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통합교육이'답'이다.
(2015년 12월 즈음 작성한 일기입니다.)
육아휴직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4개월도 채 안 남았다. 그럼 3월에는 첫째님을 누군가의 손에 맡겨야 했다. 두 돌 때까지는 우리가 데리고 키우기로 했었다. 그 이후로는 첫째님 어린이 집으로 보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성향을 발달시키고 싶었다. 이 당시만 해도 어린이집 대기는 많게는 200명까지 할 정도였고, 병설유치원은 당일날 제비뽑기를 해서 들어갈 만큼 치열했었다.
아내는 웹상으로 마음에 드는 곳에 미리 대기를 걸었다. 대기를 건 어린이집에 대한 우리의 조건은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한 반에서 생활하는 것', 즉 통합교육이었다.
첫째님은 사회성 발달을 할 수 있었고 비장애 아이들에게는 장애가 틀림이 아닌 다름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조건이 충족되는 곳에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었다.
여기는 부모 주도형 어린이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사도 한두 명 있다. 그들과 함께 부모가 달마다 평가회를 하고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오감 체험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으로 산책을 가기 때문에 사회성 발달과 함께 체험을 통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늘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갖춘 곳이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더러 있었다. 부모끼리 뜻이 맞지 않는 경우 다툼이 일어난다. 그리고 편이 갈리면서 안타깝게도 찢어져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미리 출자금으로 돈을 지불하고 달마다 35만 원 정도의 추가 원비를 지불하는데 부모가 나가면서 지불했던 출자금을 되돌려주지 못해 다른 아이가 들어오기 전까지 되돌려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날 선 신경전이 오고 간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방문했고 거기 계신 부모님들이 정말 열심히 공동육아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그땐 교육회사에 다녔기에 나 역시도 정말 좋은 프로그램들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첫째님에게는 재활치료비가 상당히 많이 들어갔었다. 재활치료비뿐만 아니라 맞벌이를 하게 되면 첫째님의 치료를 데려다 줄 활동 지원사 선생님을 구해야 했다. 장애등록을 아직 하지 않았던 첫째님이라 나라의 지원금은 받을 수 없어 그 비용 역시 부모가 지불해야 했다. 그럼 첫째님에게 상당수의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에 출자금은 어떡해서든 지불할 한다 쳐도 다달이 들어가는 원비를 지불하기엔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님의 재활이냐 사회화냐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어려웠다. 물론 사회성 발달이 중요하지만 1차적으로 첫째님의 신체와 인지에 대한 재활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럼 알아봤던 두 군데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두 군데 다 국공립어린이집이었다. 맞벌이 부부는 국공립어린이집에 대기를 걸 경우 순위도 높을뿐더러 7세까지 그 아이들이 변하지 않고 올라간다. 그러면 첫째님의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우리 첫째님을 봐왔기에 하나라도 더 양보하거나 배려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다.
원장님께 연락을 한 후 우리 순위를 확인하고는 방문을 허락했다.
규모는 2층으로 좀 컸다. 그리고 원장님을 만나 상담하면서 그분의 교육방침을 엿볼 수 있었다. 상당히 진취적이시며 강하신 면도 있지만 장애아이들에 대한 마음 역시 편견은 없었다. 첫째님의 장애 아이를 많이 봐왔고 잘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말에 약간의 상처를 받았다.
우리가 상담이 끝나고 어린이집을 둘러보기 위해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원장님은 그냥 편하게 "얘야. 다운"
이러는 것이다. 첫째님의 이름을 분명 말했는데 '다운'이라는 지칭에 속상해했었다. 그래도 편견 없이 받아주려는 마음이 고마웠지만 저 말이 내심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어린이집에서 나는 열폭해버렸다.
첫 번째 원장님보다는 더 유하셨고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외울 정도로 인자하셨다. 그래서 더 용기를 내어 일반반에 첫째님이 같이 생활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드렸다.
그러자 원장님은
"학부모들의 의견을 먼저 여쭤봐야 하고 그게 통과가 돼야 선생님들과 의논해야 하고 학부모가 싫어할 수 있고 선생님도 힘들어 할 수 있고...."
내가 기대한 대답과 달랐다. 어릴수록 비장애 아이들과 장애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야 하는 통합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그게 바로 장애 인식개선 교육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고 훗날에는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추이거늘.
난 여기서 더 이상 대답을 들을 필요조차 없어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아내는 끝까지 설명을 듣고 충분히 공감을 하고 나왔다.
나는 아내한테 말했다.
"여보. 난 여기 안 보낼래. 절대로"
아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장애와 비장애가 어울리는 교육을 한다는 건 교사에게는 여간 쉽지 않은 일인 건 맞다. 하지만 난 교사라면 누구에게나 차별 없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건 직업적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함에 있어서는 누군가의 눈치를 절대 보면 안 된다는 주의였다. 근데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어쩌면 첫째님을 받기 싫은 마음을 돌려서 말하는 저 원장님의 마음을 읽자마자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도 교육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공교육을 돕기 위해 하나라도 더 학생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돈이 부족한 학교에는 몰래 비용 할인해주고 특강을 진행해서 혼난 적도 있었고, 예산이 부족한 학교에는 샘플 교구들을 하나라도 더 들고 방문해서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공교육에서만큼은 차별 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는 나만의 교육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문한 원장님과 너무 대조적인 극명하게 보였다. 시설이나 아이들 인원수로 보면 두 번째 어린이집이 좀 더 좋았다. 하지만 그 태도만큼은 너무 싫어서 되도록이면 안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갈팡질팡 하던 때에 아내가 실은 내가 육아휴직을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집 앞 가정어린이집을 한번 알아봤다고 했다. 물론 거기 원장님도 처음 아내가 찾아갈 때에는 약간의 망설임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만 해보겠다고 말했었다.
"여보. 그래도 거기 한번 전화해볼까?"
두 번째 원장님의 태도에 계속 분해하면서 밑져야 본전으로 해보라고 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어디 어디 사는 작년에 방문했던..."
"어머. 첫째님 어머니 안녕하세요!"
놀라웠다. 그 원장님은 우리가 사는 곳만 말했는데 첫째님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너무 감격스러웠다. 1년 전인데, 잠시 스쳤을 뿐인데 우리 첫째님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당장 상담에 들어갔다. 대기도 딱 4명이라 분명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바람인 통합교육 역시 중요한 것이기에 한 반에서 비장애 아이들과 같이 지내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마음속 돌을 하나 빼낸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두 번째 원장님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다.
편견 없이 아이를 대해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고 첫째님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 마음 또한 너무나 감사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어린이집에서의 걸림돌을 단 한방에 날려주셨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도 연락이 와서 죄송하지만 다른 어린이집을 구해서 거기로 보내야겠다고.
그리고 "실은 저희 첫째님이 다운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알고 있었다고 했다. 모두들 우리 첫째님을 보고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우리 부부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런 첫째님을 받아주려고 했던 대표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우린 집 앞 단 1분 만에 갈 수 있는 가정어린이집에 첫째님을 보내기로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첫 번째 원장님이 계신 곳에 우리 둘째가 다닌다. 그 원장님은 지금 아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장애부모연대에서의 장애인식개선 교육에 적극 참여하며 장애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일하신다. 그때 잠시나마 오해했던 게 미안할 정도로.
교사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저들도 사람인데 그땐 나도 미숙했다. 장애라는 말에 오히려 편견과 방어적 자세가 지금 보니 생각보다 강했었다. 나도 뭐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인데도 불구하고 장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한다. 그러면서 원장님들을 원망하는 것 자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충분히 차별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도 장애인식개선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첫째님이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는 날에는 지금과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