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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Feb 22. 2021

드라마 선생님의 연애수업은 꽝이지만!

현실과 먼 괴리감! 하지만 미처 모르던 것 또한 알려줬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고 했다. 나도 나에 대해 일정 부분은 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도 백번 싸워 백번 넘게 진다. 아내는 나에 대해 나보다 잘 모르면서도 나를 잘 이긴다. 난 드라마를 안 본다. 관심이 없거니와 절대 안 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를 살살 꼬드긴다. 1편만 보게 한다면 그다음부터는 티브이 앞에 자동 착석하여 대기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즐겨봤던 시기도 있었다. 주일날 아침 10시에 짝이라는 드라마도 잘 챙겨 봤고 어머니와 함께 본 첫사랑이라는 드라마도 있었다. 모든 남편들의 적이 돼버린 최수종이 나왔고 욘사마도 나왔다. 왜 그리 머리도 똑똑하고 싸움도 잘하던지 중학생이자 사춘기가 왔던 난 그게 참 부러웠다.

드라마에서는 첫눈에 반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상황, 시청자만 아는 엇갈린 운명들을 결국 알아내면서 희비가 계속 교차하며 울고 웃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현명하고 바른말 고운 말보다는 사이다 발언을 날려도 훗날에는 성공하거나 복수를 한다. 건물주보다 좀 못하다던 조물주가 모든 걸 다 줬기에 그들의 능력이 너무나 갖고 싶지만 현실은 조물주가 꼭 몇 개씩 무언가를 빼먹었다.


현실과 다르다는 걸 아주 절실하게 깨달은 건 제대 이후였다. 군대 시절에 선임들에 의해 강제 드라마 시청을 했고 두 개의 드라마가 내게 준 연애의 환상은 정말 최고조였다.

첫 번째는 최지우가 탄 버스를 따라잡기 위해 달리기를 했으며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라며 부메랑을 날리던 권상우의 명대사가 나온 천국의 계단이었다. 부메랑을 보며 그렇게 선임들과 부메랑을 던졌지만 되돌아오지 않고 그저 저 멀리 하나의 별이 돼버렸다. 그때 예감했어야 했다. 우리에겐 사랑 따윈 없다는 것을!


두 번째는 또 하나의 명대사 "애기야 가자!""이안에 너 있다"의 박신양과 이동건이 나온 파리의 여인이었다. 남자만 바글바글한 내무실에서 닭살 맨트가 나오면 욕설이 난무했지만 나에게만큼은 '저거다! 저 멘트가 바로 사랑의 첫걸음이다'라고 생각했고 제대 후 얼른 여자 친구 만들기 계획을 시작했다. 그렇게 어설픈 연애를 하다 100일도 안돼서 헤어져야 했다. 골목길 계단에서 석양을 보며 이별을 통보받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미 자리를 떠났고 난 계속 멍하고 있다 갑자기 권상우가 생각났다. '그래! 그때 끝까지 쫓아가서 최지우의 마음을 돌렸으니 나도 해야지' 하고는 얼른 그녀를 잡으러 뛰어가다 내리막길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집까지 절뚝거리며 가는데 드라마처럼 그녀와 마주쳤고 드라마와 다르게 그녀는 날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지나쳐버렸다. 그날 아픈 다리로 이불 킥을 해야 했다.


20대의 혈기왕성한 시절에는 술을 잘 마셔야 했다. 모든 모임에서 술이 빠지지 않았고 술에 약한 사람은 왠지 무시당하는 분위기였기에 하루에 소주 한잔, 다음날 두 잔 마시며 무식한 방법으로 주량을 늘렸다. 당시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수업보다는 뒤풀이가 좋았다. 평소 마음에 두었던 이성이 참석하는지 확인하고 뒤풀이에 가면 '절대 술에 취하면 안 된다'와 '게임을 지배하는 자, 분위기를 살리는 자'가 되어야 했다. 외모나 키가 다른 남성의 평균에 못 미치기에 나만의 필살기를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버틴다'와 '분위기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그녀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타이타닉, 더 게임 오브 데스 같은 벌칙들은 거의 걸리지 않는 고수가 되었고 '소백산맥'이나 '양대산맥' 같은 폭탄주 제조와 '고진감래주' 제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잘 만들었다. 언제나 재밌는 에피소드를 무장하여 술자리에서 만큼은 주둥이가 환상적으로 나불거렸다.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과 2차 3차로 갈수록 마음에 드는 그녀의 근처로 자리를 이동하며 점점 둘만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주면서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며 더욱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숙취해소제를 술처럼 들이켰다.

그리고 집으로 헤어질 시간에 그녀를 부축이며 택시를 잡았다. 집에 데려다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녀의 집 앞에서 이동건 보다 한참 못한 내 외모를 들고선 그녀에게 말도 안 되는 "이안에 너 있어"라고 말했고 그녀는 바로 '내 안에 이거 있다'를 알려주듯 분수 토를 하셨다. 그날 새벽 집에 와서 침대에 이단옆차기를 했다. 이런 바보 같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받아들인 후 드라마를 절대 보지 않았다. 역시 현실은 현실이고 나는 나였다.



이런 흑역사를 모르는 아내는 재밌는 드라마가 있다며 살살 꼬시기 시작했다. 아내가 추천하는 드라마는 다행히도 연애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닌 당해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거나 역대급 드라마들 이였다. 안 본다고 그렇게 외쳤지만 아내 혼자 티브이를 시청하면서 드라마 전개 상황을 큰 목소리로 설명했다. 안 듣는 척, 못 듣는 척 귀를 기울이다가 어느새 화면 앞에 강아지처럼 앉아서 본 드라마가 바로 천재 작가 김은희 님의 '비밀의 숲' 이였다. 만약 본방을 시청했다면 다음 회차를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사회의 악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마음을 졸이면서 봤다. 생각지 못한 검사의 죽음에 놀랐고 드라마의 핵심 인물인 이창준의 죽음에는 아내와 함께 마치 내 지인이 죽은 것 같은 안타까움과 서러움을 안고 "네가 거기서 왜 죽어!"를 외쳤다. 그러면서 아내의 추천 드라마에 내가 갖고 있던 드라마의 편견이 조금씩 사라져 버렸다.


두 번째는 스토브리그였다. 아내가 나한테 "야구 좋아해?"라고 물어봤고 내가 당신보다 스포츠에 대해 더 빠삭하다며 무사 만루의 뜻을 아냐 모르냐 자랑질을 하다 스토브 리그라는 단어조차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이건 매일 2회씩 시청했다. 한번 더 보려는 나는 리모컨을 들었고 아내는 그 리모컨을 뺏고는 새벽 1시가 넘은 시계를 가리켰다. 진심 분노하며 빨리 리모컨 내놓으라고 하곤 1편 더 보고는 다음날 바로 아내한테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만큼 스토브리그는 정말 재밌고 사이다 발언들이 난무했다.

아내한테 화낸 게 너무 미안해서 드라마 안 본다고 선언을 했건만 김은희 작가의 또 다른 역대급 드라마가 있다며 또 꼬셨다. 그리고 김은희 작가란 말에 내 모든 정신력을 지배하듯 끌려 들어갔다. 그건 바로 그놈의 무전기만 부셔버리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시그널이었다. 하루에 딱 2회만 본다고 아내한테 맹세했지만 조진웅 배우가 사랑하는 여인이 살해되는 편에서 하나 더 보자며 아내를 조르고 졸라서 새벽 3시까지 보고 4시간 뒤에 잠에서 깬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육아 서비스를 아주 엉망진창으로 제공했다. 마지막 회를 보고선 시그널 2가 왜 안 나왔냐며 김은희 작가님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려고 검색을 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내가 또 꼬신다. 요즘 육아 우울증에 걸린 나를 위해 재밌는 드라마가 있다며 제목들을 마구 읊었다. BBC 원작인 라이프 온 마스였다. 아내가 처음에 라이프 온 마스라고 아주 재밌다고 말할 때 제목을 잘 못 듣고선 "부르노 마스는 노래를 무진장 잘하는데 뭔 소리야"라고 기가 막히게 받아쳤고 기가 막힌 아내는 바로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이 드라마는 한국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마치 다른 나라로 여행 갔다 온 것처럼 힐링을 받았다.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아내의 추천목록에는 2개 더 남아있다. 그중 하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었고 그간 드라마의 자극적인 사건과 반전의 반전에 익숙해진 나머지 의사생활 드라마는 스펙터클한 반전과 마음을 쫄깃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녔는데도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예의주시 했다. 반전도 없고, 아주 자극적인 소재 또한 없지만 수술할 때마다 늘 불안하고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기막히거나 스펙터클한 사건과 소제는 없었다. 의사생활 드라마를 다 시청한 후 마음속이 참 따뜻해졌다.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첫째님이 장애판정을 받고 출산부터 지금까지 정기적인 병원 검사, 2달간의 입원생활 등이 눈앞에 필름처럼 지나갔다. 아픈 첫째님 옆에서 간호할 때 간호사님들께 다정하게 대하지 못하고 온갖 신경이 곤두서서 차갑게 말했던 내 모습을 보게 됐다. 드라마에서 봤던 그 차갑게 대답하던 사람들의 모습에 상처 받는 의료종사자들을 보며 아주 마음이 안타까웠고 미안했다. 퇴원할 때는 화내서,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의례 내가 화낸 것에 대한 미안함이지 그들이 고생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아녔다. 그런 모진 말에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무실에서 마음 아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이제야 진심으로 의료종사자들의 저 고생에 대해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이 생각났다.

다음 첫째님의 정기검진 때는 채혈 못해서 바늘로 한번 더 찔러도 화내지도 소리치지도 않고 위로의 말을 건네려 마음을 먹기로 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검진이 미뤄지긴 했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 되려 편하게 생각하고 병원에 가면 꼭 반드시 친절하게 대답하고 말 끝에는 "오늘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련다!


-공장장 찰리한의 드라마를 통해 깨닫은 점!


연애는 드라마와 달랐지만 일상의 감정들은 크게 다르지는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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