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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6: RSL 클럽에서 생긴 일!

뭐야? 우리 싹 다 친구 먹어? 그런 거야?

by 찰리한

RSL클럽은 Returned and Services League의 약자로 쉽게 말하면 전쟁에 참여한 호주 군인들을 위한 복합 놀이공간인 것이다. southport의 RSL클럽은 규모가 꽤 크다. 그리고 이곳에선 매주 화, 목요일에 누구나 참여 가능한 포커 대회가 열린다. 또한 호주의 가장 대표 인기 종목인 AFL(호주 풋볼)을 커다란 티브이로 시청할 수 있었고, 뷔페, 도박기계들이 있어 청년부터 장년층까지 누구다 다 이용하는 그런 곳이다.



어학원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 평소에도 영어를 써야 한다고. 그러려면 어딜 가라 어딜 가라 알려줬는데 그중에 RSL클럽을 얘기해줬다. 그땐 흘려들었는데 동생들이 얘기했으니 가기로 했다. 숙소 바로 맞은편에 그 클럽이 있었다. 클럽에 들어가려는데 드웨인 존슨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체구의 2명이 서있었다.(이들은 '가드'라는 경호원이며, 클럽, PUB 또는 소동이 날법한 매장에 대기하고 있으며 소동이 일어날 경우 바로 끌고 나간다. 그것도 한 손으로 강아지 잡듯이 끌고 나갈 정도로 힘이 좋다.)

요원들이 말했다.

"Card"


다.. 당황했다. 신용카드 보여줘야 하나 하고 은행에서 만들었던 credit card를 내밀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동생들이 그거 말고 여기 입장하려면 카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아... 진작 말하지."


얼른 리셉션에 가서 여권을 내고 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요원들한테 보여주자 세상 편한 얼굴로 즐겁게 즐기고 가라고 했다.

여기저기 겜블 머신들이 즐비해있고, 티브이에서는 여러 가지 스포츠 중계를 하고, 바에서는 맥주를 포함한 다양한 음료가, 식당에는 먹음직스러운 튀김과 스테이크가 있었다.

뭔가 재밌었다. 낯선 문화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포커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 대회는 무료이며, 개인에게 일정량의 칩을 준다. 그럼 대회에 참여하여 마지막까지 남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1등은 무려 100달러, 2등은 50달러, 3등은 30달러의 상금을 준다.


나는 나름 한국에서 동네 포커 좀 안다고 겁도 없이 그냥 입장했다.

자리를 잡고 테이블에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앉았다. 그런 테이블이 약 8~10개 정도 되었다.

근데 첫 번째 문제가 생겼다. 그냥 생각 없이 들어가 앉았는데 앉고 나니까 죄다 외국인들이다. 그리고 난 여기 처음이다. 이들은 언제나처럼 와서 서로를 잘 알지만 난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그들은 날 경계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크게 살갑지도 않았다. 그 순간 바로 포커가 시작되는 종이 울리고 저 멀리서 딜러들이 테이블에 배치되어 처음 시작을 알렸다.

두 번째 문제는 내가 알던 포커 규칙이 아니었다. 내가 알던 포커 규칙은 그냥 동내마다 차이나는 그런 규칙이었고 여긴 정통 포커 규칙대로 하는 것이다. 그냥 하는 거 지켜보고 할걸 이란 후회를 하기엔 이미 너무 와버렸다. 그래서 옆 사람 하는 데로 베팅하고 올인하는 사람 따라갔다 내 칩을 다 잃을 뻔했다.


세 번째 문제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첫판은 딜러가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순서대로 딜러가 된다. 그리고 내가 딜러가 되었다.

몸이 굳어버렸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여기 처음인데???'

그들은 나를 일제히 바라봤다. 손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판을 엎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테이블 무게는 300kg은 거뜬히 넘어 내 힘으로는 엎을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랬다간 저 드웨인 존슨의 손에 이끌려 퇴장당하는 수모를 겪을 뿐이다. 한참을 고민하고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때 옆에 있던 아주 인자하신 할머니 라 생각하기엔 젊고, 청년이라 하기엔 좀 나이 많은 여성분이 갑자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Don't be afraid. It's okay, we all know you're the first. So make it easy"

처음인 거 다 아니까 편하게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시야가 확 하고 틔였다. 그들은 일제히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제히 웃으면서 한번 도전해봐!라는 눈빛으로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왠지 자신감이 생기고 패를 돌렸다. 돌리다가 잘못되면 양 옆의 사람들이 이렇게 하라고 알려줬다.


"Would you like a glass of wine buddy"


"뭐.. 뭐?"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튀어나오면서 그 여성분을 쳐다봤다. 내가 놀란 건 와인보다 버.. 버디?? 친구???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buddy라는 단어를 쓰기엔 나이 차이가 너무 나잖아. 근데 그냥 친구라고??'


여긴 외쿡이다. 그러니까 존댓말은 없다. 물론 뒤에 please를 붙여서 겸손하게 부탁하거나 할 때 사용하지만 원칙적 존댓말의 단어는 없었다.

그냥 서로 버디라고 부르기도, 이름 부르기도 한다.

나는 그 여성분을 lady라고 부르려다가 그냥 편하게 한번 buddy라고 불렀더니 별 상관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이야~ 그래. 너희들은 이제 다 buddy다. hey buddy~


낯선 환경에 닥쳤을 때에 비로소 나에 대해 진실한 모습이 나온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른 그들은 나를 친절하게 받아줬지만 나만 그들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렇구나. 난 경계하려 했지 뭔가를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이제부터라도 쉽게 쉽게 받아들여보자. 그래야 적응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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