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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34: 평안한 일상과 한국의 맛!

여러 가지 일들과 한국의 맛을 또 전하다!

by 찰리한

주말이면 wwoofer 들은 원칙상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행을 다닐 수 있다. 차를 렌트하면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바다사자들을 만날 수 있다. 캥거루섬의 크기는 제주도의 2.5배 정도 되며 인구는 약 5천 명(인터넷 1990년도 기준)이라고 한다. 인구수도 적어서 그런지 만나는 사람들 모두 매우 친절하며 한적하기 때문에 운전 또한 여유롭게 할 수 있고 길가다 그냥 차 세우고 경치 구경하다 해안도로 따라 운전하면 절대 지루하지 않다.



톰은 정말 성실하지만 가끔 주중에 농땡이 치고 여기저기 날 데리고 다녔다. 그 유명한 어드미럴 아치라는 곳을 가봤다. 캥거루섬에서의 가장 유명한 곳이며 절경이었다. 아쉬운 점은 바다사자들이 여기서 쉬는데 남극 쪽으로 이동하여 물고기를 잡아먹고 여기서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비린내가 엄청난 것 빼고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런 절경들이 크게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캥거루 섬 자체가 주는 여유와 자연 자체가 주는 경관들이 훨씬 더 아름답기 때문에 굳이 유명 관광지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톰과 함께 강으로, 바다로 낚시하러 가는 게 더 좋았고 언덕에서 바라보는 경치와 바람이 주는 느낌이 참 좋았고 톰은 이런 관광지보다는 캥거루섬의 소소한 풍경들을 더 많이 보여줬다. 그 풍경들이 정말 훨씬 더 아름다웠다. 웅장하기보단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그냥 전주에 가면 맛있는 것 천지라 비빔밥이 맛있네 콩나물 국밥이 맛있네 라는 게 의미 없듯이)


톰은 종교가 없었지만 로젤리는 크리스천이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를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봤더니 마침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4~5 가정이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로젤리도 운전하는 중에 마주오는 차를 향해 검지 손가락을 든다. 그 모습이 이젠 익숙해져서인지 나는 그냥 손 한번 더 들었다. 20분 정도 달려 어느 작은 마을의 집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8명 정도가 모여있었고 로젤리와 함께 그 집으로 들어갔다. 집 내부는 아주 하얗고 햇살이 잘 들어오는 남향인 것 같았다. 상당히 깔끔했고 거실 한편에는 벽난로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연기는 정말 벽난로 위의 굴뚝으로 빠져나갈 뿐 집 안에서는 나무 타는 소리 이외의 냄새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50대의 부부들이었고 4살짜리 여자아이가 있었다. 예배 시작 전에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했다. 한국에서 왔으며 wwoof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와서 지내고 있으며 여긴 너무 평화롭고 여유가 있어서 참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간단한 소개를 했다.

따로 목사님이 계시지 않아 그 집의 주인이 예배를 인도했고 기도와 찬양, 말씀은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각자의 생각을 얘기했다. 나는 부족한 영어실력에 뭔가 길게 말할 수는 없었다.


1시간 안되게 예배는 끝났고 점심을 준비했다. 이분들은 그래도 한국은 김치가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준비한 음식이 입에 맞냐며 타국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장난이 아니었다. 김치 안 먹은 지 거의 8개월이 넘어서 고향 음식이 그립지는 않다고 거짓말했다. 실은 너무 먹고 싶은 게 김치와 고추장에 밥 비벼먹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준 분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걸신들린 듯 먹고는 설거지를 꼭 내가 했다.

설거지가 끝난 후 4살짜리 여자아이가 나한테 자기의 정원을 소개해주고 싶다며 밖으로 데리고 갔다. 4살짜리 여자아이와 난 그나마 프리토킹이 가능했다. 그나마!

본인의 정원을 소개해주고 장미와 로즈메리, 무슨무슨 꽃들이 있고 나는 4살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등등 4살 특유의 TMI를 알려줬다.


이렇게 주일은 예배를 갔다 온 후 톰에게 가서 양 보육소에 동냥젖을 준 다음 낚시를 하던 농장을 돌아다니던 하면서 지냈는데 두 번째 주일날에는 예배를 갈 수 없었다.

블랙 앵거스 한 마리가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로젤리는 그 소에게서 100m 정도 떨어져 의자에 앉아 지켜봤고 톰은 좀 더 가까이에서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대기상태였다.

나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 있었다. 예민해진 상태에서 낯선 사람이 올 경우에는 큰일이 날 수 있어 두 분만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

그렇게 한 2시간을 지나서 송아지가 나왔다. 톰과 로젤리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엄지를 치켜세웠고 난 솔직히 소가 출산하는 걸 그때 처음 봤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5분이 되자 바로 송아지는 일어나 어미젖을 찾는 걸 보니 뭔가 좀 찡 하는 마음이 들었다.


톰은 나에게 와서는 양에게 밥 한번 줘볼래 라며 트랙터 쪽으로 갔다. 나한테 운전면허 있냐고 물었고 한국에서는 차를 몰았다고 하니 작동방법을 알려줬다.

클러치, 브레이크 등 수동 자동차와 작동방법이 비슷해서 다행히 시동 한 2번 꺼트리고는 손쉽게 운전할 수 있었다. 트랙터 뒤에는 삼지창 같은 게 달려있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겨울철 논밭에 마시멜로처럼 동그랗게 덮여있는 비닐을 제거한 후 트랙터를 후진하여 삼지창에 지푸라기 덩어리를 꼽은 후 양들에게 주는 것이다.

지푸라기 뭉탱이를 삼지창에 꼽고 양 울타리까지 내가 운전했다.

그다음 톰이 운전하여 앞으로 이동하는 동시에 난 뒤에서 갈고리로 그 지푸라기들을 뿌려주면 된다. 그럼 1만 마리 좀 안 되는 양들이 한방에 몰려오면서 지푸라기들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다.

그들이 달려오는 소리는 정말 천둥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 마시멜로 같은 건 10덩어리도 넘게 뿌려댔다.

한 2~3개 할 때는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5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팔이 빠질 것 같았다. 톰에게 바꿔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니까 못 들은 척 웃으면서 계속 운전해댄다.

톰과 운전 교대를 한 후 나머지 5개를 뿌렸다. 양들에게 줄 때는 보람차지만 그놈의 마시멜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반대쪽 울타리로 가서 소들에게는 그냥 마시멜로 덩어리를 던져주면 됐다. 소는 100마리 정도밖에 안돼서 4~5덩어리만 던지면 알아서들 먹는데 양은 1만 마리 좀 안되기 때문에 그냥 덩어리채 던져줬다간 압사당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열심히 밥을 다 준 후 톰이 나한테 물어봤다. 한국에서는 맛있는 반찬이나 음식이 있냐면서.

그래서 고기공장에 있을 때 교회에서 해줬던 불고기가 생각났다. 맵지 않고 달달한 음식이 있다면서 재료 사서 만들어 먹자고 했다. 마트에 가니 long rice라는 흔히 동남아시아에서 먹는 찰기 없는 쌀 밖에 없었지만 밥을 할 수 있는 쌀은 있었는데 대기업에서 작정하고 만든 그 소불고기 양념이 여긴 없었다. 방법을 좀 생각하다 보니 soysauce와 돼지고기, 소고기를 샀다. 소이소스는 짠맛이 좀 덜하고 한국의 간장보다 깊은 맛도 덜하다. 약간 응용이 필요해서 호주에서 한번 먹고 절대 다시 먹지 않는 그 베지마이트와 이 소이소스를 섞었더니 완전 대박이였다. 역시 공산품이 최고의 맛을 낸다. 그렇게 섞은 다음 설탕을 막 때려 붓고 마늘을 왕창 다졌다.

톰은 마늘을 마구 때려 붓는 날 보면서 이거 먹어도 되는 거냐며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마늘에는 단맛이 많다면서 안심시켰다. (실은 톰은 매운 거 잘 못 먹는다. 여기 떠나기 전 살벌한 체스 대결에서 소개할 예정)


두 가지 요리를 했다. 하나는 돼지불고기였고 하나는 석쇠구이였다. 양들이 그렇게 잘 먹는 짚을 보면서 1차로 훈제하면 분명 맛있을 것 같아서였다. 돼지불고기는 저 양념에 양파, 파, 당근을 넣어 볶았고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한 30분간 다졌다. 이건 로젤리한테 부탁해서 최대한 "chop"이라고 주문했더니 기가 막히게 아주 작살을 내셨다.

여기도 석쇠 비슷한 게 있어서 그 사이에 소, 돼지 다진 것과 약간의 밀가루를 섞고 양념과 함께 버무리고 밖으로 나가 모닥불에 짚으로 불을 지핀 후 1차 초벌을 했다. 톰은 음식 한번 해달랬더니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다가 초벌구이 한 석쇠구이 냄새를 맡고는 식탁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초벌구이가 끝난 석쇠는 2차로 프라이팬에 다시 구웠다. 물론 그 네모진 모양은 안 나왔지만 혹시나 덜 익힐 수 있어서 짚의 향과 불맛으로 만족시켰고 돼지 불고기, 찰기가 없는 쌀밥을 준비했다.

쌀밥이 제일 어려웠다. 불 조절을 해야 하는데 우드 스토브에는 불 조절 따윈 없어서 매우 설 익었다.

그렇게 모든 음식을 준비한 다음 로젤리와 톰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그동안 너무 잘해준 두 분에게 최대한의 정성을 들여 만들었고 맛을 보더니 역시나 통했다.

약간 베지마이트의 맛이 나긴 했지만 그들의 soul jam 맛이 나서 그런지 아주 잘 먹었고 석쇠구이는 카일이 다 먹어치웠다. 하나 줬는데 이 녀석이 눈이 돌아갔는지 그냥 접시채로 다 물고 가 버렸다.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을 보내고 역시 설거지를 마치고 8시에 양 보육소에 가서 동냥젖을 물리고 나왔다.

톰이 wwoof 끝나면 어디 갈 거냐 물어봐서 어렸을 적부터 보고 싶었던 uluru에 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체스를 두기 위해 식탁에 앉아 나한테 말해줬다.

uluru 가는 건 너무 좋지만 그 위에 올라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나중에도 알게 되었지만 호주는 토착민인 에보리진 인디언들이 있었다. 이 에보리진 에게는 luru라는 바위는 신급이였다. 조상들의 혼이 담겨있다고 여겼는데 관광상품으로 개발되면서 그 위를 올라가는 체험이 생기고 이 부분이 에보리진한테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조상들의 무덤 위에 다른 사람이 올라가는 아주 모욕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그런 톰의 부탁이라서 그런지 나 역시 절대 올라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렇게 체스를 뒀다.

역시나 1판 이기고 4판을 내리 졌다. 언제야 내가 완승할 수 있을까.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역시나 쏟아지는 별들로 아름다웠다.


캥거루섬에서는 거의 힐링이었다. 골드코스트에서 시드니, 애들레이드까지의 여정들에서 슬프고 힘들었던 일들조차도 여기서 생활하면서 호주는 나에게 신나고 즐거운 동시에 여유와 평화, 자연이 얼마나 이토록 아름다운지를 선물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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