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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Feb 18. 2021

소소하지만 찐 능력자!

참 재밌는 능력이로세!

요즘 아내는 일을 열심히 하느라 항상 집에 오면 지쳐있다. 그런 아내가 안쓰럽지만 나 역시 육아에 지쳐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아내를 기쁘게 맞이하지 않는다. 애들 저녁을 겨우 먹인 후 남아있는 모든 체력을 쏟아부어 저녁상을 내어주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아내에 대한 최선의 사랑이었다. 저녁을 같이 먹는데 대뜸 아내가 나한테 물어봤다.

"찰리 한! 만약 순간이동과 안 씻어도 깨끗해지는 능력이 있다면 어떤 걸 선택하고 싶어?"

"그 두 가지? 고작? 아니 시간이동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아?"

두 가지 능력 모두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상상의 나래가 너무 좁아터졌다. 적어도 인간이 갖지 못하는 초월적인 능력치를 바란다면 과거나 미래로 시간 이동을 한다던가, 사람의 마음을 읽던가, 아니면 노스트라다무스 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정도는 돼야 무엇을 선택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텐데 말이다. 안 씻어도 깨끗해지는 게 관연 능력이나 될까 싶어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 두 가지라면 순간이동 선택할래. 그래서 택배와 퀵서비스 회사를 차릴 거야! 완전 대박이지. 국제택배 DHL은 동훈이라는 사람 이니셜이 돼버릴 거야! 아마존? 망하는 거지. 그냥 눈물만 흘려야 해!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2탄이 새로 나오게 되겠지"

대답을 하고 나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쪽으로 능력을 펼치려 했고 곧 그것이 능력의 잣대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아내가 제시한 저 소박한 두 가지 능력은 아이를 양육하면서 일하는 아내에게 가장 필요했던 능력이었다.


아내가 첫째님의 주양육자로 활동할 때 가장 힘들어했던 건 등하교와 재활치료의 이동이었다. 운전을 못하기에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면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첫째님을 부여잡고 조용히 시키다가 목적지에 내리기도 전에 이미 체력과 정신력을 탕진해 버린다. 미취학 장애아이들의 삶은 대부분 비슷하다. 아침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가서 정규수업이 마치자마자 바로 재활치료실로 이동한다. 안 그래도 부족한 장애인 콜택시는 그 피크시간에는 1시간 넘게 대기를 해야 하기에 기다리다 지쳐 담배냄새가 나는 일반 택시를 마지못해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런 아내에게 순간 이동만 있다면 이동하느라 소모하는 체력을 비축하여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가 생긴다.

안 씻어도 깨끗하다면 아침에 좀 더 늦잠을 자도 되고 집에 오더라도 바로 침대로 파고들어 잠을 자도 되는 편리를 위해 생각한 능력이었다. 소박하다고 생각했던 능력은 아이와 일에 대한 걱정과 힘듦이었는데 정작 난 돈을 기준으로 그 능력을 판단했으니 의문의 1패를 한 것 같았다. 아내는 나한테 시간 이동을 하면 뭘 하고 싶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미래의 로또번호 맞추는 거지!"

즉답으로 나왔다. 왜 난 모든 것을 돈으로 생각하고 돈을 바라보고 있을까?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번다면 행복지수가 올라가기는 하지만 그 이상을 번다고 행복지수가 비례하여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던데. 천문학적 돈을 벌어 이승에서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쌓여있어도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우울증에 걸리는 걸 보면 분명 돈으로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겠다만 온통 머릿속 한구석에는 돈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나 역시 아내에게 시간을 되돌린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다.

"첫째님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서 퇴사할 거야. 그리고 첫째님을 아프지 않게 잘 키울 거야."

아내는 첫째님이 심하게 아팠을 때 우리의 잘못 때문인 것 같아 늘 마음속에 그 아픔을 품고 있었다. 그저 그냥 아이가 호흡기가 약해서 걸릴 수 있는 것이고 지금은 끄떡없이 잘 자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아픔을 준 것이 미안한가 보다.

역시 아내는 아내였다. 능력을 돈과 연결하기보단 아이와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찐 능력자였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생각하다 보니 10년 전 히어로즈라는 미드가 떠올랐다. 회사에 막 입사한 신입사원일 때 누나가 히어로즈라는 미드를 소개해줬다. 다양한 능력자들이 나오고 능력자를 죽여서 능력을 뺏는 자도 있었다. 절대 보면 안 되는 첫 편 보고 나서는 4일 동안 새벽 4시까지 보느라 3시간만 자고 눈이 충혈된 채로 출근했을 정도로 너무 재밌어서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 미드에는 시공간을 뛰어드는 일본인 능력자가 나온다. 10년 전 그 당시에도 여러 가지 능력자들 중에 시공간 이동 능력을 부러워했고 미래로 이동하여 로또번호를 확인하겠다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난 자본주의 사회에 철저하게 아주 잘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로또 1등 되면 뭐할지 물어봤다.

“여보! 힘들지? 내가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잔 사 올게!" 라며 큰소리로 한번 외쳐보고 싶다.

여보! 오다가 (로또 1 당첨된) 종이 쪼가리 주웠는데 버리기 아까워서 말이지!  그냥 가져!” 라며 츤데레 처럼 건네주겠다. 그냥 알바나 하며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아이들과 철 따라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싶다.

역시 돈이 많으면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하는 걸 보니 다시 한번 자본주의 사회의 그냥 일개 노예가 분명해졌다.

다만 한 가지 절실한 건 첫째님의 재활치료에 돈을 좀 더 쓰고 싶긴 하다. 24시간 재활치료 선생님을 옆에 붙여서 첫째님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초등학교, 아니 그 이전부터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무진장시키는 부모들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첫째님에게도 재활치료 선생님을 하루 종일 붙여놓고 싶듯 그 부모들도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학원을 보내고 사교육을 시키나 보다. 부모인 내가 직접 해줄 수 없으니까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사교육이고 많은 돈이 들더라도 내 아이를 공부시키나 보다.

그래도 그 결말은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학원만 보낸다면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배운 지식은 내 것이 아닌 그냥 머릿속에 붙여놓고 다니며 돌아서면 낙엽처럼 후드득 떨어질 것이다. 배움의 기쁨보다 들어온 지식들을 오늘도 붙이고 내일도 붙이기만 할 뿐이다. 물론 첫째님의 장애를 위해 재활치료는 지식이라기보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필수적인 치료이다. 필수이긴 한데 재활치료에 모든 걸 맡기고 뒤에서 팔짱 끼면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만 지켜볼 뿐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어려움을 도피하고 싶어 하진 않는가 라는 의심도 해보게 된다.


다시 아내의 소소한 능력들을 생각해봤다. 아내가 바라는 능력은 돈으로 바로 직결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더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고 있던 것이다. 소소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능력들만 바라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 과연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아빠! 그만 놀아줘!"라고 외치는 둘째 놈의 말이 듣고 싶다. "여보! 집이 오늘 깨끗하네!"라는 말도 듣고 싶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지만 웃으면서 나에게 안기는 첫째님을 하루 종일 안아주고 싶다.

아하! 난 지치지 않고 힘이 센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아내 것 보다 더 소소하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싶다.


-공장장 찰리한의 찐 능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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