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리한 Feb 01. 2021

프롤로그 : 마음속 다짐!

'왜 이 글을 써야만 하는가'에 대한 동기부여!

동네 앞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홍수를 대비하여 빗물 저장소를 만들고 그 위에는 축구장 반 정도 되는 크기의 공터에 잔디를 심었다. 여름에는 잠자리 잡으러 갔고 겨울에는 따뜻한 볕을 쬐러 갔다. 10살 미만의 아이들까지만 공차기를 허용하기에 가끔 비치볼을 갖고 가서 공차기를 했다. 잔디 주변을 트랙으로 만들어 건강을 위해 자기 관리하는 젊은이부터 노년의 부부까지 열심히 달리며 걷는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관리 소홀로 인해 잔디가 모조리 고사되면서 임시 폐쇄 후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2020년 9월에 완공되기로 했던 공원은 거의 2달간의 장마로 인해 11월 느지막이 완료되어 개방하게 됐다. 잔디밭의 크기는 1/4로 줄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생겼다. 앙상하고 볼품없고 차가워 보이지만 분명 봄이 지나면 아름다운 꽃길이 될 장미묘목들이 심겨 있었다. 한편에는 시원한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기를 희망하면서 기다리는 바닥분수가 설치되었고 트랙 옆에는 숲에서나 보던 운동기구까지 설치되다 보니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길만한 공간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첫째님과 하루 중 가장 따뜻해지는 오후 2시쯤 공원으로 놀러 갔다. 신기한 듯 주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다가 장미 가시밭길로 방향을 틀어 뛰어들어갔다. 그런 아이가 혹시 가시에 다칠까 봐 뒤쫓아갔다. 가시에 손을 뻗는 첫째님을 얼른 붙잡고선 '왜 이런 가시밭을 만들어서 아이들 위험하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문득 떠올랐다. 지금은 날카롭고 차가운 가시밭이지만 여름에는 아름다운 장미꽃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겨울에는 차디찬 가시밭길이 될 테지만 이런 과정이 반복되듯 아이를 양육하는 우리의 삶 또한 반복되고 있었다. 첫째님이 아내의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나날들 중에 행복했던 꽃길 같은 일도, 힘들고 서럽고 슬퍼서 울기도 많이 울었던 가시밭 같은 일도 많았다.

이제 유치원을 졸업하는 첫째님을 위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그 이야기를 한 번은 책으로 내고 싶었는데 절묘하게 브런치를 알게 되었으니 올해에는 이 책 한 권을 내고 싶다는 계획이 생겼다.

제목을 과연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아이가 걷는 그 길이 계절에 따라 꽃길이 되기도, 가시밭이 되기도 하는 반복되는 변화를 생각하며 제목을 지었다.


꽃길이던 가시밭길이던 걸어야 만나지!


하지만 제목의 글자 수가 제한적이다 보니 어떻게든 맞춰서 써봐야 했다. 그래서 조금 수정한 제목이 바로

꽃길과 가시밭길은 걸어야 만난다


누구나 다 꽃길만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에 있어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은 모두 필요하듯 원치 않는 가시밭길 또한 걸어야 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아니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야만 기쁨과 즐거움의 꽃길을 만날 수 있고 동시에 힘들고 슬프고 아픈 가시밭길을 만날 수 있다.

앞으로 기나긴 글을 쓸 것 같다. 목차를 구성하고 각 목차에 어울릴 만한 가제를 정하다 보니 꽤 많았다. 아마도 글을 쓰다가 지칠 때가 있을 것 같다. 그때마다 프롤로그를 보며 초심을 잡고 싶어서 질문을 던진다.

왜 이 글을 써야 하는가? 써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애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는 늘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죽는다면 누가 이 아이를 돌봐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아직 국가에서 장애인에 대한 제도와 책임이 충분치는 않기 때문이다. 둘째님에게 첫째님을 책임지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둘째님 역시 본인의 인생이 있고 자기 인생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데 타인의 삶에 대한 짐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삶과 그 장애인을 키우는 부모의 삶을 더 알리고 싶다. 내 삶의 작은 목소리가, 그리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면 장애도 결국 소수라서 배제되는 것이 아닌 개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 적어도 자녀의 장애를 알고 절망에 빠졌다가 이제 막 현실을 받아들이고 해야 할 일을 찾는 부모에게 국가에서 여러가지 상황에 따른 지원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꿈꾸는 ‘세금 내는 아이’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단지 나만의 푸념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삶을 살아내는 우리 첫째님에게 조금이라도 든든한 부모가 되고 싶고 장애인을 위한 교육과 복지가 잘 준비된 사회가 되게 하고 싶다.


우리 부부는 첫째님의 장애를 임신 초기에 알았고 출산할지 포기할지를 결정할 선택권은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불법이었지만 아예 방법이 없던  아니었다. 우린 출산하자는 결정을 했지만 가끔은 후회를 한다. 아내는 비록 아닐지라도  여전히 가끔씩 후회를 하고 앞으로도 가끔씩 후회는 할 것이다. 내  자체는 불행하지 않지만 힘들 때면 분명 후회를 하고 할 것 같다. 그래서  솔직한 마음들을 글로 쓰고 싶다. 솔직해진다면 후회마저도 하나의 배움이 되지 않을까, 솔직해지면 부족한  글을 읽으면서 마음먹은 생각을  번쯤 다른 방향으로 바꾸지 않을까 라는 조그마한 기대도 해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