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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31: 톰 아저씨의 농장을 소개합니다

농장 생활의 소소한 일들이 주는 행복과 여유!

by 찰리한

1달 전 한국인의 파렴치한 행동들을 내가 모두 갚아주겠다며 의욕적으로 할 일들을 물어봤고 톰 아저씨와 함께 집 뒤에 있는 나무들을 도끼로 두 동강 내는 일을 했다. 두 동강 낸 나무토막을 saw machine으로 잘게 한번 더 잘라주는 것 까지.

'한국인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도끼질을 했다. 톰 아저씨는 원샷 원킬이였다. 나 역시 나름 곡괭이질은 잘했기에 그와 비슷한 감을 갖고 내리찍었다. 정확하게 나무를 빗나갔다. 다시 한번 더 내리찍었다. 역시나 아주 정확하게 빗나갔다. 한마디로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톰 아저씨는 나를 보며 힘빼고 천천히 하라고 했지만 여전히 헛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아! 정말 왜 이렇게 안되던지.

아저씨는 웃으면서 저기 saw machine에 가서 두 동강 난 나무를 자르는 게 어떻냐고 했고 퀸즐랜드에 있을 때 타일 일을 하면서 그 졸리 치던 일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saw machine으로 나무를 잘랐다.

위험하니까 정신 차리고 보안경 쓰고 청력보호용 귀마개를 쓰고 열심히 잘랐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말없이 자르고 나서 문득 생각났다.

"Tom I have a question. Why we cut this wood?"

"When we cook, need this wood"

뭐지? 분명 캥거루 스테이크랑 버터로 야채 볶을 때 가스레인지 사용했는데 나무가 필요하다니.

그래서 우선 알겠다 하고 쉼 없이 잘랐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 정도는 작살내지 않았을까.

"Charlie. It's tea time. stop cutting"

잉? 일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티 타임인지. 뭐 일단 알겠다고 하고 톰 아저씨한테 갔다. 자른 나무들을 바스켓에 담아 집안으로 들어왔다. 주전자에 물을 담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는데 불을 켜는 스위치가 없었다.

이건 가스레인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만화 '빨간 머리 앤'에서만 봤던 그 wood stove 였다. 우드스토브 왼쪽 아래에 문을 열고 숯으로 남아있는 불씨에 나무를 넣어 불을 붙인다. 문을 닫고 기다리면 강한 화력에 의해 윗부분의 코일이 빨갛게 달궈지면서 주전자의 물을 끓이는 것이다. 약간 수동 인덕션 느낌이다. 그리고 나무 넣는 곳 옆은 오븐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와! 세상에. 아궁이에 불은 짚혀봤어도 우드 랜지를 사용하게 될 줄이야!'


아저씨는 블랙티를 좋아하며 나한테 티 종류를 설명해줬지만 그냥 커피 마시기로 했다. 역시 카페인이 들어가야 힘이 나기 때문이다. 티타임과 함께 본인의 농장을 보여주겠다며 집 뒤로 가서 픽업트럭 뒷자리에 탔다.

아저씨는 운전석에서 휘파람을 불었더니 정말 어디에 있을지 모르던 카일이 1분 안에 호출되어 트럭 위로 올라탔다. 정말 개들의 청력은 인간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농장을 한 바퀴 둘러봤다. 농장은 정말 컸다. 커도 너무 커서 차로 한 바퀴 돈다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가운데 차가 다닐 수 있는 비포장 도로 양옆으로 한쪽에는 양들이, 반대쪽에는 내가 맥도널드에서 즐겨먹었던 블랙 앵거스(소) 들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양 떼들이 있는 울타리를 넘어갔다. 역시 양들은 우르르하고 도망 다니기 바빴고 카일은 그 양들을 아저씨의 신호에 따라 여기저기 몰았다. 카일의 저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양을 모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엄청 착하고 멍청한 개가 울타리 하나 넘어 들어가는 순간부턴 냉정하고 똑똑한 개로 변했다. 오! 완전 카일은 프로 양몰이 개였다.


반대편 소 목장에서는 블랙 앵거스 들이 풀을 한가로이 뜯고 있었다. 블랙 앵거스는 생각보다 순했다. 그쪽으로 넘어갔는데 카일조차 소를 모는 일은 역부족인지 조용히 아저씨 옆을 따라 걷고 나도 아저씨 옆에 붙어 걸었다. 방목된 소들은 그리 사납지 않다. 지푸라기 갖고 소한테 가면 와서 받아먹을 정도로 온순하긴 하지만 덩치가 있기에 잠깐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3시간을 농장체험을 했다. 이건 커도 너무 큰 거 아닌가 해서 톰 아저씨한테 농장 정말 크다 라고 말했더니 농담인 것 같은 말투로 자기 농장이 여기서 5번째로 크다고 했다.

아니 그럼 이것보다 더 큰 농장은 도대체 얼마나 더 크다는 건가?

돌아오는 길에는 차에서 내려 카일과 함께 달려갔다. 양 떼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카일과 한번 장난쳐보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봤다. 한 3초 후에 카일이 뒤에서 바로 덮쳤다.

와! 정말 빨랐다. 그래서 카일과 돌아오는 길은 거의 레슬링하면서 왔다. 잡히면 해드 뱅을 하면서 눕히고 도망가다 또 잡히면 또 눕혀버리면서.


저녁시간이 되어 로젤리는 우리가 갖고 온 나무들을 우드 랜지에 넣고 이번엔 양 스테이크를 해줬다. '양고기는 캥거루보다 특유의 비린내가 더 심한데'라는 걱정은 역시나 로젤리 특유의 비린맛 제거용 허브를 통해 아주 말끔하게 없어졌다. 로젤리는 정말 음식을 잘하는 분 이셨다. 직접 만든 소스 또한 매우 특이했다. 양 스테이크를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먹고 또 먹었다. 역시나 푸시켓과 카일이 옆에서 내가 먹을걸 줄 거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기다렸다. 카일에게는 양 스테이크 뼈와 살을, 푸시켓에게는 양 스테이크 살을 발라서 줬다. 저녁을 먹은 후 설거지를 얼른 해버렸다. 그 사이 톰 아저씨는 또 티를 준비했다.

티타임을 가지면서 1년간 내가 호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었다. 두 분은 정말 좋으신 분이었다. 처음 퀸즐랜드에서 타일일 하다 돈 못 받고 시드니에 와서 같은 민족에게 사기 당하고도 한국 갈까 고민하다 애들레이드에 와서 고기공장에 들어가 열심히 돈 벌고 여기까지 온 여정들을 듣고는 정말 많이 위로해주셨다.

내 짧고 어설픈 영어는 이들에게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저 타 국가의 청년이 호주 문화 배우겠다고 고생이라면 고생일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여기까지 온 게 대견해 보인 듯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그 이전의 한국인에 대한 오해가 다행히 쉽게 풀린 것 같았다.

저녁 8시가 넘었다. 원래는 우퍼들의 일하는 시간은 5~6시간 정도이다. 하지만 이 부부의 호의가 너무 좋았고 농장체험, 카일과 뛰어놀고 푸시켓을 계속 밥 먹다 밀어내는 일들이 너무 재밌는 나머지 숙소에 가지 않고 아저씨 집에 더 있었다.


아저씨는 어린양들에게 밥 주러 가야 한다며 같이 가겠냐고 물어봤고 당연히 난 따라갔다.

집에서 30m 정도 떨어진 나무로 된 커다란 케이지 안에는 어린양들과 어미 양 2~3마리가 있었다. 이곳은 한마디로 보육원 같은 곳이었다. 농장이 넓다 보니 돌부리가 있는 비탈길 진 곳도 있다. 양들은 참 특이하게 한 마리가 어디론가 뛰어가면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고 눈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무리들이 다니다 옆 양에게 밀려 원치핞게 비탈길에 굴러 떨어져 가끔 죽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그럼 그 어린양 은 젖을 먹을 수 없어 굶어 죽기 때문에 다른 어미 양 2~3마리를 케이지에 넣고 동냥젖을 먹이게 된다. 하지만 철저하게 본인의 새끼양은 잘 먹이지만 다른 어린양에게는 젖을 안 물리려고 한다. 주기적으로 가서 강제로 젖을 물릴 수 있게 도와줘야 했고 밤에는 젖을 얻어먹기 더 힘들어 직접 줘야 한다면서 나 역시 그 케이지 안에 들어갔다.

딱 봐도 누가 어미를 잃었는지 알 수 있는 게 어미 양들이 자기 세끼가 아닌 양들을 밀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미 양에게는 맛있는 풀들을 주는 동시에 빠르게 어미 잃은 양들이 젖을 물릴 수 있게 도와줬다. 그 이외 다른 어린양들은 우유 젖병으로 유혹해서 어미 잃은 어린양들 먼저 젖을 양껏 먹인 후 부족한 부분은 또 우유로 배를 채워줬다.

1시간 동안 그렇게 양들에게 우유를 준 후 9시가 되어 하늘을 봤다. 여긴 빛 공해가 없었다. 밤하늘의 별은 고기공장에서 일했던 머레이 브리지보다 훨씬 더 잘 보였다. 아저씨네 집에서 나오는 빛 이외에 내가 볼 수 있는 빛은 밤하늘의 별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별은 거의 은하수 수준으로 많았다. 별자리를 찾기보단 그냥 밤하늘이 주는 선물을 받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아저씨는 "체스 한판 둘래?"라고 나한테 제안을 했고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체스를 한판만 두기로 했는데 한 3판을 내리 지니까 오기가 생겨서 2판 더 두고 결국 밤 11시에 숙소에 들어왔다. 하루가 정말 길었지만 그렇게 행복하게 지낸 시간들이 또 있었을까.

숙소는 너무 추워서 미리 준비한 유칼리툽스 가지들을 난로에 때려 넣고 불을 붙였다. 코알라들이 그렇게 먹는다는 풀이며 신기하게도 유칼리툽스 잎에는 알코올 성분이 있어 불에 매우 잘 붙는다고 알려줬다. 이건 지푸라기보다 정말 훨씬 더 잘 붙었다. 금세 불이 붙었고 장작을 넣어 집안을 따뜻하게 하고는 나도 침낭을 펼치고 난로 옆에서 잠을 청했다.


로젤리 & 톰과 함께한 WWOOF 생활은 거의 3주 좀 안되게 했었다. 하루하루는 매우 길었다. 하지만 마음의 위로와 여유를 정말 많이 얻었다. 하루는 길지만 1주, 2주 단위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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