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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5:너희들만은 친해질 수 없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될걸 그랬어.

by 찰리한

드디어 대망의 browns 어학원 첫날이 되었다. 그리고 자기소개 시간에 서브웨이에서 50달러짜리 샌드위치를 15달러 주고 샀다고 자랑했다 브라질 녀석이 "원래 15달러인데?"라고 말해서 왕 뻘쭘한 상황을 지나갔다.

다양한 인종들이 우리 반에 있었다. 브라질, 일본, 태국, 프랑스, 독일 국적의 사람들.

그리고 정말 각 국가의 색은 뚜렷했다. 그중 브라질 친구들이 정말 뚜렷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배운 우리의 수업시간은 자세, 복장, 태도를 매우 중시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거나 이해가 안 가면 수업하는 선생님의 진도를 끊고 질문한다. 한국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행동이며 친구들이 눈치를 주거나 야유가 나오겠지만 여긴 호주다. 그리고 돈을 내고 수업을 받는데 이해가 안 가면 당연히 질문해야 하는 곳이다. 수업 자세는 또 거의 부장님 급이다. 바닥에 등이 붙을 정도로 누워있다. 복장은 또 엉망이었다. 민소매는 기본이고 반바지에 슬리퍼, 가끔은 그냥 맨발로 온다. 하지만 여긴 세계 각국에서 오는 어학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했다. 선생님은 어떠한 제제도 없었다. 오히려 선생님이 가장 답답해하는 건 그 브라질 친구가 아닌 바로 아시아계, 특히 일본과 학국 학생들 이였다.

이들은 언제나 "네, 네 알겠습니다"라고 고분고분 따라온다. 질문 있냐고 하면 없다고 한다. 과제는 또 기가 막히게 잘 해온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런 수동적인 태도는 '의욕 없는 사람.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아무 개성도 없고 자기주장도 없는 사람' 이라며 한국, 일본인한테는 제발 좀 질문하라고 했다. 아예 질문시간을 주고 우리한테 물어볼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호주에 온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쯤 이였다. 너무 웃기게도 난 향수병이 꽤나 강했나 보다. 그 짧은 일주일 내내 한국에 가는 꿈을 꿨으니.(정말로 1년 4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한국에 돌아오는 꿈을 꾸지 않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었다.)

그래도 한국인과 멀리했다. 영어 배우러 왔는데 결코 한국인과 만나서 위로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단 2주 만에 난 한국인 동생들과 술파티를 해버려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숙소에 한국인 동생이 다른 한국인 친구들을 불러서 술파티를 열었다.

그들은 이제 1,2달 정도 지내다 보니 슬슬 고향병이 생겼는지 서로 뭉쳐서 하필 내 숙소로 놀러 온 것이다.

그리고 벽이 부서질 정도로 시끄럽게 노는 것이다. 정말 짜증 나서 거실로 나갔다.

"저기요. 좀 조용히 술 마실래요?"


딱 봐도 나보다 어린것들이 남의 숙소에 허락도 없이 쳐들어 와서 술이나 퍼 마시고 있는 한심스러운 모습에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그들도 그런 나를 의식했는지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아니 근데 이것들이 그다음 주에도 또 숙소에 와서 술을 퍼먹는 것이다. 이제는 안 되겠다. 내 돈 내고 내 숙소에 왔는데 지들 집인 마냥 떠들어 대는 그들을 향해 나는 또 출동했다

"저기요~"


그때 그 무리들 중 한 명이 나한테 얘기했다.

"저기.. 같이 술 마실래요?"


뭐지? 그 무리들이 짜증 낼 줄 알았는데 갑자기 웬 술을 권할까.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내가 미쳐 대답할 타이밍을 못 잡자 얼큰하게 취한 그 녀석들이 다짜고짜 날 끌고 술판으로 참여시켰다. 그리고 한잔 하다 보니 긴장이 확 풀려버리고 정말 쉽게 마음이 열려버렸다. 일주일간 내가 뭔 짓을 하고 다녔는지 말하니까 그들 역시 처음 와서 그랬다며 격하게 공감하다 보니 할 말 못 할 말, 내가 왜 호주를 왔는지, 오네 마네 떨렸네 등등.

그 뒤로 둘도 없는 친구들이 되어버렸다. 참 아이러니하게 이 녀석들을 만난 것이 내 호주 인생에 최고의 친구들 이였다. 그리고 이들과 친구가 되어버리자 마자 온갖 정보들이 수두룩하게 떨어졌다. 학원에 누구는 어떻고 프랑스 애는 조심하라고 하고, 선생님은 누가 좋고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한국인답게 나이부터 서열정리에 들어갔다. 역시나 나보다 5살이나 어린 동생들 이였다. 하지만 여긴 해외이기 때문에 우린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나한테 RSL클럽 가자고 했다.

"야! 내가 호주까지 와서도 클럽 가야겠냐??"


하지만 그 동생이 말했다. 형이 생각하는 그 클럽이 아니라고. 포커도 치고 영어도 쓸 수 있다고.

설명을 듣고 나서 무릎을 탁 쳤다. 당장 가자~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몇몇 동생들이 있다. 대부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잘 지내고 있다. 가끔 우린 외친다. 3! 4! 뭉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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