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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7: AFL과 찐한 만남!

이게 뭐 재밌다고 그렇게?? 어?? 재밌네 이거!

by 찰리한

RSL클럽을 밥먹듯이 드나들었다. 이젠 정문을 지키는 드웨인 존슨 같은 가드들도 내 이름을 외울 정도였다.

내 영어 이름은 charlie 였다. 왜 찰리라고 지었냐 물어본다.

각 국을 대표하는 그러니까 정말 흔히 이름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철수 영희 라면 외쿡은 찰스, 찰리 등이 있었다. 그들이 제일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한다면 좀 더 친근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찰리'라고 지었다. 그리고 charlie brown이라는 만화를 나름 좋아했기도 했다.


가드들은 이제 카드 없이도 "hi charlie" 하고 그냥 들여보내 준다.

여느 때처럼 화, 목요일에는 포커를 한다. 계속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포커 페턴이 조금씩 보였다. 처음 포커할 때 나도 모르게 따라 올인했던, 그 허세 부리며 또 올인하고 첫판에 씩씩 거리며 나가버리는 젊은 청년부터 눈에 보라색 아이쉐도우를 한 남자는 언제나 "it's my money"를 외치며 끝까지 신중하게 패를 선택한다.

포커 치러 온 건지 사람들과의 소통을 하러 온 건지 언제나 테이블을 유쾌하게 만드는 금발의 미녀는 항상 대화하다 자기 차례를 놓쳐서 포커 덕후 샌드위치 할아버지한테 연신 지적질받는다.

나는 꾸준하게 포커를 해서 그런지 한 번은 마지막 테이블에 8명이 최종 선발되어 결승을 겨루는 자리까지 가봤다. 비록 5등이라 상금은 받지 못했지만 포커 실력자라는 거짓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의외로 포커에서는 대화에 심리전이 들어간다. 하지만 난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 나머지 그 심리전에 낄 수 조차 없었다. 그러니 쟤가 도대체 무슨 패를 갖고 있는지 읽히지 않으니 포커 고수들은 세상에서 제2의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하는 게 꽤나 어렵다고 1등 하신 분이 귀띔해줬다)


화, 목 이외에는 RSL클럽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영어를 배웠다. 그중 또 다른 좋은 분을 만났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 와서 정착해 살다 이제는 연금 받고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신다고 했다. 호주는 주 단위로 페이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연금은 주에 500달러 정도 들어온다는 TMI까지.


나는 그분과 쉽게 친해졌다. 자기 손자가 딱 내 나이쯤 된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안 보이는데 나이가 많으시네요 라고 하니 나보고 몇 살이냐고 물어봤다.

"28살"


할머니가 잠시 생각하더니

"너 생각보다 나이 많네"


아마도 할머니분들은 동양사람들이 좀 어려 보이는 것 같았다. 그냥 다 20대 초반 또는 10대 후반으로 본다.

(아니면 내가 동안으로 보인다는 나만의 착각)

그리고 할머니한테 난 영어를 배우러 호주 왔다고 하니까 갑자기 여기저기 할아버지들한테 말했다.

"여기 찰리가 영어배우겠다고 호주 왔데"


타잔이 동물들을 부르면 오는 것처럼 할아버지 한 분 한 분이 자리에 앉았다. 다들 연금을 받고 RSL클럽에서 하루하루 신나게 보내는, 약간 외국의 노인당 같은 이곳에서 언제나처럼 모여 지내는 그런 분들의 모임에 내가 초대되었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라 약간 발음이 어려웠다. 그래도 뭐 소통하거나 리액션은 중요하니까 안 들려도 크게 크게 반응하고 물개 박수를 연신 쳐댔다.


당시 5월쯤 이였다. 이때면 호주에서 최고의 인기 스포츠라 할 수 있는 AFL(Austrailian football league) 경기가 열린다. 호주는 축구도, 야구도 눈 씻고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그저 테니스와 크리켓만 하는 재미없는 동네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AFL에 열광하고 있었다.

NFL 같은 경기가 있는데 이것보다 AFL이 앞도적 인기가 높은 것 같다. 경기를 보는데 룰은 대충 이해가 안 되지만 그들의 달리기와 몸싸움 등을 보니 의외로 흥미진진했다.

RSL클럽에서는 AFL 경기가 시작될 때마다 커다란 전광판과 여기저기 티브이에서 중계해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경기에 완전히 몰입하셨다. 그리고 또 각 주마다 팀의 색깔이 있었다.

Queensland는 자주색, 시드니가 속해있는 NSW는 파란색이다. 그리고 이 둘은 거의 한일전 같은 앙숙이라고 한다.

때마침 퀸즐랜드와 뉴사우스 웨일스(NSW)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한 손에는 맥주, 한 손에는 미트파이를 들고 소리치는데 내가 들리는 단어는 딱 하나 "take him down" 이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갖고 있는 옷들 중에 파란색과 검은색 조합의 긴팔을 입고 왔었는데 퀸즐랜드는 자주색, 뉴사우스 웨일스는.... 파.. 파란색... 난... 파란색... 옷.


할아버지들이 급 흥분을 하신다.

"charile what are you doing?"

흔히 의역하면 너 뭐하는 짓이야?


아니 내가 뭐 알았나?? 근데 다행히 내가 갖고 다니던 후드 집업이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그런지 자주색이었다. 나는 얼른 그걸 입고는 생각나는 아무 단어나 외쳤다.

"Queensland forever"


그러자 술 취해 흥분한 할아버지들이 일제히 맥주를 들고

"charile is Queensland"

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도대체.


그렇게 신나게 알지도 못하는 AFL을 보면서 Take him down, kick his ass를 외치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호주 국가를 부르면서 우린 하나가 되었다.


숙소에 들어가 기절했다. 할아버지들이 무슨 힘이 그렇게 좋은지 연신 나를 들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얘가 찰리야. 얘는 퀸즐랜드야"를 그렇게 소개해주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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