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된 나의 WWOOF 생활!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 뜨겁지만 눈부신 햇살. 조그만 나뭇가지에서 부리를 다듬는 새와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 오고 가는 차도 별로 없어 소음공해라는 말 조차 여기선 통하지 않는 조용한 시골 동네 도심. kingscote에서의 첫째 날이었다. 공기는 너무 상쾌했고 겨울이라 약간 차가웠다. 시리얼과 우유를 먹고 다시 우프 (wwoof) 책을 펴고 캥거루 아일랜드 쪽에 다른 호스트의 이름과 전화번호, 숙박이나 일, 여러 가지 사항들을 읽어봤다.
아침 9시에 전화는 실례일 것 같아서 10시에 전화를 걸기로 하고 20개 정도 되는 주인들의 글을 읽었다.
내가 원하는 곳은 우선 '호스트와 분리된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와 '농장 일'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고기공장에서 양과 소는 수없이 많이 보고 많이 죽이기도 해서 그런지 자유를 누리면서 지내는 양들과 소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이젠 죽음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이 아닌 자유를 맛보고 있는 그들에게 밥이라도 하나 더 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거기엔 rogeli(이름이 가물가물함. 그냥 로젤리라고 불렀음)와 tom's house라는 부부가 운영하는 농장이 있었다. 분리된 숙소에 양과 소, 그리고 목장용 펜스를 치는 일을 한다고 쓰여있었다. 내가 여기서 손수 목장의 담벼락 만든다는 건 정말 어디서 절대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읽어보니 숙소에는 생쥐와 뱀이 나올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뱀을 좋아한다. 물론 독사라면 반대지만 야생에서 뱀을 보는 것만큼 짜릿한 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절대 움직이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어지간해서는 먼저 무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10시가 되고 난 로젤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hello"
"hi I'm charlie han. are you rogeli?"
"Yes. I am."
"I waana work your farm. I'm wwoofer. I read your house, condition and so on"
"Oh, that is so great! so when do you come here?"
"Right now"
"Sorry??"
"Right now. I'm in kingscote"
10시 '땡' 치자마자 바로 로젤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우퍼이고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우프 (wwoof)를 신청하려고 전화했다고 말했다.
언제 올 건지 물어봤는데 당장 지금이라고 대답하자 로젤리는 약간 당황하면서 다시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왜 여기에 이러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는 정말 꼭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로젤리는 5분 후에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안되면 다른 곳을 구하면 됐지만 목장 펜스를 치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기에 난 더욱더 로젤리와 톰 아저씨네서 일을 하고 싶어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5분 후 로젤리가 좋다고 했다. 남편 tom이 마침 kingscote에 물건 사러 가니까 내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어디 백패커에 있다고 했고 짐을 꾸려서 백패커 주인님께 로젤리와 톰스 하우스로 간다고 하니까 정말 좋은 분들이라고 말했고 주인님이 직접 톰 아저씨에 전화를 걸었다.
헐! 여긴 정말 슈퍼 초 시골이란 걸 언제나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서로 잘 알고 있었다.
20분쯤 후에 저 멀리 정말 키가 190 정도 되며, 안전화, 통 넓은 청바지에 검은색 털 카디건, 수염이 약간 나있는 50대 비니를 쓴 아저씨가 날 보고는 손을 흔들면서 "Hi are you charlie?"라고 외쳤다.
"Yes it's me. I am puc... I am charlie"
고기공장에서 계속 pucking charlie라고 부르고 그렇게 소개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puck 이 튀어나와 얼른 고개를 흔들고 내가 찰리라고 했다.
아저씨는 픽업트럭에 내 케리어를 싣자마자 뭐 먹고싶나며 바로 식료품점에 갔다. 거기가 바로 운명 같은 liberty store 였다. 내가 여기 때문에 host를 한번 놓쳤지만 그래도 더 좋은 host 로젤리와 팀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들은 냉정하지 않았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 환영해주는 모습이었다. 톰 아저씨는 식빵 2 봉투, 우유 2리터, 버터, 잼 그리고 호주에서 한번 먹고 절대 먹지 않았던 베지마이트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게 내가 아침에 먹을 것이라면서. 그래서 얼른 베지마이트는 빼고는 미안하지만 절대 먹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호주의 soul jam이라고 불리는 베지마이트는 나에겐 그저 생 된장 먹는 느낌이며 그걸 빵에 찍어먹는다는 건 최악의 맛이었다. 짜고, 짜고 그냥 짜다.
톰 아저씨는 먹을 것을 싣고 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저씨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어디서 왔냐, 뭐하고 지냈냐, 호주 어떻냐, 그 많은 곳 중에 왜 캥거루섬이냐 라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고 나 역시 대답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다 말해줬다.
가는 길에 참 신기했던 건 운전 중 맞은편에 차가 오면 스티어링 휠에 올려놓은 손에서 검지 손가락만 들었다 내렸다. 처음엔 몰랐는데 지가 나는 차가 올 때마다 검지 손가락을 들었고 반대편 차 역시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그게 일종의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정말 여긴 슈퍼 초 시골이란 걸 언제나 느끼게 해 준다. 슈퍼 초 시골은 정말 정겹다. 물론 냉정한 첫 번째 호스트 같은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너그럽고 정겹고 여유가 넘쳤다. 포장도로에서 비포장 도로로 5분 정도 들어가다 보니 철문이 하나 있었다. 그 철문을 아저씨가 열고 들어간 다음 문을 닫았다.
'아니... 문이 있을 정도로 큰 농장인가? 아저씨 옷차림은 그냥 정말 평범한데. 무슨 땅부자 이신가?'
그렇게 문을 닫고도 차로 2분 정도 들어가니까 아담한 집이 나왔다. 그 주위로 어린양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저 멀리 양 떼들이 뛰어다녔다. 양만 한 만 마리 있다고 했다.
"you're kidding me!" 하고 웃었는데 나중에 건초더미 주면서 알았다. 진짜 만 마리는 안돼 보였지만 밥 주는데만 3시간은 넘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카일이라는 개(오스트레일리아 양치기 개로 켈피 종이다)가 앞발을 올려 새로 산지 이틀밖에 안된 나의 그 양털 잠바에 두 발자국을 똬악 남기셨더랬다.
로젤리가 바로 카일의 등짝을 날리면서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이렇게 된 거 그냥 카일의 머리를 잡고 해드벵을 돌려버렸다.
카일은 너무 착했다. 방목도 이런 방목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목장 내를 쉼 없이 뛰어다니고 특히 교육을 참 잘 받았기 때문에 내 장난 정도는 그냥 받아주었다. 그리고 사람을 매우 매우 좋아한다.
로젤리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했고 내가 머물 숙소부터 데려갔다. 숙소는 주인집과 걸어서 1분 정도 떨어져 있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쥐덫이 4~5개 정도 놓여있었다. 뱀도 가끔 나오지만 맹독류는 아니고 지금은 7월이라 아마 거의 보는 일은 드물 것이라 했다. 생쥐는 좀 있지만 쥐덫 있으니까 괜찮다며 날 안심시켰다. 하지만 난 생쥐 정도는 그냥 꼭 그렇게 죽이는 게 맞을까 했고 나중에는 쥐덫을 다 치워버렸다. 그냥 집 밖에 식빵 몇 개 던져주고 알아서들 먹게 내버려 두었다. rat이라는 정말 큰 들쥐가 아닌 mouse라는 생쥐였고 이들은 꽤 귀여웠다.
짐을 풀고 톰과 로젤리한테 갔다. 그들은 바로 점심을 준비했다. 나를 식탁에 앉히고는 잠시 기다리라면서 점심 준비를 서두르셨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옆에 같이 앉았다. 거무수룩한 긴 털로 뒤덮여있지만 주둥이와 발에 하얀 털이 있는 딱 봐도 너무 순하게 생긴 고양이였다. 이름이 뭐냐고 하니까 'push'라고 했다. 이유는 아주 원초적이었다. 하도 달라붙어서 밀어내다 보니 푸시라고. 그럴 정도로 이 고양이 역시 카일만큼 사람을 좋아한다. 처음 보는 낯선 나에게 조차 목 주위를 만져달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프 끝날 때는 나 역시 녀석을 밀쳐내느라 혼났다.
카일과 푸시는 서로 건들지 않고 사이가 나쁘지도 않다. 오히려 카일은 먹을 것을 푸시에게 양보하는 스타일이었다. 푸시는 아주 사람을 좋아하고 얌전한 반면 카일은 장난도 많고 항상 놀아달라며 시끄러웠지만 양몰이 때는 진짜 프로 양몰이 개로 변한다. 그땐 옆에 가기 살짝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과 순발력, 짖는 소리 또한 엄청났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개여서 양몰이가 끝나면 다시 순하고 멍청하고 착한 개로 변한다.
점심은 캥거루 스테이크에 사이드로 버터에 튀긴 파프리카, 아스파라거스였다. 맛은 말해 무엇하랴! 내가 마트에서 사 먹은 캥거루 고기는 특유의 약간 비린맛이 있어서 먹기 좀 힘들었는데 로젤리는 허브와 버터기름만으로 이 비린맛을 다 잡아버렸다. 그래서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데 푸시켓이 옆에서 누가 봐도 하나 달라는 울음소리를 냈고 스테이크 한 조각 떼어 주니까 귀신같이 카일이 어디선가 쏜살같이 집 문을 들이밀고 들어와 내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로젤리한테 줘도 되냐고 물었고 안될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잠시 티타임을 갖자고 한다. 티타임은 정말 너무 좋았다. 진짜 뭐 1시간 일하면 그렇게 티타임 갖자고 하는 이들의 문화는 처음에는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는데 그냥 급하지 않은 그들의 문화였다.
티타임중 나는 궁금해서 물어봤다. 원칙은 아니더라도 당일날 내가 그것도 아침에 전화해서 당장 하겠다고 했는데 거절할 수 있었지만 왜 받아줬는지 물어보자 로젤리가 웃으면서 말해줬다.
"your voice is very serious and sounded is deperate"
이상했다. 난 분명 다음날 여유를 갖고 전화했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는 너무나 심각했고 그 목소리에 간절함이 넘치다 못해 아예 누가 들어도 받아 달라고 할 정도여서 안 받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오기 1달 전인가에 한국인이 한번 왔는데 정말 엉망진창으로 해서 마음이 좀 안 좋았다고 했는데 하필 또 한국인이라 더욱더 받고 싶지 않았는데 간절함이 너무 잘 드러나다 보니 톰 아저씨와 5분간 상의 끝에 결정했다고 한다.
갑자기 난 또 쓸데없이 그놈의 한국 국가대표의 타이틀을 들게 되었다.
"Don't worry Rogeli. the koreans and I are totally different. I'm sure that I can do everything perfectly!"
고기공장에서 나의 한국 국가대표의 솜씨를 다시 한번 발휘할 때가 왔다. 한국의 이미지를 땅 밑에서 하늘 끝까지 올리고 가야겠다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뭐부터 하면 될까? 내가 뭐부터 도와줄까?" 하고 바로 의욕적으로 물어봤더니 톰 아저씨를 따라가라고 했다.
그렇게 첫날 내가 맡은 임무는 바로 나무 자르기였다. 미리 잘라진 나무토막을 도끼로 내리찍고 saw machine으로 잘게 부수기!!!
난 여유롭게 전화했다고 했는데 역시 마음은 속일 수 없었다. 그나저나 그 한국인 누구더냐! 우리 한국인은 그렇게 무책임하지 않다는 걸 내가 한번 증명해 보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