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WWOOF 호스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7월 2일 금요일부터 시작하기로 한 날짜를 하루만 미루자고 했고 15시 30분에 kingscote liberty store 앞에서 픽업하겠다고 말했다.
하루 정도는 들뜬 마음을 갖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 3일 날 그 장소로 가겠다고 했다. 캥거루 아일랜드로 가려면 페리를 타고 가는 방법과 비행기를 타는 방법 2가지가 있다. 섬으로 갈 때에는 시간적 여유도 있고 좀 여행을 즐기고 싶어서 페리를 예약했는데 인터넷으로 변경 가능해서 날짜를 변경했다.
6월 30일 수요일이 왔다. 이제는 우리가 'good bye'하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와인도 내가 일하는 곳에 와서 같이 일하면서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그렇게 했다. 저녁에는 수단애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나이지리아 녀석한테 가서 축구는 솔직히 너네 나라가 더 잘한다고 이실직고(?) 했다.
(2010년 월드컵 때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겼다. 그전까진 계속 나이지리아 축구 우~~ 하면서 놀렸음)
내가 받았던 피복류들을 다 반납하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대한독립만세 you guys" 하고 오랜만에 외쳤다.
역시나 다들 그게 욕이 아니란 걸 알았고 "puck charlie have a nice trip"이라고 외쳤다.
약간 눈물이 났다. 막상 인사할 때는 괜찮았지만 역시나 헤어짐은 참 나에겐 어려웠다.
다음날 더 이상 공장에 가지 않는 것이 실감 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한 여행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케리어를 정리했다. 필요 없는 옷들은 냥냥이 집에 놨다. 물론 냥냥이는 그 집에 들어가진 않지만 그나마 내가 집사로 활동했던걸 기억해 달라는 마음으로. 역시나 은혜를 갚는다고 아침에 따박따박 목 없는 생쥐들이 집 앞에 놓여있었다. 이 관경도 이젠 그리울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 막 온 한국인 동생에게 냥냥이 사료와 사이드 메뉴 위치를 알려주고 아침마다 꼭 주라고 했다. 그리고 돈 벌거든 너도 좀 집사로 활동해 달라는 농담과 함께 즐거운 공장 생활하고 오버타임 죽도록 하지 말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애들레이드로 출발해 백패커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주 밝고 상쾌하게 페리가 있는 선착장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페리는 한강 유람선보다 좀 더 컸고 내부는 상당히 따뜻했다. 페리에 앉아 미리 사둔 초코바와 음료수를 마시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호주의 청정지역 캥거루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와~ 여기 완전 슈퍼 초 시골이구나' 선착장에 아무것도 없었다. 내리는 몇몇 사람들에 이끌려 나도 그렇게 내렸다. 여기저기 자연밖에 안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에 버스가 한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난 자연을 보고 페리를 보면서 그렇게 따뜻한 햇살만 쬐고 있었다. 한 5분 정도 그렇게 햇살을 쬐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Who is charlie. Charlie han. are you there?"
얼레? 누가 날 찾는 거지 하면서 봤더니 버스 운전기사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래서 가보니까 기사님의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슈퍼 초 시골인 이유는 페리 시간에 맞춰 버스가 와서 승객들을 태우고 도심으로 간다. 여긴 택시도 없고 이 버스는 페리 승객 전용이라 페리가 떠나고 버스를 안 탄다면 kingscote 도심까지 5~6시간을 걸어가던가 아니면 다음 페리가 오는 5시간 후에나 탈 수 있던 것이었다. 아니면 재주껏 시내버스를 타던 히치하이킹을 하던 이동 하면 되는데 그 경로는 당시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고 kingscote에 15시 30분까지 가지 못한다면 큰일이 가 날 수 있었다.
기사분이 그냥 가려다가 Han이라는 뒷 이름을 보고 외국인이라는 직감과 함께 분명 놔두면 어디서 길 헤맬까 봐 승객들에게 잠시 안내한 후 나를 그렇게 찾았다고.
버스를 타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격하게 환영해주셨다. 나는 늦어서 연신 Sorry를 외쳤지만 그들은 참 너그럽고 여유롭고 배려 깊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kingscote로 갔다.
모든 사람들이 내리고 기사분이 어디로 가냐며 물어봤고 난 wwoof라는 체험을 위해 host를 기다리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냐고 물었고 library에서 만난다고 대답했고 친절하게 날 공공도서관 앞에 내려다 주고 가셨다.
여긴 정말 슈퍼 초 시골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 건 지나가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 정도로 친하게 인사를 한다.
15시 30분. 난 kingscote library 앞에서 기다렸다. 근데 차가 그냥 지나가기만 할 뿐 어느 누구도 날 픽업하러 오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을 그 자리에서 계속 기다렸는데 안 온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까 그 버스기사분이 페리에 승객을 태우러 가는데 날 보고 왜 아직도 기다리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도 날 데리러 오지 않는다고 말했고 기사분이 내려서 뭔가를 도와주려고 했다. 난 호스트의 park에 전화를 걸었는데 이미 15시에 charlie han 이란 사람을 태우러 나갔다고 할 뿐이었다.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host는 또 휴대폰은 없다고 한다.
우선 기사분이 저 멀리 가리키면서 백패커 있으니까 거기서 짐 풀고 다시 연락해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전화를 걸어 그 백패커 주인에게 여기 동양인 한 명이 길 잃고 헤매고 있으니 좀 도와주라고 했다.
정말 친절하신 분들이었다. 그렇게 난 백패커에 가서 짐을 풀고 17시가 넘어 전화를 걸었다.
host가 전화를 받았고 library앞에서 기다리는데 아무도 태우러 오지 않아서 지금 백패커에 있다고 하니
자기는 데리러 갔는데 찰리 네가 없어서 30분 기다리다 장 보고 빨리 와서 손님 맡을 준비 하느라 못 태웠다고 한다. 그래서 난 도서관, library 앞에서 기다렸다고 말하니까 liberty store라고 말했다.
백패커 주인이 듣다가 liberty store는 바로 길 하나 건너편에 있다고 한다.
세상에나! 그것도 모르고 난 liberty store 가 library인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 태우러 와달라고 하니까 안된다고 한다. 한주에 딱 한 번만 시내로 나오는데 그게 바로 15시부터 16시까지 이다. 그 이외에는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일할 wwoofer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내가 가겠다고 하니 이미 시간이 지나서 안 오는 줄 알고 모든 걸 다 치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지 말고 한번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여기 오려고 배 타고 왔는데 라며 사정을 했지만 딱 잘라 안된다고 한다. 다른 곳 알아보고 즐거운 여행 하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너무 냉정하게 그냥 끊어버렸다. 이곳의 다른 사람들은 인심이 그렇게 좋건만 이 호스트는 아주 냉정하게 받아주지 않았다.
하긴 내가 잘못한 것도 있었지. 어떻게 liberty를 library로 들었을까!
그냥 벡 패커 주인에게 하루 묵겠다고 돈을 내고 다음날 다시 wwoof를 구하면 되니까 여유를 갖고 오늘은 그냥 편하게 마음먹고 방 안으로 들어왔는데 동양인이 한 명 앉아있었다. 한국인인 줄 알았는데 일본인이었다.
그냥 여행 차 왔다고 한다. 난 wwoof 하러 왔는데 장소 잘못 알아들어서 오늘 일단 숙박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그 일본인과 만난 것도 인연인데 거실로 가서 맥주나 한잔 하자고 나왔다.
거실에는 호주 여성분이 티브이를 보며 맥주를 마시길래 "같이 마실래?"라고 말하니까 흔쾌히 허락했다.
각자 왜 왔는지 말했고 내 말을 들은 여성이 자기 차 있으니까 타라고 했다.
이미 host는 안된다고 했고 무엇보다 "넌 술 마셨는데 운전하면 안 돼"라고 말하니까 여긴 시골이라 괜찮다고 한다. 큰일 날 사람이네.
그렇게 조촐하게 백패커에서 3명이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버렸다.
어차피 여행인데 여러 가지 변수는 언제나 생길 수 있다. 이 정도 변수야 뭐 시드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