 3명으로 총 6명이 한 반이 되었다. 근데 다른 부모들은 슝 하고 가버리고 나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왜 다른 부모들은 그냥 가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우리 첫째님은 아직 모든 면에서 느려도 너무 느리기 때문에 가는 이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첫째님에게 최대한 맞춰보자'라는 생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인자하신 분이셨고 첫째님의 장애특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지만 편견 없이 모두를 이끌고 나가셨다.
한 시간 동안 나도 첫째님을 도와 가방 벗고 놓기, 양말 벗기 등부터 아이들끼리 서로 싸울 때 화해시키기, 우는 아이 인형 하나 더 건네기 등 첫째님보다 남의 집 아이 보기에 바빴다.
"우아~ 한 명 보는 것도 힘든데 이런 천방지축 아이들 5명을 혼자 어떻게 선생님이 감당할까?'
어린이집 선생님은 월급을 진짜 1.5배는 올려줘야 한다 라는 민원까지 넣고 싶었다.
그때 서열 이인자 남자애가 공룡 인형으로 우리 첫째님의 머리를 스매싱하듯 날렸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라는 내 마음과 달리 행동은 그 아이의 팔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인형도 그리 딱딱한 것도 아니고 난 아직 선생님이 아닌 부모로 왔기에 다시 팔을 놔주고선 "그러면 아파해요"라고 듣지 않는 이인자에게 말했다.
첫 주는 이렇게 1시간 반 동안 내가 붙어있느라 나만의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주부터는 시간이 조금 늘어나 2시간보다 더 길게 점심시간까지 있어봤다.
이인자 남자애가 우리 첫째님의 식판에 담긴 맛있는 반찬을 마구 뺏어먹었다.
이번엔 팔을 잡지 않고 속으로만 열심히 외쳤다.
'첫째야! 때려. 제발 표현해! 뭐라도 좀 반항해봐!'
하지만 우리 첫째님은 자기가 뺏긴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글쎄 첫째님이 그렇게 빼앗기더니 자기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는 시늉을 했었다.
숟가락을 쥐어줄 생각도 못했고 숟가락이라는 물건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첫째님이 친구들을 보면서 모방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웠고 대견스럽고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리고는 선생님에게 이제 15시까지 쭉 맡겨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도 첫째님 생활이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 보여서 두 번째 주 중반부턴 15시 30분까지 첫째님을 맡겼다.
5만 1가지 생각은 거의 대부분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중요한 몇 가지 이외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걱정이었던 것이다.
9시 반에 첫째님을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 너무 기뻤다. 자유시간 200개는 먹은마냥 기뻤다. 자유다!!
아이 없는 6시간이 거의 3주간 나에게 주어졌다. 무엇을 먼저 할까 고민하다가 얼른 집에 와서 밀린 프로그램을 봤다.
시작은 냉장고를 부탁해 그리고 수요 미식회를 시청하고 다음은 한식대첩을 봤다. 죄다 먹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고 나면 1시쯤 되고 점심을 먹으면 2시가 된다. 첫째님을 데리러 갈 시간이 1시간 30분밖에 안 남았다.
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여유를 부려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로스팅한 예가체프 커피를 갈아서 핸드드립 아이스로 한잔 마시며 그 향과 산미를 느끼면서 멀리 관악산을 봤다. 산이 변하는 모습을 육아하면서 느낄 수 없었는데 이렇게나마 구경하면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니 자유시간이 가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이후 산을 30분간 보는 취미마저 생겨버렸다.
등원하러 가는 길은 너무나도 먼 것같이 느껴지는데 하원 하러 가는 길은 왜 이렇게 짧은가!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첫째님 이름을 불렀다.
역시나 우리 첫째님은 날 쳐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여자애가 아빠 왔다며 나를 반겨줄 뿐.
이렇게 우리 첫째님은 어린이집에서 그럭저럭 잘 생활하고 있었다.
자유시간은 좋다. 다만 3주밖에 안 남은 육아휴직 기간이 살짝 아쉬울 뿐! 아니 육아보단 자유시간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