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지 못한 자의 최후!
글 시작 전에 잠시 부연설명이 필요합니다. 굳이 해야 하나 하지만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함입니다.
난 군대에서 전투 중대에서 화기 분대로 배치받았다. 개인화기부터 공용화기까지 다루는 분대였다.
개인화기는 보통 군인들이 갖고 다니는 소총으로 K2, M16이다. 공용화기는 람보가 들고 다니는 총인 M60부터 유탄발사기 M203, 60미리 박격포, 조명 지원만 할 줄 아는 81미리 박격포, 해안부대에서 근무하느라 적의 고속정이나 대공사격을 위한 MG50까지.
군대에서 사용되는 소총은 총구에 강선이라는 나선형으로 파인 홈이 있다. 이를 통해 총알이 발사됨과 동시에 그 나선형 홈을 통해 회전을 한다. 회전된 총알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정말 엄청 맞으면서 배웠다. 안 맞고 배운 사람은 없겠지만 역시나 맞으면서 배우면 단기간에 엄청난 습득 효과를 낼 수 있었고 그 기억이 상당히 오래간다. 심지어 총번까지 아직 기억날 정도이다.(근데 아마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제대 날짜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입대 날짜, 군번, 총번은 기억할 듯하다)
우프(wwoof) 생활은 너무 평화로웠다. 약간의 루틴이 생겼다. 아침은 말도 안 되지만 7시 30분에 일어났다. 아침 새소리는 시끄럽지만 기분 좋다. 언제나 대충 씻는다. 어차피 농장일이 많아 씻어봐야 크게 소용은 없기 때문이다. 식빵을 집 주위에 뿌린다. (생쥐들에게 그나마 먹을 걸 주고 싶어서이다) 8시에 톰과 함께 양 보육원에서 동냥젖을 준다. 9시에 호주의 특급 요리사 로젤리 표 샌드위치와 우유를 마신다.
이렇게 평화로워도 될까? 이렇게 여유롭게 사는 게 맞을까? 할 정도로 한없이 좋았다. 아침을 먹으면 역시 톰과 함께 울타리를 치러 가거나 때로는 울타리 치다 날이 너무 좋아서 흔히 말하는 땡땡이를 친다.
톰이 갑자기 오늘은 일 그만하고 놀러 가자고 한다. 아니 뭐 사장님이 놀러 가겠다는데 말리진 않는다. 하지만 기가 막힐 노릇인데 아저씨는 정말 일 하다 모든 걸 다 정리하고는 차에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조그만 보트를 픽업트럭 뒤에 싣고 바다와 만나는 강가로 가서 보트를 띄워놓고는 낚시를 했다.
나보고 낚시할 줄 아냐면서 진짜 그 위에서 나와 같이 낚시를 했다. 잘 안 잡히면 보트 타고 이동하면서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강에서 뜰채를 갖고 지나가는 오징어를 그냥 낚아챘다. 아니 오징어 낚시가 아니라 오징어를 그냥 건져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걸 들고 집에 와서 맛있게 요리를 하는데 로젤리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는지 아무 말 없이 또 특급 요리를 시전 했다. 그냥 톰이 오징어나 물고기를 잡아오는 날이면 농땡이 피는 날이구나 라고 생각한단다.
울타리 주변을 돌다가 샷건의 탄알 껍데기를 발견했다. 톰한테 물어봤는데 톰의 딸 3명인가 중에 둘째 딸이 사격을 그렇게 좋아해서 주말이 되면 놀러 와서 라이플 건을 즐기거나 캥거루를 사냥한다고 한다.
'뭐? 캥거루 사냥? 캥거루를? 왜? 캥거루는 호주의 대표 동물인데 그걸 왜 사냥해?'
이해가 잘 안 됐다. 물론 마트에 캥거루 고기가 팔긴 하지만 그런 건 엄연히 합법적인 유통을 통한 건데 개인 농부가 캥거루를 사냥하는 게 가능이나 한 걸까?
톰이 말해줬는데 사실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호주의 캥거루가 10종이 넘는데 그중에 뭐 몇 종은 절대 사냥하면 안 되지만 그 이외에는 가능하다고.
마침 주말이 되었고 정말 둘째 딸이 놀러 왔다. 아저씨 딸이 맞나 할 정도로 로젤리를 닮았다. 키도 나와 비슷한데 끌고 온 차는 대형 픽업트럭이었다. 뒤에는 도베르만 같은 매우 사납게 생긴 검은색 개 두 마리를 태우고.
왠지 그 포스에 기가 눌려버릴 것 같았다. 근데 우리의 멍청하고 착한 개 카일 역시 그 두 마리의 개한테 상당히 기가 눌려있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를 부여잡고 저 포스 넘치는 둘째 딸과 두 마리 개한테 한 발짝도 접근하지 못했다.
톰이 둘째 딸에게 날 소개해줬고 악수를 하며 "Hi Charlie" 하는데 악력 조차 너무 쌨다.
어휴 얘네들은 왜 이렇게 힘이 센 거야? 그때 공장에서 소 7마리 밀었던 그녀도 힘이 장난 아녔는데.(이유있는호주25편 참조)
톰과 둘째 딸은 체스를 두면서 이야기를 했고 나와 카일은 소파에 앉아 서로를 쓰다듬으며 위로 중이었는데 체스를 두던 둘째 딸이 톰에게 패했다. 무진장 포스를 보였던 그녀가 체스에 패하자 "daddy"라고 말하자마자 그 포스들은 단번에 사라졌다. 다 큰 딸이 "아..아빠" 라고 부르는 모습이 그냥 어린애처럼 보이면서 난 긴장감이 풀렸고 도전을 해봤다.
"My turn. let's play a game with me!"
그녀는 흔쾌히 도전을 받아줬고 역시나 내 예상대로 내가 이겨버렸다. 승리의 미소로 카일을 쳐다봤지만 여전히 카일은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은 듯했다. 쾌제를 부르며 카일을 안아줬고 그녀가 온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녁에 캥거루 사냥을 위해 왔으며 샷건이 아닌 개인 소총으로 캥거루를 사냥한다면서 나한테 자기가 갖고 온 총을 보여줬다. 마치 대단한 것들인 마냥 내 앞에 2자루의 소총을 내려놓고는
"Have you ever shoot?"
웃음이 나왔다. 나보고 총을 쏴봤냐고? 총을 보아하니 M16과 비슷하며 양각 대가 달려있었다. 그래서 말 보다 우선 총을 한번 보고는 분해를 했다. 역시나 원리는 M16과 같았다. 총구를 하늘로 세우고 총구 안을 들여다보니 세상에나! 아니 총관리를 이렇게나 안 하다니!
그래서 안을 보여주면서 이거 보이냐? 총 쏘면 강선에 의해 총알이 빙글빙글 돌면서 나가고 여기 찌꺼기들 남는데 저거 안 닦으면 정확도도 떨어진다고 말했다.(물론 아주 정확한 영어를 구사할 수 없어 제스처와 함께 설명했다)
그리고 소총이 발사될 때의 궤도를 설명해줬다. 25m에서 정확한 적중률과 그 이상부터는 궤도는 위로 올라가다 250m에서 다시 정확하게 명중된다는 군대에서 배운 모든 걸 총집합해서 그림으로 그려줬다.
이제 처음 만났던 그녀의 포스는 나에게 돌아왔다. 대한민국 남자는 모두 군대에 가며 우린 잠시 휴전 중이라 소총 정도는 웬만해선 다 다룰 줄 안다고 약간 잘난 척까지.
이론만큼은 날 때리면서 알려준 선임이 그날만큼 감사한 날은 없었다. 그렇게 난 소총 전문가가 되어 야간에 캥거루 사냥을 위해 아저씨의 차에 올라탔다. 그녀도 차에 탔고 날이 저물면서 우린 알 수 없는 어떤 언덕으로 이동했다.
총알을 보여줬다. 5.56mm 보통탄이었다. 그래서 한번 더 잘난 척을 했다. 이거 5.56mm이고 난 군대에서 machinegun을 사용해서 7.62mm와 12.7mm를 주로 사용했다며 정말 끝없는 군대 자랑을 한국도 아닌 호주의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그녀에게 마구 해버렸다. 보통 이러면 영화에서 결과가 뻔하지 않던가? 내 결과도 역시나 뻔했다.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이제 나의 실력을 보여주마' 하고 총을 잡고 탄창에 삽탄 한 후 멋지게 왼팔로 총을 지지했는데 한 가지 잊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여긴 그러니까 야간 사격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야간투시경도 없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마추냐고.
그녀가 망원 랜즈를 줬다. 총에다 망원 랜즈를 장착하면 멀리 있는 캥거루까지 잘 보였는데 난 망원 랜즈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총에 장착조차 못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삽질'을 하다 보니까 그녀가 대신 장착해주면서 나의 포스가 넘어갔다.
망원 랜즈를 장착하고 랜즈를 통해 본 사물들은 꽤나 잘 보였고 톰이 플래시를 들고 이리저리 찾다가 캥거루를 찾으면 멈췄다. 그럼 우린 목표를 향해 발사하면 됐다.
'나의 실력을 보여주마! 망원 랜즈는 안 써봤어도 내가 마!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이자 엉?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칭호를 받은 몸이다' 라면서 헤드샷으로 한방에 끝내버리겠다는 의지를 갖고 심호흡을 한 후 발사했다.
완벽하게 총알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겠다. 대신 주변의 캥거루들을 다 쫓아버렸다. 톰과 그녀는 그전까지 소총 전문가이자 분단국가이며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나라의 청년이 주는 전쟁 전문가의 이미지가 깨지기 시작했다.
첫발이라 그래! 라면서 다시 안심시키고 다음 캥거루를 찾았다. 이전에는 그래도 캥거루를 죽여야 한다는 죄책감이 있었지만 이젠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무조건 명중시켜 실추된 나의 명예와 대한민국의 명예(?)를 끌어올려야 했다.
두 번째 목표는 캥거루 같은 왈라비를 찾았다. 왈라비는 캥거루보다 몸집이 좀 더 작았다. 그래서 저거 명중시키면 그래도 인정받겠지 하면서 두 번째 사격을 시작했다.
역시나 주변의 모든 동물들을 다 쫓아버렸다. 그제야 두 명은 의심을 하다못해 웃어버렸다.
"hey charlie. did I hear wrong? you served army. right?
한 5번은 더 실패했고 난 더 이상 소총을 들지 못했다. 굴욕을 맛봤다. 그때였다.
"Daddy stop"
그녀는 양각대로 총구를 고정하고는 저 멀리 내가 맞추려 했던 캥거루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캥거루를 향해 쐈고 정확히 헤드샷이었다.
톰 아저씨가 얼른 달려가 캥거루를 끌고 와서는 날 보면서
"you see that?" 하고 웃으면서 픽업트럭에 캥거루를 올려놨다. 정말 정확한 해드 샷이었다. (캥거루 상태는 따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른 캥거루를 찾아서 역시나 1발 발사로 헤드샷!
갑자기 그간 내 군생활 중 총에 대한 원리, 이론부터 실전까지 했던 2년간의 세월이 그녀의 총 2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2마리 잡았으니 집으로 가자며 톰이 방향을 틀었다. 어쩔 수 없지만 집으로 가야 했고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아! 좀 더 겸손할걸' 하고는 그녀에게 쌍 엄지를 들며 칭찬을 해줬다. 그녀는 아주 뿌듯해하면서 그렇게 그간 본인이 사냥했던 일화들을 설명하며 집에 돌아왔다.
톰은 잡은 캥거루를 우선 창고에 매달아 보관하고는 내일 해체하자며 늦은 저녁시간에 또 양 보육소에 가서 나와 둘째 딸과 함께 동냥젖을 주고는 3명이 모였으니 하지도 않던 포커를 하면서 그간의 일들을 얘기하며 즐거운 하루의 마무리를 보냈다.
역시 겸손해야 해! 아니 겸손했어야 하는데 말이지! 하지만 포커는 지지 않았다. 마! 내가 퀸즐랜드 RSL클럽 포커 5위까지 한 사람이야!.. 아.. 겸손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