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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Mar 02. 2021

첫 만남! 서로에게 좋았으면 좋겠다.

중요하지 않은 듯 중요한 만남!

20대 시절에 첫 만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났던 건 소개팅, 미팅, 모르는 이성과의 만남이다.

그만큼 그때는 연애가 중요했던 시기였으니까!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고 왁스를 바르고 세팅했고 코디한 옷이 하필 셔츠가 아닌 라운드티라 입다가 머리스타일을 망치면 다시 머리 감고 드라이하고 세팅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러다 또 망치면 미용실로 달려가서 대충 커트해달라고 하며 전문가들에게 맡겼다. 만남의 장소에서 첫인상이 좋아 지속적 만남이 이어졌지만 이후 몇 번 더 만나다 보니 처음과는 다른 마음들이 생겨 그렇게 멀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40대의 지금은 첫 만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자녀들이 새로운 친구를 만나거나 새로운 학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나도 아재와 꼰대 사이의 어딘가 즈음 나이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보다는 자녀들 중심으로 모든 생각이 개편되고 있던 것이다. 둘째 놈은 같은 어린이집에서 형님반으로 갔다. 낮잠을 재우지 않는다는 희소식에 쾌제를 외치며 미안하지만 둘째 놈을 데리러 가는 시간은 3시간 뒤로 미뤄졌다.

그리고 첫째님은 특수학교에 입학했고 오늘이 대망의 입학식 날이었다. 코로나의 영향이 있지만 초등 1, 2학년은 매일 등교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으며 오늘 입학식에 참여했다. 원래는 강당에 모여서 여러 가지 공연도 보면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겠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각 교실에서 입학식을 진행하고 부모들은 1층에 마련된 카페에서 대기했다. 특수학교답게 직업훈련을 위한 카페가 존재했고 바리스타로 일하는 분 역시 손이 빠르지 않다 뿐이지 훌륭한 바리스타로써 방문한 부모님들에게 정말 맛있고 신선한 커피를 건넸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진학하는 건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크게 걱정도 안 됐다. 아내는 걱정도 많고 생각도 많았지만 그에 비해 난 거의 무사태평일 정도로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으로 갈 때는 정말 수많은 생각과 걱정 때문에 입학식 전날 설레기도 잠도 설치기도, 불안한 마음도 많았는데 이상하게만치 특수학교에 진학한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첫째님에게 관심이 없어서는 아니다. 유치원 생활도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고 행동적인 퇴행도 오긴 했지만 무사히 잘 졸업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첫째님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잘 해낼 수 있구나'라는 걸 믿기 때문이다.

여전히 개인위생에 대한 개념도 없고 차에 치이면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는 개념도,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큰일 난다는 개념도 없다. 자기 이름을 불러도 호명 반응 조차 없기 때문에 늘 누군가의 손에 꽉 붙들려있어야 하는 점이 약간은 불안했고 아내가 제일 불안했던 점이다. 하지만 오늘 담임선생님을 보자마자 그 불안함이 하늘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마냥 깨끗하게 사라졌다. 선생님 손에 이끌려오는 첫째님을 건네받으며 인상을 봤는데 성함만큼이나 인자하셨고 말투와 행동, 단호한 결정 등 모든 면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좋았다. 특히 인상이 너무 좋아서 아내와 난 집에 오는 내내 걱정 없겠다고 서로를 위로할 정도였다.


예전 교육회사에서 일할 때 학교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를 쳐다보는 그들을 나 역시 쳐다봤다. 강의를 잘 듣고 이해하고 있는지, 반응은 어떤지, 질문에 잘 호응하는지를 평가하다가 어느새 그들의 인상을 보게 됐다. 나이가 지긋하신 교장선생님부터 이제 막 들어온 신입 선생님들까지 한 자리에서 교육을 받으니 학생들 수업받는 만큼이나 재밌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학생들 앞에서만 다른 얼굴을 할 뿐이지 수업을 받는 그들을 보면 또 다른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장난을 치며 앞자리 보단 뒷자리를 선호하는 그들 역시 영락없는 학생들이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선생님들, 머리가 희끗희끗 변하는 선생님들의 인상을 보면 그들의 인품이나 성향들이 조금씩 예상됐다. 그리고 말투까지 들어보면 아주 정확하진 않지만 내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첫째님의 담임선생님 인상은 합격을 넘어서 전적으로 의지할 정도였다. 1년간 좋은 선생님의 지도 아래 우리 첫째님이 큰 사고 없이 지금보다 좀 더 성장함과 동시에 그렇게 이끌어 줄 것이라 믿음이 생겼다. 우리의 믿음은 아주 확실했는데 그럼 선생님에게 그럼 첫째님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첫째님을 건네받은 우리 부부의 첫인상은 과연 어떨까 궁금하다. 우리가 좋은 만큼 선생님은 도 우리가 좋은 학부모처럼 느꼈을까 상당히 궁금해졌다.


내일은 바리스타로 지원한 카페에 면접을 보러 간다. 코로나도 어느 정도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다 보니 여기저기 구인구직이 많아졌고 작년에 지원하려다 경력이 없어 이력서조차 내밀지 못한 곳에 이번엔 당당하게 이력서를 제출했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40대에 첫 만남이 마냥 아이들 위주는 아니었다. 지금의 나에겐 첫 만남은 바로 면접이라는 또 다른 단어가 있었다. 비록 20대처럼 머리에 왁스를 마구 바르고 실패하면 미용실에 가는 열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깔끔하게 머리를 자르고 수염을 자르고 정장을 입고 약간 불편한 구두를 신고 가서 첫 만남을 진행할 것이다. 단호하고 확실하며 신뢰감 있는 목소리, 겸손이 깃든 태도, 정직하며 온순하고 고분고분할 것 같은 외모를 장착하고 가서 잘 듣고 잘 대답하고 잘 물어보려 한다.


-공장장 찰리한의 첫 만남에 대한 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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