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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35: 아쉽지만 작별해야 할 시간!

제일 아쉬웠던 시간이었다. 호주 떠날 때 보다 더 아쉬웠다

by 찰리한

3주 좀 안되게 우프 생활을 했다. 언제나 즐겁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이곳 캥거루 섬. 인위적인 건 사람이 사는 집 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운 작품들. 아침마다 깨워주는 시끄러운 새소리. 빠지지 않고 동냥젖을 주다 보니 조금씩 자라나는 어린양들. 평소 하던 대로 요리를 했지만 나에겐 특급 호텔 음식보다 더 맛있게 요리 해준 로젤리. 언제나 어디 놀러 갈까 놀 궁리만 하는 톰 아저씨. 맨날 뛰어놀면서 장난쳤던 카일. 먹을 때마다 와서 달라는 걸 밀어내느라 실랑이를 벌였던 푸시켓.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



즐거운 우프 생활이 막바지에 왔다. 일상은 그대로인데 톰 아저씨, 로젤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옴을 느꼈던 것 같다. 아니 두 분은 이런 일이 익숙할 법도 하지만 나는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더 열심히 울타리를 쳤고 식사 준비하는 로젤리를 하나라도 더 도와줬다. 도끼질이 좀 능숙해지면서 더 많은 장작을 팼고 saw machine으로 한가득 잘랐다. 뭔가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톰 아저씨도 그런 내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보였는지 하던 일을 멈추고 드라이브 가자며 픽업트럭에 날 태웠다. 오랜만에 카일도 같이 태우고서는 해변 근처의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에서 카일과 함께 뛰어놀고 이번엔 불타는 토스트가 아닌 매장에서 피시&칩과 호주의 소울푸드 미트파이를 사 갖고 와서 먹었다.

모든 걸 잊고 그저 공원에서 좀 쉬면서 여유를 즐기게 하고 싶었나 보다. 저 멀리 바다를 보며 공원 근처의 강에 있는 펠리컨에게 주지 말아야 할 먹이들을 던져주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지는 석양이 아쉬웠다.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며 로젤리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로젤리 역시 한국에 대한 편견을 말끔하게 던져버렸고 이제는 한국인이 다시 우프 하러 온다면 기꺼이 환영하면서 내 얘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톰 아저씨도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그만 숙소 가서 쉬라고 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냥젖을 주고 마지막 체스를 한판 두자고 했다.

마지막 체스를 이렇게 아쉽고 슬프게 두고 싶지 않아 톰에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난 베지마이트를 진짜 싫어했다. 호주의 또 다른 소울 잼 베지마이트. 하지만 내가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걸 톰은 잘 알고는 때론 몰래 토스트에 베지마이트 발라서 나한테 줬고 난 먹자마자 바로 뱉으면서 "I kill you tom" 하면 그렇게 그게 웃겼는지 종종 써먹었다.

그리고 나 역시 톰이 매운걸 못 먹는다는 걸 잘 알았고 마트 들렸을 때 몰래 그 작고 매운 고추를 몇 개 샀다.

체스 지는 사람이 벌칙을 받자고 제안했고 톰은 흔쾌히 허락했다. 벌칙도 뭔지도 모른 채!

나는 베지마이트 밥숟갈로 한번 퍼먹기였고 톰은 작고 조그마한 고추 한 개 먹기였다.

톰은 약간 망설였지만 '저 작은 고추가 매워봐야' 라며 첫 '폰'을 이동시켰다.

진짜 최선을 다해 톰에게 저 작은 고추를 꼭 먹여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정말 집중하면서 체스를 뒀다. 원래 한판 두면 보통 20분 내외로 결정됐지만 이날만큼은 신중하게 두기 위해 40분 정도 소요됐다.

첫판은 내가 졌다. 그리고는 눈 딱 감고는 베지마이트 한 숟갈 퍼먹었다. 아... 정말 짜고 짜고 또 짜고. 그렇게 먹고 10분간 물 안 먹기로 추가 제안을 했기에 10분간 정말 버텼다.

한 3판 내리 다 지고 나니까 다음날 작별의 아쉬움 따위는 없었다. 기필코 맥여버리겠다는 일념 하에 한번 더 두자고 했고 역시 체력은 좀 더 젊은 사람 편 인 것 같았다. 밤 11시가 넘어가자 톰의 눈거플이 점점 감기는 것 같았고 평소 하지 않던 실수를 해버렸다. 드디어 승기를 잡은 나는 얼른 "체크메이트"를 외쳤고 톰은 눈이 커지더니 판을 던졌다.

나의 바람이 이뤄졌다. 톰은 까짓 거 하면서 그 고추 한 개를 통째로 입에 넣자마자 토하려고 했다. 목을 잡고 아주 고통스러워하며 물을 찾았다. 하지만 난 말했다.

"10 min rule"

톰은 밖으로 나가 찬 공기라도 마시려 연신 심호흡을 크게 했고 난 옆에서 계속 깐죽거렸다.

"9 min left, 8 min 30 sec left, 3 min le... it's kidding. still 5 min left.."

그리고는 쐐기를 박았다. 1분 남았을 때 집안으로 들어와 대문을 잠가버렸다. 톰은 끝나자마자 문을 열려고 했으나 내가 잠가버렸고 어디로든 뛰어가 어떻게 물을 마시고는 들어왔다.

"conguratulation Tom. This is taste of Korea"

참 성격도 좋은 시골 아저씨였다. 그렇게 웃으면서 약간의 아쉬움을 달랬고 그렇게 인사를 하곤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하나씩 챙기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계획한 거 다 취소하고 2주 더 머물까부터 아니 그냥 세컨드 비자 끝날 때까지 길게 머물까' 라며 계획했던 것들을 머릿속에서는 계속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하지만 결국 결정을 바꾸진 않았다. 목표로 했던 것들은 어느 정도 경험했다. 여기서 더 영어를 배운다고 크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래도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잘 배웠고 캥거루섬에서의 좋은 추억들을 잘 간직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길게 일하면 더 좋겠지만 혹시나 모를 관계가 깨질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지금 가장 좋을 때 헤어지는 게 서로에게 더 좋지 않을까, 익숙함이 주는 마음이 혹시 저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을까 해서이다.

밤늦게 잠이 안 왔지만 새로운 곳,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uluru에 가는 즐거운 상상을 다시 한번 하면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다르게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강풍이 몰아쳤다. 바람이 심하게 세게 불었고 난 짐을 다 챙긴 후 톰에 집에 갔다. 톰은 그날만큼은 떠나는 날이라 동냥젖 주는 건 혼자 할 테니 집에 가서 로젤리와 함께 식사 준비를 부탁했고 난 그렇게 했다.

아침을 먹고 12시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바람이 이렇게 세게 불어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었다. 비행기는 우리가 아는 그 크고 멋진 것이 아닌 프로펠러가 보이는 아주 작은 20명 정도만 탈 수 있는 경비행기였다.


톰 역시 걱정인지 비행장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냥 바람이 너무 강해서 오늘 이륙 못한다고 통보가 왔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도 있었지만 정상적으로 이륙하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었다. 그렇게 난 짐을 챙겨 로젤리에게 작별인사를 했고 마지막 카일에게 한번 더 꽉 안아줬다. 푸시켓한테 가서 잘 지내라고 쓰다듬어준 후 픽업트럭에 탔다.

비행장 가는 길에 톰 아저씨와 대화를 한마디도 못했다. 글쎄.. 왠지 말 걸었다가 내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톰 아저씨는 마주오는 차에게 검지 손가락을 들뿐 역시나 한마디도 없었다.

펫말에는 비행장 표지판이 보였고 우회전하면 비행장 입구였다. 근데 톰 아저씨가 계속 직진을 했다.

"Tom! we go to airport? right?"

"Yep charlie"

"I think we miss it"

"sorry??"


톰이 우회전 표시를 못 보고 그냥 직진해버렸다. 그래서 난 톰에게 물어봤고 톰이 그제야 정신 차리고 다시 유턴해서 비행장으로 갔다. 톰 역시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쉬웠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비행장에 도착한 후 짐을 챙기고 톰과 악수를 했다.

톰은 양 엄지를 치켜세운 후 uluru 가면 바위 위로 올라가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호주 여행이 될 것이라고 말한 후 쿨하게 떠났다.

아쉬운 작별은 순간이었고 떠나는 톰 아저씨의 픽업트럭이 혹시 다시 오지 않을까 라는 잠시의 바람을 뒤로하고는 비행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륙할 시간이 되자 기가 막히게 바람이 멈추고 맑은 하늘과 햇살이 나왔다. 비행기는 이륙했고 작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여전히 평화로운 캥거루 섬, 파란 바다와 넓은 농장, 도로에 거의 보이지 않는 자동차들이 점점 멀어지면서 40분 뒤에 북적이는 애들레이드 공항으로 도착했다.

단 40분 만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왔다. 아마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에도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백패커를 찾았다. 체크인을 하고는 이제 신나는 다음 여정을 준비할 차례였다. 애들레이드에서 엘리스 스프링스라는 지역까지 거리는 들어본 적 없는 1,600km 정도이다. 거의 18시간을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호주의 장거리 버스인 'grey hound'버스를 탔다. 버스는 보통의 고속버스 크기 정도 되었지만 2층 높이였다. 처음 1~2시간은 정말 신났었다. 끝없이 보이는 넓은 지평선, 가끔 캥거루도 보고 들판도 보이고 했으나 그 이후부터는 한없이 지평선만 보이는 것 이외에 볼 수 있는 건 파란 하늘, 구름, 해, 가끔 지나가는 차 이외에는 없었다. 석양도 30분 보면 쳐다보기 싫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매우 지루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역시 '이상'은 즐거웠지만 '현실'은 매우 따분한 길이었고 왜 왕복으로 예약했는지 나의 바보 같은 실행력을 한탄하면서 18시간을 거쳐 northen territory 준주에 있는 alice springs에 겨우 도착했다.


호주에서 제일 다이내믹했던 일은 당연 고기공장에서의 일들이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이라면 주저 없이 캥거루섬에서의 톰과 로젤리의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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