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5분이다. 끝까지 버텨라!
(2015년 12월 즈음 일기)
다운 천사의 커뮤니티에서 급 모임을 한다고 했다. 장소는 내가 좋아라 하는 강릉이다.
아내의 고향 주문진과 가까우니 이번에도 처갓집 찬스를 활용하기로 하고 당장 짐을 싸서 출발했다.
12월 초, 좀 추웠지만 역시 영동 지방답게 날씨는 서울보다는 약간 따뜻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사를 오신 분과 지역분들을 모아 모아 여덟 가족 정도가 모였고 우리도 그 모임에 그냥 들이밀고 초대되어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첫째님보다 나이가 많은 천사부터 돌 지나기 전의 천사까지. 어린 천사들을 보니 첫째님 키웠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즐거운 담소를 나누다 2차로 장소를 옮겼다. 카페를 가려는데 평소 좀 한적하고 커피맛이 나름 괜찮은 장소가 있어서 그곳으로 이동했다.
우리 첫째님은 식당에서 나온 돈가스 같은 것들은 식감이 별로였는지 잘 먹지 않았다. 그래서 카페에 양해를 구하고 싸 온 이유식을 먹였다.
그렇게 또 대화의 삼매경으로 빠져있는데 첫째님이 갑자기 울상이 되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울고 안아달라고 보챈다.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이라,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니 무슨 일인가 답답했다. 배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다른 부모가 혹시 변비 아니냐고 말했다. 근데 변비라 하기엔 뭔가 좀... 이렇게 변비 걸리면 아파하나 할 정도여서 우리는 중간에 모임에서 나왔다. 첫째님은 계속 울상이고 여기는 우리 동네도 아니라 근처에 소아과를 가려고 해도 토요일 오후라 이미 문은 다 닫았다.
"여보, 강릉 아산병원 가야겠어"
아내가 말했다. 응급실이라도 가야 할 것 같았다.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장모님, 장인어른께 전화를 드리고 첫째님을 위해 강릉 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여전히 배에 힘을 엄청 주고 있는 첫째님은 땀이 날 정도였다. 힘을 줬다가 힘들어서 빼고, 또다시 힘을 주고... 반복적인 행동에 혹시 장이 꼬인 건 아닌지, 아니면 맹장이 아닌지 아내와 나는 노심초사하며 얼른 응급실에 도착하여 첫째님의 정보를 작성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응급실 의사분께 우리 첫째님은 다운증후군이라는 정보를 건넸고 의사님은 충분히 그걸 감안하고 배를 만져보는데 첫째님은 절대 만지지 못하게 한다. 첫째님의 상황을 설명했고 의사님은 청진기를 대보더니 아무래도 엑스레이를 찍어야겠다며 방사선실로 안내했다.
첫째님을 눕혀야 하는데 배가 아파서 눕지 못하는 첫째님의 괴력에 애먹으면서 겨우겨우 눕혔다.
움직이면 안 되는데 아파서 몸을 비틀다 보니 찍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고 겨우 1장 건졌다.
그리고 계속 아파하는 첫째님을 안고 아내와 아프지 않게 기도를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는데 의사님이 결과가 나왔다면서 와서 보라고 했다.
우린 맹장인가, 아님 더 심각한 것인가 하면서 의사님에게 물어봤는데 엑스레이를 딱 가리키면서
"여기 장 보이시죠? 똥이 항문 끝까지 찼네요. 관장해야겠어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첫째님은 아파서 울상이지만 나는 너무 걱정한 나머지 큰일이 아닐까 했는데 다행히 변비였단다.
첫째님은 온몸의 근육이 정말 다 약하다. 입도 언제나처럼 다물지 못하고 대근육, 소근육 등등.
배에 힘을 주는 근육도 약하다 보니 먹었던 음식물을 배출할 힘이 부족해서 계속 쌓이고 쌓였던 것이다.
근데 엑스레이에 너무 적나라하게 똥이 끝까지 찬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관장을 위해 다른 침대로 이동했다. 근데 간호사님이 치사하게 비닐장갑은 본인만 끼고 우리한테는 안 줬다. 주사기에 관장약을 넣고 첫째님의 항문에 약을 투여하고는 15분 동안 배출 못하게 하라고 거즈 몇 장 달랑 주고 가셨다.
"뭐야. 최소한 비닐장갑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냐?"
하고 둘러봤는데 장갑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되었다. 첫째님의 뱃속에서 뭔가 반응이 오는 것 같았다.
맨손으로 막아야 했다.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나오려는 그것들을 나의 맨손으로 막아야 하는 참담함을 동정할 여지없이 바로 거즈와 물티슈 몇 장으로 첫째님의 항문을 틀어막았다.
잠시 후 첫째님의 그것들이 나오려고 한다. 가스가 새어 나온다. 하지만 15분을 지키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첫째님도 그것들을 배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로써 나와 첫째님의 힘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미션 No. 8: 저얼때 지지 마라! 지면 그것들의 대환장 파티가 시작된다!
"여보.. 어떻게 하지? 얘 그것들이 자꾸 밀려 나올 거 같아. 젠장 어떡하지???"
아내가 좀 더 버티라고 한다. 내 손끝에는 그것들의 촉감이 느껴졌다. 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싫다.
계속 막아야 했다. 북한군이 쳐들어 오면 최전선에서 5분만 막으면 된다고 했던가?? 나도 5분만 막자고 필사적으로 더 세게 첫째님의 항문을 틀어막고 안된다 싶어서 엉덩이를 꽉 붙잡고 막았다.
하지만 생리현상을 막는 건, 초 자연적인 현상을 지연시키는 건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찌이이~~ 익~!!!
소리와 함께 그것들이 액체와 가스가 되어 일부 새어 나왔다.
"아... 여보 미안해. 못 막겠어"
하면서 얼른 기저귀를 갖다 댔다. 그러자 첫째님은 힘주다가 갑자기 평온해졌다. 옹알이를 하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뱃속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오려는 그것들의 액체는 조금 나오더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첫째님은 속이 편해져서 금세 자기의 컨디션을 찾았고 우리는 이 정도 나온 걸로는 분명 아닐 텐데 하면서 기저귀를 채우고 간호사한테 얘기를 했고 5분 정도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렇게 편해진 첫째님은 병원을 돌아다니다 갑자기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힘을 주었다. 뱃속에 있던 그것들을 밖으로 마구 배출시켰다.
아내와 얼른 첫째님을 데리고 다시 침대로 이동했다. 커튼을 치고 첫째님이 열심히 배출할 때까지 옆에서 같이 힘주면서 첫째님을 응원했다.
상황이 종료되고 이제 첫째님의 기저귀를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니 얘는 도대체 뱃속에 뭘 넣고 다닌 거야? 이게 다 네 거니??"
엄청난 양의 그것들이 나왔다. 그리고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유산균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먹어야겠다. 처방전에도 딱 하나만 적혀있었다. 유산균 5포.
그렇게 첫째님과 함께 응급실에 나오는데 어디선가 그것들의 진한 향내가 났다.
"여보 첫째님 또 쌌나 봐"
하지만 첫째님의 기저귀는 깨끗했다. 어디서 자꾸 그것들의 향이 나는 거야 하면서 투덜거리다 알게 되었다.
항문을 틀어막았던, 비닐장갑 없이 그저 거즈와 물티슈로 틀어막았던 내 손가락에서 나는 것이었다.
처갓집 가서 손을 박박 씻고 또 씻었다. 그날 저녁은 장어를 먹었는데 장어 맛보다 손가락에서 나는 그것들의 향연이 더 강했다. 젠장 내가 장어를 먹는 건지 똥을 먹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