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졸리는 앤젤리나 졸리 밖에 없는데??
하루 9시간(점심시간 제외). 시급 10달러. 쉬는 날은 일요일 단 하루.
정말 힘든 일주일이었다. RSL클럽을 갈 힘조차 없이 그렇게 일만 했다. 새벽 5시에 어김없이 동생이 태우러 오면 차에 몸을 맡기고 건방진 기술자를 태우고 공사현장으로 가서 타일 옮기고, 접착제 섞어서 전달하고.
일주일 사이에 그래도 좀 적응이 된 건지 타일 한 묶음을 기술자에게 전달하기까지 쉬지 않고 갈 수 있었다. 근데 일주일 일한 비용은 딱 계산해봐도 540달러인데 돈이 없다며 200달러만 주는 것이다.
회사에 모아둔 자금은 지난번 수주의 실패로 거의 없었고 일주일간 타일을 붙인 대가로 받은 돈을 모두에게 1/n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데모도한테는 적게 지불되었다.
일주일간 그렇게 고생했는데 하며 좀 억울했지만 그래도 호주에서 첫 월급이기에 그냥 받았다. 그리고 RSL클럽에 가서 할머니에게 월급 받았다며 흔쾌히 생선 튀김과 맥주를 샀다.
한동안 내가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이 생겼나 했던 할머니는 자기 손자는 이런 적 없는데 찰리는 참 착하다며 맥주만 한잔 받고 나머지는 괜찮다고 하셨다.
타일 데모도 2주 차에 Dr.kim이 나를 불렀다.
"찰리야 너는 다른 데모도 보다 힘이나 체력적으로 좀 부족해 보여. 그래서 다른 쪽 일을 하는 게 좋겠어"
아... 잘리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른 타일 기술자 한분이 나를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타일들과 커팅 기계가 있었다.
"자. 찰리 잘 봐. 이건 졸리를 치는 기계야. 타일 옆을 사선으로 자르는 기술이지. 보여줄 테니까 잘 봐야 해"
졸리를 치는 이유는 벽 모서리에 타일을 붙일 때 모서리 쪽 타일 끝을 45도로 잘라 붙여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참조 사진을 그렇게 찾아봐도 나오지 않네요.)
기계는 엄청 시끄러웠다. 그리고 타일을 커팅할 때 가루가 날리고 돌과 철이 만나 마찰열이 장난 아니기 때문에 커팅기 옆에는 물을 뿌리는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걸 wet saw machine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물이 없으면 반드시 커팅을 중단하라고 했다.
커팅기의 커팅날은 약 45도 정도 비스듬히 뉘어있어서 타일을 잘라버린다. 조심해야 할 것은 커팅기 날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각도가 너무 낮거나 너무 높아도 안되고 빠르게 절단하다간 타일 커팅 표면이 부서지기 때문에 약간은 집중과 기술을 요하는 것이다. 한번 세팅해두면 타일만 교체해서 빠르게 자르면 좋으련만 이놈의 기계는 연식이 오래된 건지 아니면 손맛을 느끼게 하려는 건지 타일 한 장 바꿀 때마다 세팅을 다르게 해야 한다.
그 기술자분은 한번 딱 시범을 보이더니 어렵지 않다고 하고 날 버리고 가버리셨다.
'뭐.. 뭐야? 이렇게 대충 알려주고 가? 이거 안중요한 거야?'
하긴 중요한 거였으면 나한테 맡겼을까 하고 기계를 잡았다. 단순한 방법인데 나한테는 처음 운전대를 잡은 마냥 땀이 났다. 귀마개를 해야 하는데 깜빡 잊고 바로 기계 켰다가 두 귀를 부여잡았다. 호스에서 물이 나오지 않은 줄도 모르고 돌렸다가 불꽃을 보고는 기겁했다. 물을 담는 용기에 full이라 눈금 쳐진 부분 이상으로 물을 붓고 보안경도 끼고 타일을 자르는데 물을 너무 넣은 나머지 타일 절단 시 날리는 먼지를 물줄기가 흠뻑 먹고는 바로 보안경에 튀어서 갑자기 시야가 안 보이는 경우도 생겼다.
타일의 끝을 45도로 잘라야 하는데 그냥 타일을 두 동강 내버렸다. 한 장에 내 시급보다도 비싼 그 타일을.
그렇게 10장 정도 박살 내다보니 도저히 안될 것 같았다. 박살난 타일들을 모아서 다시 연습했다. 기계와 혼현 일체가 되어 천천히 자르다 보니 뭔가 약간의 감이 왔다.
타일 새 거를 갖고 와서 한번 다시 잘라봤다. 그리고 겨우 1장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나머지 망친 타일들은 그냥 저 멀리 갖다 버렸다. 기술자분이 오셔서 보더니 한 번에 성공하냐고 칭찬했다. 저 멀리 버려진 타일들은 못 본 채.
그렇게 9시간 동안 타일 졸리 컷만 했다. 이건 시끄러울 뿐 상대적으로 힘도 덜 들고 꽤 할만했다. 다만 기술자들이 졸리 컷팅 상태를 보고 다시 자르라고 하거나 중간중간 부서지는 경우에는 불호령이 떨어지긴 하지만.
여느 날처럼 공사장으로 들어가 나는 졸리 컷팅 장소로 이동하는데 저 멀리 중국인과 호주인이 날 보더니 한국인이냐고 물어본다. 나는 맞다고 하니까 갑자기 말했다.
"사랑해요"
"뭐?"
그들은 날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 이 무슨 또... 아니 아니다. 이들은 분명 그 뜻을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
"Do you know that mean??" 했더니
"good to see you"라고 한다.
"사랑해요 mean's I love you. buddy"
갑자기 그 두 명은 서로의 멱살을 잡았다.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그것도 모르고 서로 맨날 "I love you man" 이랬다고, 공사장에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해요”를 그렇게 외치고 외쳤다고.
어느 한국인이 장난친 것이다. 그걸 몰랐으니 지들은 좋다고 그러고 다녔지.
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you guys look great!"이라고 하자 호주인이 바로 puck를 날렸다.
"아니 저 자식이!"
근데 웃으면서 날리는 걸 보니 '아.. 저건 장난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난 punk가 여기서 크게 심한 욕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그냥 욕을 하는 현장에 노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냥 길가다 돌에 부딪히면 shit 하거나 oh punk 이러고 지나간다.
그냥 우리말로 앗.. 젠장 이라는 정도로 표현되는 것 같은 느낌.
그렇게 나도 웃으면서 두 손으로 punk를 날렸고 그들도 웃으면서 "see you buddy" 하고 건설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난 또 그렇게 열심히 졸리를 치고 또 치고~
아픈 곳은 없다. 아... 귀만 아프다. 아무리 귀마개를 해도 그 기계소리는 너무 크다. 그나저나 그놈의 한국인은 누구인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