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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9: 타일! 도즈저언!

너무 힘든 거 아냐?

by 찰리한

워홀러들에게 있어 제2 외국인 노동자의 신분이 되는 '직업'을 얻을 때 알아 두어야 할 상식 아닌 상식

cash job과 tax job이다.


cash job은 엄밀히 불법이기는 하지만 고용주가 고용 신고를 하지 않고 고용인에게 세금이 붙지 않는 현찰을 주는 것이며 흔히 한국사람이나 아시아계 사람들, 특히 중국인들이 고용주이면 대부분 케쉬 잡이다. 당시 호주의 시급은 17달러 이상이지만 이들은 높은 임금을 주지 않으려 고용신고를 하지 않고 현금으로 준다. 시급은 8~10달러 사이이다. 은행으로 입금해도 정부에서 눈치챌 수 있기에 바로바로 현찰박치기 인 샘이다.

고용주에게는 저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고 고용인에게는 그래도 쉽게 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임을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행해진다. 일하다 다치면 큰일이다. 어떠한 보장도 받을 수 없다.


tax job은 고용주가 세금신고도 하고 시급 17달러를 지불하면서 고용인을 고용하는 것이다. 합법적이긴 하나 영어를 못하면 거의 구하기 힘들다. 그리고 서비스직이라면 아시아계 사람들은 고용하길 꺼려한다. 약간의 인종차별일 수 있지만 그들도 손님들을 생각하면 자국민을 고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간혹 고용주가 케쉬 잡 소문을 듣고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적당한 시급 13~4달러를 주고 고용하기도 한다. 이것만 일해도 일을 할만하다.



이제는 한국에서 준비한 돈이 거의 떨어질 시기였다. 부모님께 원조를 구하기 전에 우선은 일을 구해야 했다. 골드코스트는 휴양지라서 음식점이 많다. southport는 휴양지에서 조금은 떨어진 곳이라 surfersparadise로 가서 일을 구해야 했다. 거기는 정말 많은 일자리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그쪽으로 이동한 후 영어 이력서(resume으로 그냥 쉽게 레줌 이라고 부른다)를 한 장 가득 써서 출력한 후 상점에 무작정 들어가 하나씩 돌렸다. 마치 신문 돌리듯이 그냥 들어갔다.

물론 기업이나 전문직으로 일하려면 그에 맞는 이력과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서비스직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돌리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난 번번이 실패했다. 200장 정도 뽑아서 상점마다 돌렸지만 여긴 휴양지였다. 아쉽게도 휴양지에선 키 작고 못생긴 남자 동양인보다는 여자 동양인 또는 키 크고 예쁜 여성이 훨씬 더 인기가 많았다.


부모님께 원조를 요청했다. 그래도 숙소비는 주마다 내야 했기 때문에 한 달치 숙소비와 생활비를 받은 후 다시 기운을 차리고 레줌을 돌렸다. 2주간 그렇게 많이 돌렸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고 점점 자신감은 떨어져 갔다.

한 번은 저 멀리 김치공장이 있다고 1시간 반은 족히 걸어갔었다. 그리고 한국인 사장님을 만났는데 아쉽게도 사람은 구하지 않지만 일자리가 나면 연락 주겠다며 번호를 받으셨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김치공장 사장님이 전화해서 내가 머무르는 곳을 알아보곤 다른 사장님의 번호를 알려주셨다.

그 사장님은 Dr.kim이라는 타일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그렇게 Dr.kim에게 전화를 하고 안 그래도 타일 데모도(보조자)를 찾고 있었는데 당장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타일 일을 하기 위해선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바로 안전화를 사야 했다. 거대한 호텔 공사현장을 들어가기 위해 안전장비를 하지 않으면 절대 안 들여보내 준다. 애원하고 떼쓴다 한들 소용없다.

안전화도 비싸다. 한 켤레에 100달러(대략 10만 원) 정도 했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 있으니 사야 했고 다음날 새벽 5시에 누군가가 차를 몰고 집 앞으로 왔다.

"찰리 한 인가요?"

"네 접니다."

"타세요!"


정말 쿨하게 생긴 한국인이었다. 알고 보니 한 살 동생이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또 가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이번엔 연륜 좀 있어 보이는 건방진 사람이 나왔다.

"야.. 왜 이렇게 늦게 와? 어? 근데 얜 누구야? 너 타일 데모도냐?"


'아니 언제부터 우리가 봤다고 다짜고짜 반말이야!'

하지만 딱 봐도 나보다 나이는 10살 많아 보여서 그냥 "네" 하고 대답했다.

까칠하고 성격도 딱 이상할 것 같은 그 사람이 시크하게 빵을 건네준다.

"야! 이거 먹어. 오늘 첫날이지? 힘 많이 써야 하니까 든든히 먹어!"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잘됐다 하고 넙죽 받아먹었다. 의외로 '인간미가 넘치네 이 사람' 하고 공사장으로 갔다.

출입증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고 바로 출입증이 나왔다. 안전화 착용 유무와 헬멧 등 안전구를 확인하고 타일 기술자들과 타일 데모도들이 모였다. 저 멀리서 Dr.kim 사장님이 오셔서 한마디 했다.

"자. 우리 이제 뒤돌아 볼 수 없어. 잘해야 해! 무조건 잘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일하다 알게 되었다. 수주받았던 전에 일들 중 타일을 잘못 깔아서 몇 개 층의 타일을 다시 부쉬고 깔았던 나머지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겨우겨우 이번 수주를 따오게 되었고 이번 수주가 날아간다면 타격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네. 아자! 힘내자!"

누가 봐도 한국인인 것처럼 소리를 있는 힘껏 지르고 공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생각했던 타일은 그냥 우리나라 화장실 정도의 작고 앙증맞은 귀엽고 가벼운 타일을 생각하고 들어갔다.

아주 의기양양 모든 타일을 씹어먹어 줄 기세로 다른 데모도에게

"타일 어딨어? 안 보이는데?"

"거기, 앞에 있잖아"


이건 내가 전에 알던 그 앙증맞은 것이 아닌 타일계의 드웨인 존슨이었다. 가로세로 1m는 돼 보이는 크기의 타일이며 1한묶음에 10장이나 들어있었다. 그것도 수십 박스가 쌓여있었다.

'뭐... 뭐야. 무슨 타일이 이렇게 커??' 그리고 문제는 그게 정말 무거웠다. 힘 빡 주고 드는데 세상에나 들리지 않는 것이다. 앞서 온 데모도 동생은 하나 거뜬히 들고 가는데 나는 들다가 쉬다 들다 쉬다 반복했다.

"야! 타일 빨리 안 갖고 와?"


저 멀리 까칠한 기술자가 소리쳤다. 빨리 안 갖고 오면 기술자들이 놀게 되고, 이 분들은 시급보다 능력제로 돈을 받기에 시간 안에 많이 해야 했었다.

그런데 이놈의 타일은 도대체가 꿈쩍을 안 하다 보니, 그걸 보다 못한 기술자가 달려와서 찰지게 욕을 하고 같이 들고 갔다.

첫날은 어떻게 시간이 간지 모르겠다. 거의 10시간을 일하는데 1시간이 지나고 내 체력은 방전되었다.

타일을 붙이려면 glue 즉 타일용 접착제를 비벼야 한다. 바닥용과 벽면용 접착제는 또 다르단다. 커다란 통에 물을 붓고 접착용 가루를 섞는데 대형 믹서기를 잡고 돌려야 한다. 근데 이 대형 믹서기 역시 힘이 만만치 않아 꽉 잡지 않으면 물통이 쏟아져 접착제를 못쓰게 된다. 난 시작부터 한 3통 정도는 말아먹었다. 또 저 멀리서 시크한 기술자의 찰진 욕들과 함께 4번째에 성공했다. 근데 벽면용 접착제를 성공시켜서 까칠한 기술자에게 인생의 욕 중 군대를 제외한 욕을 먹었었다.


그렇게 그 기술자에게 접착제 갖다 주고 타일 갖다 주고 그러다 점심 먹고 또 반복하다 보니 오후 5시가 되었다.

저 멀리서 선글라스 낀 키가 엄청 큰 또 그놈의 드웨인 존슨 같은 놈이 소리친다.

"go home"


5시면 하던 일 정리하고 퇴근한다. 정말 칼같이 퇴근시킨다. 잔업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연장 다 내려놓고 안 가면 저 드웨인 존슨이 와서 알 수 없는 욕을 지껄이며 마지막에는 "go home"을 외친다.


집에 와서 바로 기절했다. 너무 힘들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보다 내일 일 나가기 싫다 할 정도로 힘든 하루를 보냈다.


타일만 보면 그때 일들이 생각난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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