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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Jan 19. 2021

8년 여사친과 결혼 8년 차!

포켓볼 8번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31살 때 까지는 비혼 주의자였다. 결혼은 '결국 혼자'의 줄임말이었다. 1년 남짓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부턴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할 수 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연애하지 않겠다'라고 거짓말 같은 다짐을 했지만 직장 동료가 우연히도 정말 좋은 사람을 소개해줬고 그 여성분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바보 같은 짓만 골라했다. 결과는 안타까웠지만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겠다 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32살이 되는 2013 년 1월에 8년 된 여사친이자 연상녀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아내는 2003년 교회 형님의 여자 친구로 만났다. 당시 난 입대가 코앞이라 아무나 붙잡고는 밥을 사달라고 했고 처음 보는 그녀에게 역시 밥 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실은 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군대를 제대한 2005년에 난 교회 소모임의 조장이 되었고 그녀와 남자 친구는 내 조원이었다. 그들은 연애기간이 꽤 길었다. 당연히 잘 될 줄 알았는데 결혼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만 헤어져버렸다.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됐다. 결혼을 약속했는데 왜 헤어질까 했는데 해보고 나니 알겠다. 결혼은 내 의도와 다르다는 걸!

좀 안타까웠다. 그래도 그저 '연인이 헤어졌다'라는 정도로 느껴졌을 뿐 큰 상처를 받았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교회누나로 지내다 2008년에 그녀는 교회 청년부의 행정팀장 후보에 올랐고 행정팀장은 총무를 선택할 권한이 주어진다. 총무로 나를 지목했고 며칠 생각한 후  "YES" 를 외치면서 그 한해를 거의 붙어 다녔다.

그렇게 붙여 다녀도 정말 스캔들 하나 나지 않았다. 난 그녀의 첫 만남이 아는 형님의 여자 친구라 전혀 여자로 생각 들지 않았고 그녀 역시 나 같은 불량한 차림새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머리도 길고 염색도 오만가지 색을 했으며 귀까지 뚫은 남자는 딱 질색이라고 했다. 그리고 난 그녀보다 키가 작았다.

서로 다른 사람과 연애하다 헤어지면 위로해주기 바빴다. 난 울면서 전화기를 붙잡고 통곡을 했더랬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헤어짐에 대해 눈물조차 없는 쿨한 사람이었는데 그녀한테만 전화하면 그렇게 울어댔다. 헤어진 이유를 싹 다 말하고 나면 그녀의 마음속 결론은 "얘는 연애는 글렀다" 였단다. 2008년에는 고분고분 순종하며 행정팀장이 모든 걸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총무로써 맡은 임무를 해나가더니 2009년에는 호주 가서 1년 4개월이 지난 후 돌아온 모습이 그녀는 많이 낯설었다고 한다.

호주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생존 본능 때문인지 그간의 '유' 하던 모습보다는 좀 냉철하고 눈빛도 날카로워졌다고 했다. 그리고 의견 차이로 인해 그녀에게 한 번은 화를 냈다. 그 후 그녀는 나를 아오안, 아오리로 치부했다. '아웃 오브 안중, 아웃 오브 마이 리그' 즉 그냥 눈밖에 났다. 더 이상은 이전에 알던 고분고분하고 잘해주는 총무 같은 사람이 아닌 낯선 남자, 화내는 남자, 그냥 그녀의 인생에서 꺼져줄 남자로 기억된 것이다.

그럼 티를 내야 하는데 그녀는 그런 티를 안 냈다. 그러니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고기 사달라고 만나고 연애할 사람 생겼다고 만나고 헤어졌다고 질질 짜며 전화를 정말 지겹게도 했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확고한 마음을 떠나 거의 믿음을 가졌다. "쟤는 결혼은 글렀다"



32살 1월에 그 연상녀이자 8년 된 친구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실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배우자 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단번에 그녀를 생각나게 하셨다. 뻥치는 줄 알고 그냥 웃으면서 잠을 잤다. 그러나 1달간 밤잠을 못 잘 정도로 그녀를 생각나게 했고 난 계속 부정을 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돼!"였다.

코밑에 뭔가 뾰루지가 나고 구내염에 걸리고 눈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잠을 못 자서 힘들었었다. 당연히 한 번도 그녀를 여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가 갖고 있던 모든 행동들이 한때 내가 생각했던 '만약에 결혼한다면 이런 여자랑 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에 뭐 하나 빠진 게 없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후퇴 없는 직진을 했다. 아주 웃기게 그녀의 생일날 고기 사달라며 회사앞에 가서 고기를 먹고 내가 자주 가던 카페에 가서 고백을 해버렸다. 그녀 역시 내 고백을 단번에 뻥 차고는 잠을 못 잤다고 했다. 난 고백한 후부터 잠을 아주 편하게 잤다. 잠 못 자는 고통을 짊어진 그녀는 연이어 나의 고백을 뻥뻥 찼지만 다른 모임에서 의지하는 언니한테 엄청 혼났다고 한다. 그녀의 배우자 조건에 내가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우린 이렇게 연인이 되었고 일사천리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8년 친구로 지내면서 봐왔던 모습들 중에 적어도 쓰레기 같은 행동이나 그런 짓은 한 적이 없었으니 더 망설일 건 없었다. 속전속결로 사귀기 시작한 후 5개월 만에 결혼했다. 결혼을 약속한 만남의 사이에 계획에 없던 첫째님이 뱃속에 생겨나는 해프닝도 있었다.



 여느 남자들과 같이 결혼 전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늘의 별을 따달라면 별 보다 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사러 가자는 허풍도 빼놓지 않았다. 거기에 난 한술 더 떠서 지킬 수 없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조항과 이행해야 할 것들을 세세하게 작성하고 계약서 중간에 날인까지 완벽하게 찍었다. 나는 분명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다짐했고 그렇게 믿었다.

2013년에 결혼해서 2021년이 되었다. 결혼 8년 차가 된 것이다. 근데 도대체 뭐 하나 계약서의 내용대로 이행된 건 없었다.

아! 하나 있다. 물 안 묻히게 해 준다는 건 그나마 다른 조항들에 비해 제일 잘 지킨 것 같다. 설거지는 내가 도맡아 했으니. 솔직히는 나보다 우리의 충실한 노예 식기세척기가 다 했으니 이것 빼곤 아마 없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건 '언제나 사랑한다 10번 말하기' 조항이다. 거의 분기별로 10번도 못했다.

'계절 따라 좋은 곳 놀러 가기'는 코로나로 인해 면죄부를 줄 수 있지만 '맛있는 거 먼저 먹여주기'는 육아하느라 애들 먼저 챙기고 내 몸 챙기다 보니 식사까지는 차려주지만 내 먹기도 바쁘다.

그 밖에 여러 조항들이 있지만 작성하고 지장 찍고 아내한테 건넨 이후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던 계약서는 이미 어딘가에서 소각되었다. 아내는 사기 결혼이라고 이 결혼 무효라고 진담 같은 진담을 던졌다. 아내가 갖고 있는 그 계약서를 소각시켜야겠다. 근데 이놈의 계약서는 도대체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건가!

아내는 어딘가 있을 그 계약서를 들고 현관에 걸어 놓는다고 협박을 한다. 다시 본다면 분명 오글거리는 멘트들이 가득할 것 같아 안 보고 싶다.(분명 저 계약서는 밤에 작성했을 것이다. 낮에 제정신이라면 절대 계약서 따위는 작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8년이 지났다. 우리가 결혼한 지 만 8년. 그 사이 첫째님은 8살이 되었고 둘째 놈은 연말 생이라 억울한 6살이 되었다. 8년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펼쳐졌고 진행 중이다. 아내와 한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면 가끔씩 우리의 결혼이 실감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군가를 사귀게 된다면 그 이전에 했던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하면 안 되며 특히 남자는 더욱더 여자에게 '자신의 첫사랑은 내 눈앞에 있는 너'라는 공식을 지켜야 하지만 난 이미도 그딴 공식 따위 필요 없었다.

오히려 아내가 자기가 아는 여자 말고 모르는 사람 얘기해달라고 한다. 기억이 잘 나지 않기도 하고 공식을 깨기 싫어서 "내 첫사랑은 여보 당신뿐이야!"대답하면 100단짜리 발차기와 함께 질질 짠 얘기들을 해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전화는 하지 말걸 그랬다. 나 역시 반격에 나서고 서로의 흑역사 폭로전을 하다 보면 결국 나만 불리해진다. 



결혼초와 지금의 내 모습은 참 많이 변했다. 안 변하고 싶지만 그냥 익숙함에 의해 아내가 편해지다 보니 변한 것 같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아직 난 방귀를 트지 않았다. 왠지 방귀는 창피해서 못 트겠다. 같은 방에 있으면 알아서 참거나 모으고 모아 화장실 가서 변기를 부셔버릴 정도로 배출하고 온다. 아내한테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못하겠다. 그거 이외에는 계약서까지 작성하면서 나만의 다짐도 해봤지만 그냥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다행히도 계약서에는 '아이가 태어나도 위 조항을 언제나 지켜 행한다'라는 조건문은 없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부지런히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밥을 먹이고 등원을 시키며 맛있는 밥을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아침마다 아내한테 내려준다. 계약서대로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갖다 버린다. 사랑한다는 말을 마음속에만 품고 아내가 강요할 때까지 품다가 아주 찔끔 "사랑해"라고 말한다. 아내가 사준 차로 여기저기 여행도 다닌다. 그냥 변함없이 부지런하게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 건 잘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이 나에게는 아내에 대한 '사랑 표현'이다. 비록 아내한테는 이런 행동이 사랑이라고 받아들여지진 않겠지만!


-공장장 찰리한의 여보 미안해!


가끔씩 믿기지 않는다. 정말 우리가 결혼했다고? 아이도 있다고? 결혼사진을 보니 내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예쁜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내가 이렇게 잘생겼나?' 하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서 나올 생각을 아예 안 하는 이 뻔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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