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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28: I have a plan!

새로운 곳은 이제 설레이고 즐겁더라!

by 찰리한

또 용어가 나와서 설명을 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아으 왜 이렇게 용어는 길고 어려운 건지!


WWOOF: World Wide Opertunities on Organic Farm의 약자이다. 엄청 길지만 아주 간단하다. WWOOF를 신청한 집주인에게 WWOOF를 신청한 하숙인이 숙식을 무료 또는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제공받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 5시간 ~ 8시간 정도의 일을 하면 된다. 일은 허드렛일부터 농장으로 들어가면 소, 양 등의 먹이주기까지 할 수 있다. 우프 사이트에서 회원 가입하고 회원번호 받고 책을 사면 된다. 책은 약 40~50달러 사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걸 지불해야 뭐 인증받을 수 있고 하니 책을 빌려 쓰는 건 안되며, 매년 갱신된다.

혹시 만약 워홀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난 WWOOF를 완전 강력 추천한다. 물론 집주인을 잘 만나야 하는 건 있지만 이것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며, 호주 사람들이 냉정 할 땐 정말 냉정하지만 정은 진짜 눈물 날 정도로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WWOOF에서 일하면 역시 세컨드 비자 취득이 가능하다.


CVA는 Conservation Volunteers australia의 약자이다.(약자가 죄다 길다)

호주의 환경보호활동에 대한 자원봉사로 멸종위기 종 보호나 공원 및 보호구역을 관리, 보존하는 활동이다.

이건 대학생들이 하면 좋은데 해외 봉사활동에 대한 인증서도 나와서 외국계 기업이나 비영리단체에 취업하기 전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요즘 외국계 기업이 이걸 보는지는 잘 모르겠음)



고기공장에서 열심히 일한 지 7개월이 넘어간다. 맡은 일에 열심히 일하고 역시나 토요일에는 영어 잘 알려주는 할아버지와 함께 호주를 배우고 주일에는 작은 교회를 섬기고 때때로 애들레이드 시내로 나가서 다시 여유 있는 삶과 그들의 문화를 배웠다.

모아놓은 돈도 나름 알차게 사용했다. 가족들에게 다시 영양제를 대량으로 한번 보내고, 섬겼던 교회에 헌금을 좀 더 많이 했고 뷔페에 들어가 식사도 맛있게 했다. 요즘 한국에 혼밥족이 늘어나고 그를 위한 좌석이 배치되었지만 10년 전 호주에는 그런 좌석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내가 혼자 들어온다 한들 전혀 눈치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아주 맘 편한 게 뷔페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때때로 와인도 한잔하면서 맛을 즐기다 오면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펍을 혼자 들어가서 술을 마셔도 누구 하나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오히려 가끔 그 AFL 경기 열리면 하나가 되어버린다는. 참고로 S.A는 노란색의 초록색 유니폼이라 그에 맞게 코디만 한다면 또 얼큰하게 취한 동무들과 어깨동무하면서 S.A Forever 만 외치면 자동으로 친구가 된다.(이유 있는 호주 7 참조)

그러다 밤이 늦으면 머레이 브리지로 가는 버스가 끊긴다.(저녁 8시 정도면 끊긴다. 야간 버스, 새벽 버스 이런 거 따위는 없다) 그럼 그냥 백패커 들어가서 뒤늦게 흥에 취한 청년들과 함께 앉아만 있으면 또 얼큰하게 취해가면서 흥이 오르면 어딜 가나 하나씩 있는 기타를 맨 청년이 노래 부르면 따라 부르면 된다. 제발 hey jude는 그만 불렀으면 한다. 얼큰하게 취한 녀석들이 이거 30분 동안 나나나 나나나나 hey jude를 하다 보니 음정이고 박자고 모두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처음으로 beatles가 세상에서 그렇게 미운 날도 없었다!


이곳 고기공장의 생활은 이제 나에게 고향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가끔 자전거 바퀴 펑크 나서 걸어가면 차로 이동하다가 "hey pucking charlie get in"하고 태워주는 친한 동료들, 언제나 환영해주는 교회 교인들, 토요일마다 호주 소개해주는 할아버지(알고 보니 전쟁 참전용사). 이들만으로 내 평일과 주말의 삶은 충분히 풍족했다. 하지만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은 매우 좋지만 이게 가끔 당연시되는 것들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당연시되는 것들이 나를 나태하게 만들기도 했다.

왠지 이제는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30살이 되기 전에는 한국에 돌아가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약간의 압박감도 있었다. 그래서 워홀 생활을 6월까지 한 다음 7월은 1달간 호주를 여행하기로 계획했다.

호주 올 때 목표만 세웠지 어디로 어떻게 할지 세우지도 않았던 '계획' 이란 걸 세웠다. 1달을 알차게 여행할 생각에 이제는 두려움 보단 들떠있었고 매우 설레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호주 올 때와는 아주 달라진 내 모습을 보면서 어느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나만 아는 '성장했구나'를 느꼈다.


우선 전쟁 참전용사 할아버지에게 먼저 알렸다. 내 계획을 말해줬더니 WWOOF 해보면 어떻겠냐고 추천했고 얼른 그 책을 샀다. 내가 경험하고 싶은 건 호주의 문화를 느끼고 싶다고 했더니 Kangaroo Island라는 곳을 추천해줬다.

이젠 좀 더 밀착하여 그들과 함께 생활해보고 싶었는데 딱 좋은걸 추천받았다. 그렇게 1달간의 여행 중 2주는 결정됐다. 남은 2주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내가 스크랩했던 호주의 중심 uluru라 불리는 ayer's rock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근데 그냥 가자니 뭔가 의미 있게 하고 싶어서 CVA라는 봉사활동을 알아봤다. uluru 주변에 풀과 나무를 심는 봉사활동이 2주간 신청을 받고 있어서 얼른 신청을 했다.

다른 한국인 동생에게 6월까지 일하고 7월부터는 난 1달간 여행을 떠난다고 얘기했더니 그 동생이 듣고는 자기도 CVA를 신청하겠다고 먼저 신청했다. 이 동생은 5월까지 일하고 호주를 떠나려고 계획 중이었기에 내 계획을 듣고는 의미 있어 보인다며 신청했더랬다.


그리고 먼저 가서 2주간 정말 고생고생 생 고생을 하고 나한테 전화를 했다.

"형 여기 절대 오지 마. 형이 생각하는 그런 봉사활동 아니야. 그냥 막노동이야. 뭐 글로벌 파티 꿈도 못 꿔. 8시간 봉사도 아니야. 눈떠서 나무 심고 눈 감기 전까지 나무 심다가 끝나"


그래서 난 얼른 2주간의 그 활동을 취소했다. 그 동생에게는 미안했지만 여하튼 고마웠다. 그럼 일정을 변경해서 3주간 WWOOF를 하고 마지막 1주는 uluru 자유여행을 하기로 변경했다.


WWOOF 체험할 곳을 찾아봤다. 내 눈에 들어온 곳은 바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동물원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 이름의 park였는데 사자나 호랑이 같은 동물이 아닌 앵무새, 코알라, 캥거루 등 소규모 동물원에서 일하며 동물들 먹이주기, 관광객 안내하기 등이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라 하는 정말 커다란 비단구렁이와 보기 힘든 보아뱀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어서 당장 전화를 했다.

"Hi I'm Charlie han. I waana work your place. can I?"

"Oh hi charlie. when do you want to work?"

"2nd ~ 23th July. 3 weeks."

"wait. Ok. that is great. we need more wwoofer. I think it is very good choice"


같은 방에 다른 새로운 한국인 동생이 왔고 아침에 내가 전화 걸어 영어를 하는 걸 보고는 물어봤다.

"형! 영어 할 줄 알아요? 말하는 게 다 들려요?"

"아니! 다 안 들려! 그래도 그냥 얘기하면 알아서들 해석하고 잘 얘기해줘"


못 알아들으면 친절하게 얘기해주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영어 꼭 쓰라고 말했고, 내 호주 생활을 얘기해주면서 목표를 확실하게 정하라고 조언해줬다. 그리고 영어는 들려서 알아듣고 완전 마스터됐다고 생각할 때 쓰는 게 아니라 단어를 뭐라도 내뱉어야 되니까 여하튼 무조건 뭐라도 말하라고 했다.


uluru로 가기 위한 교통편을 알아봤다. 비행기로 가면 편도 350~500달러였다. 하지만 호주의 장거리 고속버스인 greyhound를 이용할 경우 190달러에 편도로 가능했다. 무려 19시간을 가야 한다는 게 함정이지만

'한번 체험해보는 건데 어때'하면서 왕복으로 결제를 해버렸다. 이건 정말 최대의 실수였다. 너무 지루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했다. 슈퍼바이저 kim에게 6월까지 일한다고 알렸다. kim은 3개월 더 남았는데 이유를 물었고 이제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kim 역시 좋은 추억을 남기라면서 HR에 전달했고 현장 매니저 와인과 데런에게 또 말했다.

와인은 연신 pucking charlie라고 말하던 것을 멈추고는 그날은 진지하게 내가 그만두는 이유를 들어줬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남은 기간 잘하자고 하면서 역시나 "pucking back to work" 라며 어깨를 툭 쳐줬고 데런은 엄지 척을 올리면서 좋은 결정을 했다며 칭찬을 해줬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마지막으로 나만 아쉬운 작별인사와 함께 그만두는 날짜를 알렸다.

함께한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다들 처음에는 크게 웃기보단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는 좋은 추억을 쌓으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나 만남은 즐겁고 낯설지만 헤어짐은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난 한국의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했다. 더 열심히 도와주고 더 열심히 움직이면서 대한민국은 부지런하며 책임감이 강함과 동시에 정이 많은 나라라는 것을 끝까지 알렸다.


익숙함을 떠나는 건 어찌 보면 꼭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호주는 나에게 낯선 땅이었으니 다른 낯선 곳에 간다 한들 이제는 즐거운 모험만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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