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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Jan 30. 2021

이력서가 주는 또 다른 의미!

이력서 작성이 이렇게 어려웠나?

교육회사 다닐 때는 운영 PM이다 보니 맡은 사업마다 강사와 운영인력을 외부에서 채용해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지원자 모집공고를 올리고 이력서를 검토하며 면접을 보고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들까지 하다 보니 남의 이력서를 상당히 많이 봤다. 그들의 이력서는 천차만별이었다. 본인의 장점을 얼마나 꼭꼭 잘 숨겨놨는지 알 수 없는 것부터 이력서의 샘플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쓰인 것까지!

비대면인 이력서 속에서 타인의 존재감과 능력치는 무한하다. 하지만 면접을 해보면 이력서와 다른 경우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난 인사담당자만큼 사람을 통찰하거나 이력서만 봐도 지원자의 성향, 성격과 원하는 것들 모두를 파악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업의 성격과 맞는 지원자를 찾는 것은 약간 파악할 수 있었다.



교육회사를 그만두고 카페 취업을 위해 경력 없이 작성했던 이력서를 봤다. 경력사항은 죄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교육회사 PM으로써의 인간관계, 문제 해결 능력, 업무달성 능력 등등이 적혀있었다.

그나마 관련된 경력을 쓰려고 애쓴 흔적도 보였다. 처음 커피를 접하며 느꼈던 마음과 로스터기를 사서 직접 생두를 볶고 핸드드립과 콜드 브루까지 제조했던 나름의 커피에 대한 전문성, 직장 내 동료들에게 커피에 대해 좀 더 알리고자 커피의 역사와 메뉴에 대한 재밌는 일화 등을 소개했던 것들까지 빠짐없이 작성했다.

그런 어설픈 이력서를 보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정작 면접을 보러 가니 첫 질문은 나이였다.

"찰리 한 씨는 점장들 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는데 괜찮겠어요?"

"네! PM으로 일할 때에도 나이에 상관없이 경력을 위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에 나이는 배움에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라고 나름의 나이스 한 대답을 했지만 이런 질문은 정작 일을 같이 할 점장들한테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00 점장! 무경력 자이며 나이 많은 자, 이 두 가지를 두루 갖춘 직원이 당신 밑으로 들어와도 괜찮겠어?" 

이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라는 조금 삐뚤어진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1년간 개인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젊고 멋진 20대인데 심지어 커피 경력도 화려한 동료들을 많이 만났다. 그 동료들이 직원생활을 하다가 점장이 되어 관리자의 역할을 하게 되면 30대 초중반 정도 되기에 39살이었던 내가 말단 직원으로 들어간다면 그저 느리고 꽉 막힌 '아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지원조건에 나이는 제한이 없다지만 면접 때 첫 질문이 '나이' 얘기를 가장 먼저 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점장의 나이가 젊기에 그 밑으로 나이 제한을 조건으로 건 카페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카페들도 역시나 '나이'를 먼저 물어본다. 정말 나이를 안 본다는 말이 크게 신뢰가 되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나이에 맞지 않는 경력을 갖고 있는 내가 오히려 더 신뢰가 안 갈 것 같더라!



프랜차이즈 카페에 지원하기 위해 자사 이력서 형식을 다운로드하였다. 역시나 나이 제한은 없었고 경력은 우대사항이라는 문구가 써져있다. 성장과정, 지원동기, 성격의 장단점, 경력사항 등을 묻는 문구들이 주를 이뤘다. 각각의 항목에는 글자 수가 제한되어 있었다. 작년에는 글자수를 겨우 채울 정도였는데 재밌게도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는 막막했던 성장과정은 막힘없이 써내려 갔다.  간절한 마음을 듬뿍 담은 강력한 지원동기를 썼다. 회사의 인재상을 보면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적절히 배치해가며 나름의 이유를 잔뜩 만들고서는 하나씩 서술해나갔다. 이때만큼은 브런치에게 아주 감사했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기로   생각을 잠시 칭찬했다. 경력사항도 일하면서 배운 것들을 작성할  있게 되었다.


허나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바로 취미와 특기를 작성하는 란이었다. 여전히 이력서에는 취미나 특기를 작성하는 란이 존재했다. 교육회사 다닐 땐 취미와 특기엔 당연히 커피 로스팅과 핸드드립이라고 작성했다. 그리고 그 취미와 특기를 사회생활과 연결하여 마치 '나의 모든 것들은 바로 이 회사를 취업하기 위해 존재합니다'라는 약간의 과장된 얘기들을 써냈다. 하지만 카페일을 하는 데 있어 취미와 특기가 커피라는 건 과연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취미와 특기를 생각해봤다. 내 취미는 뭐가 있는지, 내 특기는 과연 무엇이던가!

커피 빼고 보니 없었다.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연주하지 않기에 취미라고 작성하기도 그렇고 카페에 굳이 도움이 될 이유가 없다. 그럼 자기 계발 차원으로 글쓰기가 취미입니다 라고 작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선생님이 했던 말이 쓸데없이 생각났다.

"독서나 글쓰기가 취미가 될 수 없어! 너희들은 밥 먹는 것도 취미냐? 필수지? 마찬가지야! 독서와 글 쓰는 건 필수야!"

고1 때 담임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물론 언어 선생님 이셨다. 글씨도 매우 반듯하게 잘 쓰고 말도 정말 잘했다. 영업사원이 됐다면 최고의 판매율을 자랑할 정도로 논리적이었다. 그런 분의 일방적 교육과 가르침 때문인지 이력서에 절대 독서, 글쓰기는 취미라고 쓰지 않았기에 지금도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쓰긴 하지만 '취미는 글쓰기입니다'라고 작성할 수 없었다.


2월 말까지 이력서를 제출하기에 아직 1 달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하니까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만 제안서 제출할 때도 데드라인에 맞춰서 작성을 완료했기에 분명 2월 말 되어서야 취미와 특기를 작성할 것 같다.

다행인 건 브런치는 적어도 작가의 서랍 속에 매일 무언가를 끄적이니까 이 글을 매일 볼 테고 그럼 계속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력서가 주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했다. 나를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취업을 위한 이력서 속에서 내 또 다른 삶을 발견하다 보니 예전 이사님의 말이 생각났다. 매년 이력서를 작성하라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가끔은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해 볼 체크리스트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이력서였다.


-공장장 찰리한의 이력서 작성 ing~


근데 그 이사님은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매일 수정하라고 하셨던 게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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