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유 있는 호주 8: 인종차별은 정말 별로였다!

어딜 가든 있겠지만 그리 유쾌한 추억은 아니었다.

by 찰리한

호주의 밤거리는?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았다. 생각보단!

어학원 기간이 끝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난 일을 구해야 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니까 원칙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한 고용주 밑에서 최대 6개월간!


학원의 숙소는 주당 거의 300달러 정도였다. 그래서 2달간 숙소비용만 거의 200만 원이 넘게 들어갔다. 더 이상은 그런 호화스러운 아파트보다는 좀 더 저렴한 집을 찾아야 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southport 지역의 셰어하우스 구하는 곳을 찾아 여기저기 알아보다 많이 저렴한 집을 찾았고 거기로 짐을 다 옮기고 나니 RSL클럽과 2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친해진 동생들과 함께 RSL클럽에 가서 놀다가 10시쯤 되어 PUB으로 향했다. 마저 못한 이야기를 맥주 한잔하면서 또 그렇게 떠들다 12시쯤 되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 무리 중에는 커플이 있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풋풋한 커플이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서 길을 걷는데 저 멀리 딱 봐도 10대, 철없는 녀석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우린 5명이고 거기는 5명이었다. 우린 남자 2명에 여자 3명. 거긴 남자 2명에 여자 3명. 하필이면 같았다. 딱 봐도 ‘mirror 전’ 이 예상되었다.

(fps 게임에서 같은 상대방과 우리가 같은 캐릭터를 선택하면 ‘미러 전'이라고 부른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걸어가는데 글쎄 그쪽에 있는 여자애가 다짜고짜 우리 쪽 여자애한테 말했다.

"Am I bXXch? Am I bXXch?"

(표현 그대로 쓰면 브런치 작가를 내려놔야 해서 XX를 넣었다.)


우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무시하며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거기에 있던 키가 180 정도 되는 남자애가 나한테 오더니 밀치는 것이다. 내 키는 164라 딱 덤비기 좋은 사이즈였다.

(난 고등학교 때 킥복싱을 배우고 대회에 나갔었다. 2회전에서 탈락했지만 그때의 자세와 폼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싸울 수 없었다. 난 싸우는 즉시 바로 추방당한다.(워홀러들이 싸우면 추방당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싸울 수 없었고, 밀면 그냥 밀치는 대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호주 여자애가 갑자기 우리 쪽 커플의 여자애 허벅지에 로우킥을 날렸고, 우리 쪽 여자애는 "아" 소리를 냈다.

눈이 돌아갈 데로 돌아간 우리 커플의 남자애(영어 이름은 파비)가 갑자기 나를 밀치는 호주애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이 동생도 키가 180이 넘었기에 충분히 주먹을 날리기 좋은 포지션이었다.


난 얼른 말려야 했다. 그 동생은 학생비자라 추방당해도 뭐라도 해서 오겠지만 나는 이제 막 2달 지난, 이제 호주에 재미 좀 붙였기 때문에 더욱 말려야 했다.


"파비야! 하지 마 그만해!"

하면서 얼른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근데 아뿔싸! 둘의 키가 비슷한 나머지 정신 차리고 보니 호주 녀석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파비는 신들린 듯이 그 녀석의 면상에 주먹세례를 퍼부었다. 호주 녀석은 꼼짝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 무방비로 파비의 주먹이 내 머리 위를 지나 녀석의 얼굴로 직행한 것이다.


갑자기 그쪽 여자애 2명이 미안하다면서 우리를 만류했다. 그때 파비는 정신이 좀 돌아왔었고 난 그들에게 경고했다.


파비의 손에는 피가 철철 흘렀다.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형이 그 애 때리라고 잡아준 줄 알고 신나게 때렸어"


“야... 이... 그게 아냐”

하여튼 도망가야 했다. 분명 저들은 패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얼른 파비와 그 여자 친구는 다른 쪽 방향으로 걸어가게 했고 나머지는 반대방향으로 돌아가서 각자의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나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호주가 미워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이었구나.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웠다. 누군가 나한테 돌을 던지지 않을까? 잠재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RSL클럽에서 영어를 사용해야 했기에 나는 길을 나섰다. 이번엔 좀 밝은 대낮에 나갔다.

한참 길을 가고 있는데 차도 건너편에 있던 호주 청년 2명이 소리를 질렀다.

"Fight Fight"


갑자기 전날의 상황이 생각났다.

‘망했다. 그들인가? 아니면 인종차별주의자 인가?’

그렇게 무시하면서 계속 갈길을 가는데 또 그들이 외친다.

"Fight do you Fight"


당시 도로는 1차 편도선이었고 차들만 안 지나가면 건너올 기세였다. 하필 앞에 횡단보도가 있었고 누군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맞아야 하나? 그냥 맞기엔 너무 맞으면 병원비도 못 건질 텐데. ‘

어쩔 수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먼저 때리고 도망가야겠다.

손자병법 허실 편

1번: 자리 먼저 잡아 적을 기다려라와

3번: 적의 허를 찌를 것


전문용어로는 선빵을 날려야 했었다.


횡단보도 불이 바뀌었다. 그들이 건너온다. 나는 당시 단추 달린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난 셔츠의 윗 단추 두 개를 풀고, 팔목의 단추를 풀면서 말했다.

"You ready?"

하며 복싱 자세를 잡았다.


갑자기 그 2명이 손을 절레절레하면서

"waaaawaa"
하는 것이다.


‘뭐야?? 왜 싸우자며’

그들이 말했다.


"do you have a light? lighter?"

하면서 라이커 켜는 몸짓을 했다.

전날의 인종차별에 좀 충격을 먹었는지 light 그러니까 라이터 있냐는 것을 난 fight라고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긴장한 마음을 다스리고 미안하다고, 라이터는 없다고 하고 갈 길을 걸어갔다.

아니 왜 허고 많은 사람 중에 길 건너 나한테 그런 말을 소리칠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면서 의문투성이 인채 클럽으로 갔다.


RSL클럽에 가서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할머니한테 고자질쟁이처럼 다 일렀다.

할머니는 유심히 듣더니 일부 청소년이나 마약 하는 애들이 asian 한테 좀 그런다고, 그래도 몸 안 다쳐서 다행이라면서 RSL클럽 전용 버스가 있으니 그거 타고 다니라면서 노선까지 알려줬다.

역시... 일부였다. 인종차별을 하는 일부 녀석들 때문에 이렇게 좋은 분들이 계셨다는 걸 잊고 있었다.


가끔 길가다 차에서 창문을 내린 인종차별자들이 물풍선 던지면서 “fxxking aisa”를 외치고 줄행랑을 친다. 그 정도는 뭐 가볍게 넘어간다. 그래도 워홀 기간 동안 딱 2번밖에 없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