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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32: Made by Charlie!

호주 목축업에 내가 일조했다!

by 찰리한

아침 7시 30분, 아침 공기는 여전히 쌀쌀하지만 너무 상쾌했다. 마치 고농축 된 산소 덩어리를 들이마신 마냥 상쾌했다. 눈이 저절로 떠졌으며 전날 늦게 잤다고 생각 들지 않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아침에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는 근데 기분 좋음을 넘어섰다. '아오 시끄러워서 원!'

그 시끄러운 소리 사이로 이상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났다. 그냥 양이나 뭐 고라니 겠거니 하고 크게 신경 쓰진 않았는데 코알라가 내는 소리라고 했다.

'엥? 그 귀엽고 느리고 매우 심하게 착한(?) 코알라가 이런 소리를 낸다고? 완전 이건 어불성설 아닌가?'


일어나 보니 쥐덫에 쥐가 몇 마리 잡혀있었다. 난 잠귀가 정말 기막히게 밝은데 쥐덫에 잡힌 쥐들의 소리조차 못 들을 정도로 깊게 잤나 보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쥐덫에 잡혀 시체로 변한 쥐들을 보며 마음이 좀 안타까웠다. 나름 귀엽게 생긴 생쥐라서 그랬는지 쥐덫을 다 치워버렸다. 집 주변에 식빵 몇 개를 뿌려서 쥐들이 먹게 하고는 대충 씻고 톰 아저씨네로 걸어갔다. 하얀 털색의 어린양들이 잔디밭에 앉아있고 풀을 뜯는 어미 양, 이제 막 해가 떠 오르지만 이미 파란 하늘 위로 실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의 상상으론 양들의 털색은 하얗다. 어린양들의 털색은 그 상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어미 양들의 털색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회색 정도를 넘어 좀 만지기 싫을 정도로 먼지가 많이 묻어있다.)


9시부터 공식적 내 일이 시작되지만 이미 8시에 톰 아저씨는 보육원 같은 양 케이지에 들어가 양들에게 우유를 주고 있었다.

"morning Tom. Can I help you?"

"good morning charlie. Have a good dream? If you can, come in."


톰은 아직 9시 전이라 혼자서 일을 했지만 여기서 그렇게 계산적으로 일하기보단 그냥 내 기분의 흐름대로 돕고 싶었다. 케이지 안에 들어가 어미 잃은 어린양들에게 동냥젖을 줬다. 그렇게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아침을 먹었다. 역시 로젤리는 아침도 미리 준비해두었다. 버터에 식빵을 굽고 각종 신선한 야채와 로젤리 표 특제 드레싱, 잼, 토스트용 소시지가 있었다. 우유는 전날 아침에 짠 우유를 뭐 불순물 가라 앉히고 소독을 해서 하루정도 상온에 놔둔 아주 싱싱한 우유였다. 당일 아침에 바로 짠 우유는 비린맛도 있고 바로 먹을 경우엔 탈 날 수 있다고 한다.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하고 빵에 재료들을 넣어 먹었다. 그리고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우유는 양산품의 그 획일적인 맛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너무 고소했고 샌드위치와 아주 궁합이 잘 맞았다. 저 멀리 '야옹' 하면서 푸시켓이 오자 로젤리는 우유를 접시에 덜어서 푸시켓에게 줬다. 한국에서 고양이들은 우유 같은 거 잘 안 먹던데 왜 애니메이션을 보면 고양이들이 우유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우유는 맛있었다.

푸시켓은 우유를 한 접시 다 먹고는 내 옆에 와 앉더니 나를 연신 쳐다봤다.

소시지를 반으로 잘라서 푸시켓에게 주고 남은 반은 냄새 맡고 집으로 들어온 카일에게 줬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끝냈다. 그러자 톰이 오늘은 다른 걸 하러 간다면서 lunch box를 준비했다.

식빵, 전날 먹은 캥거루 스테이크를 슬라이스, 소시지 그리고 과일바구니에 담겨있던 바나나, 사과, 배, 나름 좀 비싼 아보카도까지 챙기고 홍차 티백, 인스턴트커피, 새까만 주전자, 우유 등 여러 가지를 런치박스에 담고선 픽업트럭으로 갔다. 2명이 가는데 런치박스는 한 3 바구니 나왔다.

오늘 보는 픽업트럭에는 새로운 기계가 달려있다. 트럭 뒤에서 작동시킬 수 있는 땅 파는 기다란 드릴과 망치처럼 내려찍는 기계.

통은 나에게 아주 재미난 것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바로 낙농업 국가답게 양, 소의 울타리 치는 톰 아저씨의 또 다른 직업의 세계에 내가 투입되어 캥거루 섬에서 첫 울타리 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번엔 외부로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카일은 동행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울타리를 칠 자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울타리용 나무기둥이 있었다. 길이는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3m 정도 되었다. 철조망은 둥글게 말려져 있었다. 두껍고 단단한 장갑을 끼고 이것들을 픽업트럭에 실었다. 철조망에 손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 꼈지만 또 다른 이유는 나무기둥은 검은색의 무언가가 코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휘발유 냄새가 나는데 이유는 흰개미들이 나무기둥에 다가가지 못하게 함도 있고 특유의 화학 냄새로 인해 뱀과 같은 파충류들 역시 울타리 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자재를 싣고 차로 20분 정도 달려 어느 동산 같은 곳에 도착했다. 트럭은 4륜이라 그런지 어지간한 언덕길도 거침없이 달릴 수 있었다. 언덕의 중간쯤 올라가서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첫 울타리 만들기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10시쯤 도착했고 자재를 내려 본격적 울타리를 만들 준비를 하는데 역시나 티타임을 빼놓을 순 없었다.

주변의 땅을 다지고 나뭇가지를 갖고 온 다음 유칼리툽스 나뭇잎을 찾아 불을 지폈다. 갖고 온 새까만 주전자의 역할은 물을 끓이는 용도였다. 그렇게 물을 끓여 트럭 뒤쪽에 올라가 톰은 홍차를, 나는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면서 언덕 밑으로 보이는 푸른 잔디밭과 나무들, 저 멀리 kingscote 도심, 더 멀리 짙은 파란색과 에메랄드색의 경계선이 잘 구분된 바다. 그런 바다와 맞닿은 또 다른 경계선이 된 푸른 하늘이 보였다.

20분 정도 커피와 비스킷, 그리고 자연을 보면서 눈 안에 그 관경을 담았다.

"Let's do it!"


우선 톰이 먼저 시범을 보여줬다. 울타리를 박기 위한 곳에 차를 세운 다음 커다란 드릴을 꺼내 땅에다 대고 구멍을 뚫는다. 이때 땅이 좀 굳어서 딱딱할 수 있으니 드릴 옆에 호스를 통해 물이 같이 나온다. 물은 픽업트럭 윗부분에 있어서 물이 다 떨어지면 또 채우면 되며 근처에 웅덩이에서 퍼갖고 오면 된다.

그렇게 구멍을 거의 70~80센티 정도 뚫은 다음 울타리용 나무기둥을 구멍 안에 넣는다. 다음에는 트럭 위에서 망치같이 내려치는 기계를 작동하여 기둥 위를 내려친다. 그렇게 몇 번을 내려쳐서 약 3m짜리 나무기둥이 거의 1~1.5미터 정도가 남도록 계속 내려치면 된다. 어느 정도 단단하게 박혔다 생각되면 드릴로 인해 파이면서 나온 흙들과 물이 섞여 진흙이 되어버린 것들을 주변에 빈틈없이 채워준다.

그렇게 단단하게 고정된 나무기둥에 이번엔 작은 드릴로 구멍을 3개 뚫는다. 이 구멍들 사이로 철망을 넣고 다른 나무기둥에도 구멍을 뚫어 연결하면서 울타리를 치게 된다. 철조망은 바로 치지 않고 진흙들이 어느 정도 마르면서 더 단단해지기를 기다렸다 치면 된다.


톰은 한 번의 짧은 시범을 보인 후 나보고 해보라고 했다. 아주 재밌을 것 같은 기대감만 잔뜩 들었고 기계들 조작법을 배운 후 해봤다. 예상과 달리 어렵지 않았다. 드릴로 구멍을 뚫고 나무기둥을 갖고 와서 넣은 후 기계를 다시 작동하여 망치처럼 내리찍었다. 그렇게 1.5m 정도의 기둥이 완성되었고 그게 바로 내 첫 캥거루 섬에서의 울타리용 나무기둥이 되었다.

톰은 잽싸게 하얀색 볼펜 같은 걸로 그 기둥에 적었다.

"This is made by charlie han!"

글씨를 적고 나니 뭔가 마음속에 찡한 감정과 함께 엄청난 뿌듯함이 밀려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부딪혔다. 하나 더 해보겠다며 서둘러 장소로 이동하였다.

그렇게 2시간 남짓 10개 정도의 나무기둥을 박았다. 햇살이 좀 더 강렬해지고 배가 고플 시간이 되었다. 처음 모닥불을 지폈던 장소로 다시 이동했다.

톰은 Y자형 나뭇가지를 찾으러 주위를 둘러봤고 나는 나뭇가지와 유칼리툽스 나뭇잎을 모아 왔다.

불을 지폈고 톰이 갖고 온 Y자형 나뭇가지에 식빵을 걸치고 치즈, 버터, 캥거루 스테이크 고기 그리고 그 위에 또 치즈, 식빵을 올려 샌드위치처럼 만들고선 바로 불로 직행했다.

이게 바로 진짜 레알 토스트였다. 직화 토스트. 그릴 따윈 필요 없었다. 너무 오래 두면 빵이 타버리기 때문에 3초 간격으로 넣고 빼고를 반복하다 치즈가 다 녹으면 그대로 먹으면 된다. 역시 맛있다. 정말 맛있다.

이런 상상도 못 할 토스트를 여기서 먹게 될 줄이야! 울타리 작업하러 나올 때면 항상 먹었었다.

그리고 디저트는 역시 그 Y자형 나뭇가지에 바나나를 구워 먹는 것이다. 이건 내가 그냥 한번 해봤다.

직화로 구워 먹는 모든 것은 다 맛있다 라는 진리를 갖고 바나나도 한번 구워봤다. 맛은 역시나 예상대로 꿀맛 그 자체!


점심 먹고 또 티타임을 갖고 다시 울타리 치는 작업을 하는 중 길이가 3cm는 넘어 보이는 개미가 한 마리 있었다. 신기해서 그 개미가 있는 쪽으로 갔는데 갑자기 개미집에서 그런 개미가 마구 튀어나왔다.

아주 전투적이었다. 톰한테 진짜 겁나 큰 개미 있다고 하니까 그 개미집은 울타리 안쪽에 들어오지 않도록 방향을 약간 수정해서 쳐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그게 불독 개미라는 건데 물리면 아픈 정도를 떠나 죽을 수도 있단다. 그래서 울타리 안으로 치게 되면 양들이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에 꼭 그 개미집은 울타리 밖으로 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되도록 근처에 가지 말라고 항상 경고했다. 개미집 근처에 가지 않으면 일반 개미처럼 사람을 공격하진 않지만 집 근처로 이동하면 성향이 매우 사나워진다고!


개미집을 피해 나무기둥을 박고 울타리를 치면서 하루를 보냈다. 쉼 없이 일하기보단 정말 쉬엄쉬엄하면서 일을 했다. 바쁘지도, 그렇다고 너무 지루하지도 않게 일을 했고 오후 4~5시면 원칙적 내일은 마무리된다. 톰은 그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더 이상의 일은 시키지 않았지만 나 혼자 신난 나머지 "one more"을 그렇게 외쳐댔다.

집에 오니 카일이 나를 반겨줬고 농장을 한 바퀴 돌면서 양과 소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울타리도 혹시 끊어지거나 잘못된 곳이 없는지 한번 더 체크하고 집으로 와서 '호주가 주신 특급 요리사' 로젤리가 해주는 저녁을 먹고 양들에게 우유와 동냥젖을 먹인 후 톰에게 체스 1승 4패의 처절함을 안고 숙소로 와서 난로에 불을 지피고 식빵을 또 집 주변에 뿌려놓고 침낭을 펴고 잠을 청했다.


WWOOF를 통해 진정한 호주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캥거루섬에서 양을 키우는 울타리를 내가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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