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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Jan 26. 2021

첫째님! 유치원 졸업을 축하합니다.

익숙함에서 낯선 곳으로의 출발 전!

오늘 첫째님이 유치원을 졸업했다. 코로나 시대라 개학은 이미 했지만 졸업식을 위해 유치원에서는 원격수업으로 대체하고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졸업생들을 모두 등원시켰다.

방역수칙이 2단계로 낮춰지면서 둘째 놈도 오전에만 어린이집에 맡겼다. 여전히 가기 싫다고 울먹이다가도 이유를 들어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만 늘여놓는다. 자기 딴에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 듯 말하지만 결국에는 어린이집에 잘 가서 아주 잘 놀다가 아주 잘 점심 먹었단다. 데리러 가면 어린이집 너무 재밌다고 내일 또 간다고 한다. 그 내일이 되면 가기 싫다고 다시 울상이 될 건 뻔하지만 그렇다고 쳤다.

첫째님을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2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생겼다. 예전에는 두 명 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면 온전히 나를 위한 자유시간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거의 3달 만에 그것도 딱 2시간만 생겨버린 것이다. 아내와 같이 어디 카페를 갈까 고민했다.

개인 카페에 가서 산미 풍부한 아메리카노를 들이켜고 싶지만 10시 전에 오픈하는 개인 카페는 많지 않다. 결국 아이들과 맨날 가던 대형마트 맞은편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비 오는 회색 하늘. 겨울 치고는 아주 춥진 않지만 매장 내에선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어야 몸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에 더욱더 외투를 벗으면 안 된다.

커피 한 모금 마시면 에티오피아 특유의 향과 맛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한 모금 더 빨아들인 후 저 멀리 창밖 풍경을 쳐다봤다. 아내는 맞은편에서 본인의 업무에 있던 여러 가지 인간관계를 말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냥 이 2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창밖 풍경을 보면서 '멍'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4시간 뒤면 한없이 요구하는 둘째 놈과 내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첫째님과의 육아 전투를 위해 힘을 비축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얘기를 그냥 흘겨버릴 수는 없었다.


단 2시간 동안 일상의 그 평온함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창밖은 그리 평온해 보이지 않는다. 치열한 삶을 위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관경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산을 쓰고 급히 뛰어가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전화통화를 하면서 가는 사람들, 등원을 하는 건지 책가방을 매고 캐릭터가 그려진 예쁜 우산을 쓰고 가는 아이들과 그 옆에서 아이들을 따라가는 엄마들, 학교 앞이라 30km 제한속도인데도 불구하고 더 빠르게 달려가는 자동차들.

'이들은 왜 이리도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을까' 란 생각과 동시에 '난 왜 이들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지 않고 있을까' 하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회색 하늘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바닥에 고인 웅덩이에 떨어져 그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들은 치열하게 삶에 부딪쳐 그 삶의 일부분이 되어 있는데 그들을 지켜보며 그저 멍하니 지나가는 시간만 아쉬워하는 내 모습은 그 어떤 것에도 일부분이 되지 않았다.


11시에 첫째님을 데리러 아내와 같이 병설유치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부모님들이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준비하지 않았다. 첫째님은 꽃다발을 손에 쥘 수 없었고 분명 잡자마자 내동댕이 칠 것이다. 그럼 곧바로 예쁜 쓰레기로 변하기에 그럴 바엔 그냥 자장면에 탕수육 시켜먹는 게 더 좋을 것이다.

학사모와 가운을 입고 첫째님이 나왔다. 정말 돛대기 시장처럼 학부모님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고 우리도 건물이 비를 막아주는 곳에서 우산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역시나 가만히 있질 않고 사진 찍을 때마다 기가 막히게 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방금 전까지 카페에서 내 삶은 그다지 치열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첫째님의 학사모 쓴 사진을 남기려고 찍고 나서 보니 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우리가 했던 그동안의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생각이 조금 변했다. 나 또한 치열하게 살았었다. 다만 빗방울이 웅덩이의 일부분이 되듯 그 치열함이 육아의 일부분이 되어있었기에 바빴던 사회생활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저 바쁜 생활이 익숙했기 때문에 그게 바쁜지를 모르고 지냈었는데 우연히도 학사모를 쓴 첫째님 사진을 보면서 조금의 위로를 받았다.



첫째님이 졸업을 하면서 이제는 이 익숙한 유치원을 떠나 입학하기까지 꽤나 마음고생 많았던 특수학교에 진학을 하게 된다. 또 다른 낯선 곳으로 출발하려고 한다. 자랄 것 같지 않았던 첫째님을 조금이라도 더 성장시키게 도와준 특수교사는 울먹이며 첫째님의 소식을 종종 보내달라고 했다.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꽤 많은 통화를 했던 아내는 코끝이 찡해지면서 특수교사와 인사를 했다.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면서 그렇게 우리 가족과 특수교사는 이별을 해야 했다.

정작 나는 이런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 그리 크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를 만나 잘 자라준 첫째님이 고마웠다. 한번 심하게 아팠지만 그 후로는 크게 아프지 않고 여러 가지 문제행동 또한 많았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준 우리 첫째님이 아주 잠깐 사랑스러워 보였다.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발생할 텐데 지금까지 잘 버텨줬다. 익숙함을 떠나 낯선 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다시 준비를 해본다. 준비하기 전에 그래도 축하는 해줘야겠다.

졸업 축하한다. 첫째님!


-공장장 찰리한의 첫째님 유치원 졸업 축하


지금의 내 삶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힘들지만 육아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다시 바리스타의 직업을 가질 준비를 하고 있는가? 직업이 낯선 곳으로 변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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