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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Feb 05. 2021

칭찬보단 물질이 고래를 날뛰게 한다!

라디오 사연에 당첨된 기쁨!

브런치 작가를 시작한 지 이제 3개월 좀 넘었다. 4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그 사이 난 바리스타에서 백수로, 백수이지만 두 아이의 육아를 책임지고 양육하는 잠깐의 주부이자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쓰며 실업급여 타기 위해 고용복지센터에 방문한 취준생이 되었다. 그냥 여러 역할이 부여됐지만 현명한 아내의 남편이다.

주부의 삶으로 잠시 돌아오다 보니 마트에 가면 마트 포인트만 적립했던 과거와 달리 이젠 캐시백 포인트에 목숨을 걸고 있다. 포인트 모아봐야 얼마나 모인다고 굳이 한번 더 터치스크린 앞에서 시간 낭비하느니 빨리 계산하고 집에서 편히 쉬는 게 좋았던 내가 지금은 포인트 하나라도 더 모으려고 케시백 어플을 실행하여 매일 무료 룰렛을 돌린다. 게임을 다운로드하여 목표 레벨까지 순식간에 달성하고 포인트를 받았다. SNS에 공유하는 미션들 모두 1시간 만에 해치웠다. 하지 않았던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아이디를 두 개나 만들어 여기저기 공유했다.

마트에서 어떤 상품이 포인트를 더 많이 주는지 비교하며 저렴하고 많은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체크해가며 돌아다닌다. 동시에 아이들을 카트에 태워서 카트라이더를 하다가 직원한테 가끔 혼난다.

계산대에서 아이들의 칭얼거림에 의해 적립을 못하면 영수증 들고 사후 적립을 꼭 실천했다. 그렇게 모은 포인트가 2달 정도면 어느덧 1만 점을 넘겼고 아내가 한창 빠져있는 cyber love 웹소설 결제를 위한 비용으로 지불됐다.

실직자이며 사랑마저 없어진 자에 대한 로맨스의 보상을 웹소설을 통해 충족하는 아내에게 그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웹소설이었기에 난 열심히 포인트란 포인트를 모았다. 어플을 몇 개씩 더 설치해서라도 차근차근 포인트를 모아 아내에게 조공을 올렸다. 아내의 무한 사랑에 대한 나의 보상은 '사랑해'라는 말로 할 수 있는 쉬운 것보다 모으기도 어려운 포인트를 주는 게 더 쉬운 정말 독특한 남편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아내는 요즘 12시 넘어서까지 사이버 러브 중 이시다.



브런치 작가로 내 삶에 대한 하소연을 올려도 무언가 물질적으로 보상되는 건 따로 없다. 기가 막히게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간간히 출판을 하고 원고료를 받는다는 글을 볼 때마다 부러웠지만 그들의 글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내 글은 아직은 그 수준이 아니기에 그런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열심히 쓰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게 됐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아내가 하고 있는 '글 맛집'이라는 글쓰기 동아리에서 이런저런 글쓰기 연습을 하는데 거기 강사님이 라디오에 사연을 써서 내라고 아내한테 적극 권유했다. 하지만 아내는 글쓰기에서 만큼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기에 전혀 실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나름 브런치 작가인데 내가 써봐야지 하고는 쓰게 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를 듣는 버릇이 있었고 라디오를 좋아하는 편이라 내가 보낼만한 사연들이 있는지 찾아봤고 생전 듣지도 않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작성했다. 강사님은 매우 슬프고 매우 안타까운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사연을 쓰라고 했지만 아직 그런 글들을 썼다간 감정 컨트롤의 미숙으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글들이 탄생할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내가 쓴 글 중에서 조회수가 꽤 높았던 단 하나의 글을 선택했다.

라디오에 사연을 작성했다. 그리곤 평소 내가 듣던 시간의 프로그램이 아닌 사연을 보낸 프로그램을 듣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들었지만 역시나 한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결국 그냥 습관처럼 내가 듣던 라디오를 들으면서 '사연은 역시 글쟁이들이 쓰는 게 더 재밌고 경품 탈 확률도 좋아' 라며 큰 기대 없이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아침, 둘째 놈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아내를 장애부모연대에 출근시키고 첫째님과 함께 대형마트로 향했다. 신호대기 중에 문자가 하나 왔다. 문자의 첫 문장이 "000 라디오입니다. 사연 당첨 축하드립니다 찰리 한 씨"라고 적혀있었다. 포인트 때문에 개인정보를 너무 팔아서 스팸문자가 온 줄 알았다. 웬만하면 운전 중에는 휴대폰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신호대기가 길어져서 문자를 삭제하려고 자세히 보니 스팸이 아니었다.

잠시 잊고 있던 라디오 사연이 작성된 지 3일 만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난 그 부분만 못 들었던 것이었다.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아내한테 캡처해서 보냈다. 첫째님과 대형마트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라디오 사연과 경품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더 놀고 싶은 첫째님을 그냥 끌어내려 집으로 도착한 후 제대로 확인해봤다. 방송은 이미 12월 10일에 나왔고 다시 듣기가 있어서 그날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긴장감과 함께 "00대로 찰리 한 씨의 사연입니다"라는 사연의 시작이 휴대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면서 긴장되기 시작했다. 두 진행자가 글을 읽으면서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포인트대로 너무 잘 읽어나가셨다.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연을 다 읽은 두 진행자는 박수와 함께 재밌던 부분들을 다시 읽어주면서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고 힘내시라는 멘트를 잊지 않고 하셨다. 그리고 난 자화자찬의 세계에 빠졌다. "내 사연은 역시 글보단 말로 하는 게 재밌구나. 나도 글 좀 쓸 줄 아네" 라며 혼자만의 끝없이 올라가는 자존감과 자신감, 허영심으로 인해 아내한테 얼른 URL을 찾아 보냈다. 사무실에서 크게 틀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들으라고 자랑질을 해댔다.

사연이 읽힌 것보다 더 기대되는 건 역시나 경품이었다. 과연 무엇일까 하고 검색해보니 2가지였다. 하나는 김장 매트였고 또 하나는 헤어드라이기였다. 약간 실망하려던 찰나에 헤어드라이기를 검색해보니 상당히 좋은 거였다. 하지만 자세한 모델명이 없었다. 그냥 이 브랜드의 가장 최저가 모델을 보내주지 않을까 하는 또 다른 실망감이 왔다. 부족한 글을 써서 경품을 받는 것도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라 그런지 그새 감사한 마음들이 싹 사라져 버렸다. 경품 받을 주소를 확인하고 큰 기대 없이 시간이 흘렀다.

2021년 1월 중순쯤에 상품들이 도착을 했다. 김장 매트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매트와 같았지만 2개나 보내줘서 하나는 아이들과 물감 놀이할 때 바닥에 깔 용도로 사용하고 1개는 부모님께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박스에 온 헤어드라이기를 얼른 뜯어봤다. 당장 모델을 보고 검색을 해봤더니 최저가가 아닌 꽤 괜찮은 상품이었다. 매뉴얼을 확인하고는 전원을 켰다. 지금 쓰고 있는 드라이기보다 무거웠지만 바람소리가 매우 고급졌다. 모터 도는 소리도 많이 시끄럽지 않아 둘째 놈은 드라이기 할 때마다 귀를 틀어막았지만 이건 크게 거슬리지 않은 모양이다.

바람세기도 15단계나 조절되는 쓸데없는 기능이 있지만 따뜻한 공기가 매우 안정적으로 나왔다. 딸 두 명의 머리를 말릴 때 20분 걸렸건만 이젠 10분 안으로 다 끝나버리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확실히 기계가 비싼 건 비싼 값을 하는구나!' 하며 머리를 말릴 때마다 드라이기를 아내한테 보여주며 "봤지? 나 이 정도야!" 라며 또 자랑질을 해댄다.

그간 포인트를 열심히 모은 것보다 라디오 사연 한방에 생각지 못한 커다란 상품을 받으니 글쓰기에 대한 동기부여가 갑자기 새로워졌다. 그리고 '내 글도 나쁘진 않는구나'라는 위로를 받았다. 근데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아져버렸다. 죄다 라디오 사연에만 글을 올인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글쓰기에 대한 물질적 보상을 상당히 갈구했었나 보다. 라디오에는 꾸준히 사연을 쓸 예정이고 몇 개는 이미 작성하여 올렸다. 그때처럼 기가 막히게 3일 만에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동기가 부여되면서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재밌게 쓰고 싶은 마음들이 살아났다. 육아에 지쳤던 마음들이 눈 녹듯 사라지진 않지만 삶의 소소한 기쁨 덩어리들이 모여 행복을 주고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 제목이 생각났다. 꽤 재밌게 읽었기에 기억이 났지만 역시 나에겐 칭찬 보단 물질적 보상이 더 신나게 춤을 추게 하더라!


-공장장 찰리한의 물질은 사람을 거만하게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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